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잡아줄 중심의 닻
남겨진 사람은 먼저 떠나간 이를 떠올린다. 그립게도, 나는 명이 짧았던 나의 작은 삼촌이 가끔 생각이 난다.
술과 한탄을 가까이하며 일과 멀리할 핑계만 내세웠던 삼촌은 내 기억 속의 마지막 모습으로 상기되곤 한다.
2022년 겨울의 북극, 말없이 꿈에 나왔던 삼촌은 백사장의 파라솔 아래 앉아 말 한마디 없이 커피 한잔만 권하였다. 그렇게 북극 모험을 하던 중 당신의 아들은 내게 군입대 소식을 전했다.
다시 한번 꿈에서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빌었던 소원이 2년이 가까이 되어서야 들어주었다. 이번에도 끝끝내 말 한마디 없이 휴게소 한가운데서 커피를 권하는 당신이었다. 이번에는 당신의 아들이 무사히 전역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동시에 일 안 하는 백수가 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말이다.
삼촌은 생전에 내게 바라는 게 없었다. 술로 망가진 몸이 걱정되어 찾아뵈었을 때도 그저 당신의 조카가 왔다는 이유 만으로 웃으며 반겼다. 그런데도 택시를 타고 가라며 꾸깃한 지폐 돈 몇 장을 또 쥐어준다. 감정이 격해졌다.
삼촌은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착하고 말 잘 듣고 똑똑한 조카. 그가 막걸리를 한 껏 들이키며 반복했던 말들이다. 나는 그런 삼촌이 언젠가 다시 딛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에 박사가 되면 같이 낚시나 가자고 약속했지만, 삼촌은 나보다 먼저 배를 타고 떠나버렸다. 그래서 저 멀리 손에 닿을 수도 없는 당신을 박사가 되어도 멀리하였다. 그런 삼촌이 참 밉고... 그립다.
꿈에서 뜬금없이 나타나 묵묵부답 했어도,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는 이해했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더욱더 격해졌다. 당신의 백수 새끼 자식이 지금 가족들의 말을 안 들어 먹는다.
삼촌은 세상에 겁을 냈었던 것 같다. 그가 겪은 실패들은 다시 걷지 못하고 길을 잃게 만들었지만, 그의 하나뿐인 아들은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것 같다.
그러나 당신의 조카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아니었다. 스스로도 중심도 못 잡는 모질이인데, 누구를 챙길 수 있나. 나는 닻이 아니다.
삼촌이 애석하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미 명을 달리 한 사람을 뭐라고 하겠나. 단지 꿈에 나왔다는 이유로 내가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판단할 뿐이다. 밉고 또 그리운 삼촌임에도, 적어도 당신의 아들은 길을 잃지 않게끔 등대 빛의 역할을 할 것이다.
다시 또 한국에 방문하면 그때는 삼촌의 비석을 찾겠다. 약속했던 학위와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