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15살, 17살. 학년이 올라 반이 바뀔 때마다 작성하는 진로 희망서에는 언제나 한결같은 주제로 직업이 작성되었다. 돈 많이 버는 직업.
그렇다. 내가 아닌 가족들이 원하는 내 미래였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것을 공부해야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는 철저히 배재하고 오로지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나의 부모님은 그들 역시 대학은 문턱조차 가보지 못한 자영업자였다.
사실, 자식에게 조언을 안 해주는 게 아니라 못 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양가 친척들조차 그들도 공부보다는 농사일이나 당장에 먹고사는 것에 더욱 치중해져 있었기 때문에, 위 3개 직업군에 대한 사례나 조언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 아니 공부하는 목적을 모르는데 학원이 맞을 것 같은가, 잡아두고 앉혀 놓는다 한들 소 귀의 경 읽기였다. 그래도 소는 생산성이라도 있지.
처음으로 빠져든 책이 만화였다. 내가 만든 캐릭터가 나로 인해 주체성을 갖는다는 건, 온라인 게임 캐릭터를 키우며 자유도를 느끼는 거랑 같은 기분 일 것이다. 그렇게 300원에 빌린 즐거움들이 갈기갈기 찢어져 3500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당장에 박제가 된 책이 문제가 아니라 책방 사장님한테 무슨 얼굴로 말씀을 드려야 하는가가 먼저였다. "울 엄마가 악력 연습하신다고 책을 반갈죽 해 놓으셨어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렇게까지 자식이 공부하기를 원하는 건가, 아니면 공부에 한 이라도 있는 건가 악을 지르는 설움 가득한 엄마의 눈에 감히 차마 돈도 안 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묻어 두었다.
나이 마흔, 엄마는 그렇게 검정고시를 준비하셨다. 나는 매번 적는 부모님 학력 사항에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적어놓은 엄마가 창피스럽다고 생각한 적 없다. 실은 엄마가 거짓으로 적는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럴만한 사정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까. 그럼에도 같은 동네, 장사꾼들이 모여 사는 이 좁은 동 단위 도시 마을에는 너도 나도 교복을 입어봤던 사람들이 꽤 많았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의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었었다.
사실은 이모들이 말해줘서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만 교복은커녕 남들 다 아침에 등교할 때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니며 남의 집에서 살았다는 것. 가난과 돈이 필요한 환경, 배움에 대한 갈망.
그렇게 도전한 검정고시에 합격한 엄마를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막상 자식으로서 뭘 크게 느끼거나 그러진 않았었다. 환경만 갖춰줬다면 다른 인생을 사셨겠구나 했다.
어떤 마음으로 고시에 임했는지 단지 자식의 앞날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식 이름까지 바꿔버리는 어머니의 속을 모질이는 알 길이 없다.
어머니는 어머니로부터 되물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언젠가 한 번 외할머니께 혹시 화가 나면 무언가를 찢으십니까 여쭙으니 미친놈이냐고 답변해주시는 것을 보고 유전이 맞구나 했었다.
내 여동생도 살짝 분조장이 있는 것 같으니 집안 내력 같기도 하다.
이후에 어머니한테 그때 행동의 이유를 여쭙으니 내가 공부 말고 다른 길을 갈까 봐 너무 걱정되어서 그러셨다고 한다. 아들이 절대 장사처럼 힘든 일 말고 꼭 펜대 잡는 일을 했으면 하는데, 본인부터 그쪽에는 경험도 지식도 없는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자식 인생 위해 도전하셨던 거다.
솔직히 말로 이렇게 풀어놓고 보면 엄마가 뒤도 안 돌아보고 불도저 하신 것 같지만, 부모님 말씀을 존중 안 한 체 만화책만 빠져든 내가 원인이었다. 우리 엄마, 내놓으라 하는 드셈을 가지셨다 해도, 화난다고 뭐 때려 부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다. 책을 뿌셔뿌셔 먹듯 분할하는 걸 봤던 건 처음이라 그저 크게 놀랐었을 뿐이다.
덕분에 그랬던 행동이나 상황들이 그때의 나에게 더 좋게 와닿았던 것 같다.
지금의 나를 만들고 만들 수 있는 건 부모님의 절실함이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게 닿아 지금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