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로마 제국 황제들의 통치소, 체코 공화국의 상징
블타바 강 서쪽 언덕에서 눈에 띄게 보이는 성은 옛 신성 로마제국의 늠름함을 자랑하고 있다.
숙소 위치가 정말 환상적인데, 까를교가 걸어서 10분 정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는 게 제일 좋았다. 오늘은 간단히 3km 만 뛰어보자.
이 지루한 유럽 건물들을 보러 온 게 아니고, 액티비티나 동물들을 찾으러 왔다. 어제부터 찾았는데 대체 비버는 어디 있는 걸까
마네스 교 - 까를교를 2바퀴 정도 돌면 4km 가까이 나온다. 아침 조깅 코스로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곳에 와도 잠 못 자는 건 마찬가지구나, 아침 커피를 마시고 조식을 기다렸다.
사장님은 요리를 배운 적이 없으시다는데, 이거는 재능의 선인가 아니면 부모님 혹은 지인이 알려주신 요리법인가 싶다. 무엇보다 잘생겨서 너무 질투나
다행히 동행인을 구했다. 사실 혼자가도 상관없는데 나의 사진 기사를 구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나 같아도 금수 같은 놈이랑 누가 같이 동행을 하냐 말동무라도 얻어서 다행이다.
일단 숙소에서 직진하면 갈 수 있는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내가 동행하자고 했으니 세워왔던 계획을 보여드렸다.
일정을 보고 꽤 경악하셨는데, 그만한 일정을 하나하나 다 치를 예정은 아니었지만 성까지 올라가는 길에 운동을 하러 온 건지 여행을 하러 온 건지 째려보는 이 분 눈빛이 죄송스러웠다. 네가 선택한 동행인이다라고 말하면 죽빵 맞을 수 있으니 좀 조심스러웠다.
프라하 성은 9세기에 건설되어 기네스 북에 기재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년의 성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아주 사랑했던 장소라고 한다. 내부에는 14세기에 제작된 고딕 양식의 성 비투스 대성당이 있다. 비투스 대성당은 체코어로 (Katedrála svatého Víta)인데 진짜 읽기 어렵다. 그러나 독일어만 할까.
그래, 이 왕들이 좋아한 이 장소가 얼마나 대단한지 터인지 내가 직접 출동해서 확인해 봤다.
그러나 특유의 웅장한 느낌은 어느 정도 받게 된다.
좀 더 걷다가 대성당을 보게 되었다. 정말 엄청나게 뾰족뾰족한 고딕이구나
휴대폰에 사진이 다 담기지도 않는다. 어떻게 찍지 이걸?
뭐지. 마치 무언가를 할 것처럼 그러던데 그냥 가버리네
이들은 이렇게 행진 후 성 뒤편(스타벅스 부근)의 근무 교대를 하러 간 군인들 장소에서 연주를 한다고 한다.
코로나 때는 하지 않았다는데, 이제 좀 풀렸는지 군악대 행사도 보게 되었다. 성에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서, 아침에 9시쯤 일찍 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슬슬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었는데, 표를 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10시에 오면 아마 좀 늦은 거라고 생각한다.
표 값은 보통 250코루네 짜리b코스를 많이들 구매한다. 같이 온 동행인은 J인데 조사를 안 했다더니만 무슨 관광지 내용 나올 때마다 옆에서 술술 외는 것을 보니 조곤조곤 뼈 때리는 타입이신 것 같다. 다 조사했다 하나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 사람을 만났구먼.
일단 표를 사고 비투스 성당부터 들어갔다.
일손을 줄이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돈 내고 빛 에너지를 이런 식으로 보기에는 납득이 되지 않아서 여기는 초를 안 켰다.
성당 내부가 많이 큰데, 안에서도 뾰족한 고딕 양식이 느껴질 정도이다.
종교가 없는 나는 불교인 가족들 따라 절에만 다녀봤기 때문에 저 그림들에 대한 심오함을 알지 못한다. 무릉도원 같은 개념이라고 봐야 되는 건가.
페인트 칠? 같은 코팅이 덜 마른듯한 느낌이다. 최근에 다시 한 것인가 싶은 느낌이다.
옥장판에 잘 쓰일 것 같은 재료이다.
그래 잘 모르는 내가 뭘 알겠나, 이 장엄한 건축물을 그저 보고 느끼는 수밖에 없다.
좀 더 둘러보자.
회전회오리 꽈배기 같은 조각 동상과, 파이프라인 길게 뻗어놓은 듯한 기둥들이 눈에 들어온다.
