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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초 Sep 27. 2023

그는 착한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저녁별=새벽별

※이 글을 읽고 나면... 
1. 댓글 창에서 사람들이 '쟨 나쁜 사람이다' vs '그래도 쟨 좋은 사람이다' 구도로 벌이는 싸움에서 빠질 수 있다
2. 지나간 인연이 좋은 사람이었을까, 나쁜 사람이었을까 혼란스러워 하는 고민을 일찍 끝낼 수 있다!



우리는 이름이 '그 단어가 가리키는 실제 대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 이름인 '이해림'은 대구에서 상경했고, 중앙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기자로 일한지 약 1.3년째인 97년생 여성인 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해림'은 나를 의미한다.


그럼 한 대상이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 경우는 어떨까? 언어철학자들은 어떤 문장에서 특정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꿔도 문장 전체의 참거짓이 변하지 않을 때, 두 단어가 동의어라고 본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이지은은 'strawberry moon'이란 곡을 발매한 가수다.

아이유(IU)는 'strawberry moon'이란 곡을 발매한 가수다.


이지은과 아이유 모두 아래의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지은은 가수의 본명이고 아이유는 가수 활동을 할 때 사용하는 예명이라는 것 정도다. 어쨌거나, 이름의 뜻은 곧 그 이름의 지시체(이름이 가리키는 대상)라는 관점에서, 이지은과 아이유는 의미가 같다. 1을 2로 바꿔도(이지은->아이유)문장의 참거짓이 변하지 않는다. '이지은'과 '아이유' 둘 다 'strawberry moon'이란 곡을 발매한

이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 모든 존재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여러 면을 동시에 지닌다. 대표적인 예가 금성이다. 금성은 일 년 중 한동안은 초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또 다른 때는 아침 동쪽 하늘에서 그 어떤 행성이나 별보다 늦게까지 보이기도 한다. 저녁별이면서 새벽별인 셈이다.


그래서 금성엔 여러 이름이 있다. 하나는 Hesperus(헤스페로스)다. 신화적 사고를 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저녁에 보이는 이 별을 새벽의 여신인 에오스(Eos)와 티탄족 황혼의 신 아스트라이오스(Astraeus)의 아들인 '저녁별의 신'으로 인식했다.  금성의 또 다른 이름은 포스포로스(Phosphorus)다. 이 단어는 '빛의 운반자'란 뜻으로, 해 뜰 무렵에 보이는 별을 신격화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헤스페로스는 저녁별, 포스포로스는 아침 별이다.


그리스인들은 헤스페로스와 포스포로스가 별개의 별인 줄 알았다. 이 둘이 사실 같은 별이었다는 건 나중에 천문학이 발전하며 밝혀졌다. 저녁별이 따로 있고 새벽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별이 아침에도 저녁에도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단어의 의미가 곧 그 단어가 가리키는 실제 대상이라면, 헤스페로스와 포스포로스는 철자가 다를 뿐 뜻이 같은 단어다. 둘 다 금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래의 두 문장은 의미가 같게 된다. 그리고 둘 다 참이다.


Hesperus is Hesperus
헤스페로스(저녁별)는 헤스페로스(저녁별)다.

Hesperus is Phosphorus
헤스페로스(저녁별)는 포스포로스(새벽별)다.


저녁별=새벽별이라는 건 어찌보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이 문장은 분명 참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엔 밤<->낮, 새벽<->저녁이란 대립쌍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립되는 개념이 한 대상에 동시에 적용되는 경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선<->악의 대립쌍이 대표적이다. 간혹 사회적 이미지가 너무너무 좋은 사람의 학교 폭력/비리를 고발하는 뉴스가 전파를 탄다. 자식에겐 정말 자상하고 좋았던 부모가 직장 후배에겐 갑질을 일삼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댓글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나 앞뒷면이 다를 수 있지?' 라는 반응이 많다.




우린 누군가가 착한 사람이면서 나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그러나 착하면서 나쁜 게 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이런 감정적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면 모든 것을 순수한 선과 순수한 악으로 양분하게 된다. 이렇게 해야 단순하고, 깔끔하고, 명료한데, 우린 명료한 것에 안정감을 느낀다. 순수악으로 분류된 사람에겐 이해와 변명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다. 무조건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순수선으로 분류된 사람에겐 어떠한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잘못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댓글로 비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비난으로 오해하고 비판적 의견을 낸 사람을 욕하는 대댓글이 우수수 달린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선해 보이는 대상을 무조건적으로 지켜줘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은 착하면서 동시에 나쁘다. 모든 사람에게 선한 존재로 경험되는 사람도, 모든 사람에게 악한 존재로 경험되는 사람도 없다. 나에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악인이었던 사람이 남에겐 착하기 그지없는 천사일 수 있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이걸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저녁별이면서 새벽별인 금성을 기억하자.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결국, 그 사람에 대한 특정한 경험에서 비롯된 말일 뿐이다. 내가 '나쁜 사람'이란 말로 가리킨 사람 A를, 누군가는 '나쁜 사람'이란 말로 가리켰을 때, 그리하여 나의 '착한 사람'이 곧 그의 '나쁜 사람'과 동일함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는 좀 덤덤해질 필요가 있다. 타인의 경험을 뭉개가면서까지 그가 사실은 착한 사람이라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애써 주장할 필요 없다. 그는 두 단어 모두의 뒤에 있기 때문이다. 저녁별과 새벽별 뒤에 금성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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