8월 23일 탄생화
나는 오래전부터 유럽의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나무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서양보리수’라 부르지요. 학문적으로는 Tilia europaea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름을 얻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나무, 또 누군가에게는 신성한 수호목이었으니까요.
고대 게르만 사람들은 나를 신성하게 여겼습니다. 내 잎과 가지에는 번개를 막고, 악령을 물리치는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지요. 그래서 마을 광장마다, 농가의 마당마다 나를 심어두었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곧 사람들의 안식처였고,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내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의논했고, 축제를 열었으며, 때로는 재판까지 벌였습니다. 마치 한국의 정자나무처럼, 나는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내 잎은 하트 모양을 닮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내 곁에서 사랑을 속삭였고, 영원한 맹세를 나누었습니다. 내 꽃이 피어 은은한 향기를 흩날릴 때면, 연인들은 나를 배경으로 운명을 믿었지요.
옛 전설 속 영웅 지그프리트의 운명도 나와 얽혀 있습니다. 그는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불사의 몸을 얻었지만, 내 잎 한 장이 등에 붙어 피가 닿지 못한 곳이 생겼습니다. 그 작은 빈틈이 그의 약점이 되어, 결국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나의 한 장의 잎이 한 영웅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 《개구리 왕자》에서도 공주와 개구리가 처음 만나는 자리는 바로 내 곁, 우물가였습니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믿었습니다. 내 그늘 아래에서는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고.
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노래와 시 속에도 살아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에 나오는 〈보리수〉가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노래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사랑을 잃고 떠도는 나그네는 내 아래에서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립니다. 나는 그에게 추억과 향수의 나무였고, 위로의 자리였습니다.
내 꽃은 은은한 향을 품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따서 차로 우려 마시며 불면증을 달래고, 긴장을 풀고, 두통을 가라앉혔습니다. 내 열매 또한 식용으로 쓰이며, 소화와 기침 완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잊지 마세요. 나의 선물이 언제나 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하면 두통이나 혈압 저하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늘 적당함을 가르쳐 주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이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서 있습니다. 유럽의 마을 광장에서, 혹은 고요한 숲가에서, 내 그늘 아래 누군가는 사랑을 고백하고, 또 누군가는 옛 추억을 떠올립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잘 알지 못하지만, 유럽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당신 또한 힘들거나 쉬고 싶을 때, 내 곁에 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나직이 나를 불러주면, 그곳이 어디든 나는 쉼터가 되어 드릴게요.
나는 오래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도, 이별이 찾아오는 순간도,
모두 내 그늘 아래 머물다 갔지요.
혹여 당신이 길을 잃고 서 있을 때,
나를 기억해 주세요.
https://youtu.be/L68RzWxeO-8?si=J650sRC0NFELxSB-
나는 서양보리수,
당신을 기다리는 쉼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