재료공학도로서 보자면, 저런 조각상들에 사용되는 돌 들이 취성을 갖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 돌 고르는 것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깎아 나가야 되는데, 조금이라도 금이 가면 붙일 수도 없기 때문에 수틀리면 처음부터 싹 다 시작해야 된다. 지금이야 몰드에 부어 찍어내면 그만이지만, 그때는 그런 것도 없어서 장인 정신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다.
성당이 생각보다 넓었는데, 교회 테이블에 앉는 건 막아놨다.
그래 볼만큼 봤다. 이제 나가보자.
나는 이분 사진 270장 찍어줬음.
어디 미니게임에서 나올듯한 성이 보였다. 뭐라고 검색할지 몰라서 분홍소시지 성이라고 혼자 명명하였다.
내가 아래에 낭떠러지라서 걸어 앉으면 굴러 떨어진다니까 웃는다. 이런 개그 좋아하는구나 이 어린 녀석.
나는 내가 모험하며 날씨가 안 좋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날씨 요정은 나의 편이거든 ^-^
그 외에도 티켓에 나와있는 다른 문화지를 가봤었는데, 똑같이 영험하고 좋은 곳 밖에 없었다.
자꾸 길을 똑같은 곳을 오니까 동행인 분의 눈빛이 레이저를 발사했다. 근데 이 분 I 같은데도 생각보다 할 말은 다 하시는 분이라서 같이 걸어가며 뚜들겨 맞은 수준이었다.
굴뚝방 만드는 열처리 기계를 왜 기둥으로 박아놨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모질이 공돌이가 알 수 없는 신성함이다.
솔직히 저거 기둥 보고 그 치즈분수 기계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분들은 왜 이렇게 스키니 진을 좋아하는지 옷들이 죄다 촥촥 달라붙는 것들이다. 유럽 여행하며 왕들의 의복들이 거의 다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왕들의 교복 같은 것인가.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사용한 숙소를 전시해 놨다.
저 철갑 따라 올라가면 기념품 판매점과 각종 무기들을 전시해 놓은걸 볼 수 있었다.
잠깐 들어온 것만으로도 전사의 마음을 끓어 넘치게 하는 장소였다. 어렸을 때 꽤 많이 고민해 본 검과 방패, 창, 둔기, 활 등 이 중에 어떤 무기를 가장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 단연 8톤 덤프트럭이었다.
과학을 뭔 수로 이기냐
왼쪽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저 문을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 근위병들이 근엄하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저들을 존중한다면 자극하지 말고 그저 스쳐가듯 바라보는 게 그들을 존경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맥도널드 친절한 아르바이트생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이름 뭐냐고 물어보길래 MK로 해달라니까 마이크로 케이 뭐시기? 아무튼 무슨 뮤지션 이름 아니냐고 재치 있게 대답해 준다. 그래 깡패 같은 이미지만 아니면 되었다.
이니셜 옆에 무슨 그림을 그려 놨는데, 나 그린건가? 싶었는데 본인 얼굴 그려 놓은 거였다.
같이 동행해 준 감사의 표시로 마실 것이랑 케익을 사드렸다.
생각보다 사진을 너무 잘 찍어주셔서 사진 값인 것도 있는데,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이제 다음 전망을 위해 장소로 이동해 보도록 하자.
휴대폰으로는 잡을 수 없는 색감이 있다. 매우 푸르고 더 청명한 느낌의 하늘이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 찍기가 정말 어려웠지만, 다행히 타이밍이 오긴 했었다.
절벽 떨어지면 고양이처럼 낙법만 잘해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스트라호프 수도원(Strahovský klášter)으로 향했다. 그곳 근처 양조장이 맛집이라고 한다.
또다시 경사진 길을 올라가게 되었는데, 이 동행인 분이 또 레이저를 쏜다.
"아니 님, 여기 계시면서 여기 오실 거 아니었어요? 왜 자꾸 그렇게 레이저를 쏘십니까"라고 물으니까 여자친구 이야기로 발작버튼을 누른다. 정 힘들면 쌀포대 나르듯 짊어지고 올라갈 수 있다니까 경악하신다.
이분은 나랑 동갑이었는데, 내년에 결혼 예정인 남자친구가 있다고 한다. 몇 마디 조언을 구했더니 이런저런 걸로 내 모질이 같은 부분들 마다 비수를 꽂아버린다. 본인의 입장은 본인과 본인 남자친구조차 우리 결혼해?라는 분위기라고 해서 그게 웃겼다.
일정이 안되어 혼자 오게 된 이 분에게 나는 I 성향이라고 혼자 왔다고 말해도 믿지를 않는다.
생각보다 굉장히 맛있었다. 여기 진짜 맛집이었다.
동행인은 슈니첼을 시켰는데, 저 음식도 거의 남겨서 돈 아까우니 포장하는 게 어때요? 제안했었다.
그렇게 저분은 오전 내내 돈까스 들고 프라하의 거리를 누볐다. 사진 찍을 때마다 돈까스가 함께 찍혀서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걸을 줄은 몰랐는데, 그분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겠죠? 하니까 또 레이저를 쏘신다. 이쯤 되면 이상한 놈으로 본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수도원 티켓은 따로 구입해야 되는데, 당일 건물에서 수도원 매표소가 문을 닫았었다. 그래서 건너편 건물로 들어가 티켓을 구입했었다.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지는 않고, 밖에서만 보는 것을 추천해 주길래 그 티켓으로 했다.
한 장 한 장 직접 손으로 작성한 건데, 단 한 자도 오타가 없었다. 오타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쓰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기술력이 대단한 듯싶다.
저것도 저 정도인데, 플라스틱들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 걸까
바이블인 거 아닌가? 사실 무엇인지 글 읽기보다 사진 찍기가 바빴다.
여기 일정도 오전 시간 안에 클리어했다. 이제 페트린 전망대(Petřínská rozhledna)로 향했다.
이 정도 더운걸로도 정신 못 차리는데 대체 이집트 사막은 무슨 생각으로 가려고 했었던 거지?
더워서 정신이 없었다. 높은 곳으로 가면 좀 낫겠지 싶었다.
전망대도 올라가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노약자들은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내 돈 내고 내가 스스로 올라가는 건 그렇다 쳐도, 정말 무방비하게 위험해 보이는 타워였다.
경사진 길을 그렇게 올라오고 또 계단을 타니까 다시 레이저가 시작되었다. 한참 올라가더니 레이저 쏠 힘도 없는 듯. 그래도 여기 와서 이런 경험 추억해 보지 언제 또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욕을 때려 박으려는 게 보여 도망쳤다.
풍경이 쥑이네 날씨요정님 감사합니다.
는 돈을 안 넣어서 내 눈알만 비치고요
동행인 분이 나름 책임감 있으시게 사진을 좀 많이 찍어주셨다.
사진만큼 지금을 추억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쿠키런이 생각나는 이유가 뭐지?
공학맛 쿠키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저 파란색 맛은 블루스카이라는 맛인데, 슈팅스타 같은 맛이 났다.
그렇게 다시 까를교 근처 문화지를 향해 브르트보브스카 정원 (Vrtbovská zahrada) 먼저 갔다. 여기도 또 입장료가 필요했고 더워 죽겠다 싶어서 그냥 까를교랑 레넌 벽을 구경하고자 했다.
이 정원은 18세기 테라스형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단 한 마리도 고양이를 보지 못했었는데, 여기서 보게 되었다. 그것도 검은 고양이를
나는 고양이 보다 강아지가 더 좋은 듯
존 레넌 벽에 다시 왔다. 이번엔 사진 잘 찍어봐야지
저 파란 문양의 레넌 그림이 생각보다 인기가 많았었다. 인도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20분 정도 사진 찍고 있었는데, 가족 단위로 왔는지 한 명 찍고 나면 그만두는 게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1, 2, 12, 123, 1234 이런 식으로 사진을 촬영했다. 누가 줄 서서 찍는 것도 아니고 몰린 군중들이 너도 나도 찍는 상황에서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건데, 이들은 싹 다 무시하고 본인들 마이웨이한다.
저곳에 낙서하려 동행인의 펜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걸 본 이들이 펜을 빌려달라고 계속해서 기다렸다. 한 사람을 빌려주니 옆에 있던 또 다른 인도인이 와서 빌려달라 그러고 또 다른 인도인이 와서 반복했다.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나, 색안경을 끼고 보게 만드는 이들은 아직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좀 부족한 듯하다. 각 개개인 간에 자존심들이 너무 높은 건지, 아니면 자라온 계급사회의 환경이 그렇게 의식하게 만든 건지
어쩌면 이들도 인생에 단 한 번뿐이니까 이렇게 행동하는 것 일수도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되었다.
펜을 7명째 빌려주게 되자, 내가 먼저 쓴다고 돌려받고 그대로 조용히 빠져나왔다. 이럴 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야 성공이다.
동행인이 탈출 기념으로 찍어줬다.
자 이제 까를교로 이동하자
강아지? 같은 그림이 있었다.
박사 꼭 따게 해 주세요(X) → 박사 꼭 따겠다(O)
가족들에 대한 것, 나 자신에 관한 것 그뿐이다.
이루어주면 좋지만, 이제는 내가 누구에게 빈다고 해서 그들이 내 학위를 대신 따준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같이 온 동행인 분은 바로 들어가서 주무심 그럼 일단 오늘은 진짜로 비버나 찾으러 가보자
가는 길에 출출해서 굴뚝빵이나 먹어보자고 추천받아 갔었다. 주소를 잘 못 찾은 건지, 크레페 집이 나왔고, 다시 인터넷 검색해서 걷게 되었다. 가는 길에 본 저 ㅈㅂ은 죽빵? ㅈ밥? 내가 생각하는 만큼 보였는데 왜 내가 타격이 있는 거지
아무튼 굴뚝빵 유명 맛집으로 향했다.
진짜 실망 많이 했다. ★☆☆☆☆ 개 짜리 살면서 한 번만 먹어볼 맛
아니 사진으로는 그렇게 맛있어 보였는데 여기 콜레뇨나 굴뚝빵이나 회전율을 높이려 다 만들어놓은 것을 판매하는 게, 공장에서 찍어내듯 물품 처리하려는 생각 밖에 안 든다. 날이 더워서 굉장히 빨리 녹았다. 저 아이스크림 덕에 빵도 눅눅해지고 먹기가 힘듦.
먹거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맛집이라는 곳을 잘 안 간다. 현지인들에게 숨은 골목 맛집처럼 숨은 고수처럼 외국인들의 Pick을 가려고 하는데, 그런 곳은 막상 가면 짜고, 시고, 그들의 환경과 우리의 자라온 식문화 환경의 차이를 알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나는 물론 그런 맛도리 협객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인들의 pick을 따르는 건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왜 나는 이 체코에 와서 시작부터 끝까지 비판적인 사람이 되어가는가
복잡한 생각 가운데 강 밑에 비버 찾으러 왔는데 진짜 비버가 안 보인다. 다 퇴근했나 보다.
오늘 밤은 야경을 보러 가고 싶었다.
10시까지 저 할로겐 불 등을 켜 준다고 한다. 노란 불빛 속에 프라하 성이 눈에 띄는 와중에 야경은 9시에 해가 지는데, 전쟁 때문에 에너지 아낀다고 짧게 틀어줘서 1시간 정도밖에 못 본다.
가족들의 추천으로 프라하에 온 이유가 이 야경 때문인데, 특히 동생이 보고 싶어 했던 야경이다. 프라하의 낭만이 좋은 걸까. 매번 보는 유럽 야경은 어딜 가나 똑같이만 느껴진다.
내가 그런 낭만이 없어서 시큰둥하게 생각되는 것 같다. 왜 이리 부정적인 건 갑작스럽게 마음에도 없는 휴가를 받아서 뭐라도 해야 하는 마음 때문에 압박받는 걸까, 아니면 휴가를 즐길 줄도 몰라 여기까지 와서 불안해하는 내가 화나는 걸까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내 취향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음식이나, 장소에 별 감흥 없어하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다.
맛없는 걸 먹어도 경이로운 배경을 봐도 나 스스로는 별 관심도 없던 것이기 때문이다. 술 마실 때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라 그 분위기가 좋아서 마시는 것과 같은 느낌이지.
그래서 이 낭만의 야경을 오롯이 혼자 보지 못하고 가족끼리 같이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어줬다. 셀카봉이 없어 좁은 난간에 서로 광각을 보고 있는 게 재밌어서 찍어드린 건데, 우리 가족들도 저렇게 마음 편히 좀 같이 왔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사진을 너무 열심히 찍어준 탓인가, 그들도 나를 찍어준다.
사실, 사진 촬영을 위해 휴대폰을 맡길 때 어르신이나 가족들과 함께 온 일행한테만 맡긴다. 내 시그니쳐가 뒷모습을 찍는 건데, 들고 튀어도 노인분들은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깐 이야기 시간 동안 왜 혼자 왔냐, 독일에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시는 한국인 일행분들이 계셨다. 간단한 대화 끝에 즐거운 여행 되라는 말은 내 발걸음이 더 가벼워진다. 이런 것에서 에너지 얻는 사람이구나 난.
까를교에서 찍는 것보다 까를교를 촬영하는 게 더 뷰가 좋은 같다.
왜 저것만 LED를 켜줬지?
1/3이 한국인이다. 정말 많이 보인다. 유명 지역이다보니 이 구역만 인구들이 밀집되어있다.
그래 언젠간 함께 오는 거야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 이전에 결혼하고 3~4년간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던 분들이 많이 계셨다.
숙소에도 울산에서 온 신혼부부 1쌍이 계셨는데, 여자 연상 남 연하 커플로 이야기 내내 보기 좋다는 생각뿐이었다. 딱 맞는 사람들끼리 만난 느낌.
무언가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다 울산 관련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인생에 울산 지역 지인들은 죄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뿐이었고,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뿐이었다. 학부 때 포스코와 울산 제철소를 견학한 적이 있었다. 거기 일하시는 분에게 간단한 울산 지역 명소들을 소개받았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다시 상기되는 거 졌다. 몇 년 전 그때는 해외에서 이러고 있었을 거라 상상이나 했었는가.
나도 울산 사는 아는 사람 있다니까 바로 여자냐고 물어보더니 왜 여자냐고 물어보니까 본인이 여고 나와서 아는 사람 있을까 하고 그러신다. 이 와이프분은 성? 모? 마리아? 고등학교인가 성? 불교? 고등학교? 인가? 아무튼 뭔 여고 나오셨다고 했다.
아직도 여고가 존재한다라니라고 생각하기에는 나도 사실상 분반인 공학을 나와서 남고와 다를 바 없었다.
울산 지인들 중에 본인이 졸업한 고등학교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동기가 있었다. 울산 현대 청운고였나. 무슨 무협지 검 이름 같은 학교였는데, 대학 진학을 여기밖에 못 왔다고 자책하는 모습에 승부욕이 강한 아이구나 싶었다. 울산도 안산처럼 비평준화된 지역인가 싶었다. 인원 미달로 운 좋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그런 자부심을 알리 없다. 그저 거기서 굳이 안 겪어도 될 이야기들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결국 이 여자애는 노력 끝에 서울대 대학원으로 입학하게 된 소식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또 다른 울산인 같은 과 동기는 반수를 해서 건대로 입학했는데, 1학기 여름방학부터 2학기 끝날 때까지 생활비도 아껴가며 그 시설 구린 동아리 방에서 몇 달을 살았다는 게 참 대단했다. 버섯 포자 냄새나는 그 방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보게 되었을 때는 군대 갈 때 한번 보고 그다음에 못 보게 되었다.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겠지.
지난날에 내가 아는 울산인들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건지, 사고방식이 특출난건지 시야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손 뻗으면 닿을 수 없는 그런 유형들. 그들의 마음은 울산 바위처럼 굳건하다. 어쩌면 내가 먼저 멀어진 것 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들의 능력을 볼 때마다 이것이 울산과 안산의 차이인가. 국제개발도상국 같은 느낌의 안산 주민은 광역시의 환경에 벽을 느낀다고 생각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고군분투하며 본인 스펙을 쌓아갈 때 즈음 나는 생각 없이 진로에 대한 회의감에 빠졌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업군인을 바라보았던 그때의 기억이 상기되었다. 지루하고 따분했던 프라하에 와서 동기부여에 대한 정신을 좀 차리라고 만들어진 상황 같았다.
그렇게 이 울산 부부의 관심도 없던 러브스토리까지 듣게 된 이후 술이나 한 탕 마셨다. 부다페스트로 부부 스냅샷 찍으러 갈 예정이라 내일 바버 샵 간다는데, 대신 머리를 밀어주고 싶었다. 그나마 여기 사장님이 나보다 1살 어리신 분이었는데 아직도 결혼 안 했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다. 역시 사장님 밖에 없다.
사람 사는 세상 참 좁다고, 여기서 안산에서 사셨던 중년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다시 프라하로 넘어오셨다고 했는데, 거기 한인 민박집에서 실망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그들의 대학 시절 연애, 얼마나 잘 살았는지에 대해 궁금하진 않았으나 나의 아부지 어무니가 이들보다 세월을 사셨음에도 유럽 여행 한 번 못 와봤다는 게 아쉬운 마음이었다. 올해는 꼭 박사 따서 함께 유럽으로 여행 왔으면 한다.
이렇게 2일 차 프라하의 밤이 졌다. 내일은 꼭 비버를 찾아보자.
3줄 요약
1. 동갑내기 예비 신부라는 사람과 프라하 성에 동행하게 되었다.
2. 이 동갑내기 인생 선배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로 조곤조곤 뼈 때리는 걸 듣는 게 발작버튼 핵버튼 다 눌려졌다.
3. 가족들이 생각나는 밤이지만, 그때를 위해 더욱 열심히 달려야겠다. 비버는 내일 꼭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