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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Jan 01. 2023

시간과 감정

그리고 떠나간 사람

올해는 너의 해가 될 거야. 너의 인생을 항상 응원한다!

바람 하나 불지 않는 고요한 날씨에 마음만 시끄럽게 파도치는 날이 있다. 마음은 앞서 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그러했다. 당장에 휴가임에도 쉬지 않으려는 태도가 문제인 것 같다. 물론, 개운한 날 없는 마음 속 소용돌이의 원인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나는 억지로 더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아들이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우선 자식 걱정부터 먼저 안심시켜드렸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옆에 조용히 듣고 있는 아버지가 말없이 더 심난해보인다. 당신의 걱정은 오롯이 내가 혼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부모님과 자식의 마음은 다 똑같겠지만, 이야기는 다 다르다. 가족이 보고 싶지만, 보면 안된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오며 다짐했다. 매 해 소원을 빌 때마다 비슷한 문구를 들이댔다.  "~ 해주세요, ~ 싶어요".

그러다가 문득 문구가 바뀌었다." ~한다, ~하겠다". 내 꿈을 이루는데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독한 척하지만 속은 참 물렁한 지방 덩어리이다. 그래, 그래서 올해 초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은 얼마나 이루었는가? 실력은 없으면서 입만 산 그런 사람. 시간이 갈수록 내 까칠한 성격과 고집만 더욱 세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다짐 하지 않으면 손에서 놓아 버리게 될 것 같다. 나는 그게 제일 두려운거다.


무턱대고 목표의 결정권을 내리는 내 생각의 출저를 알 수 없지만, 봐왔던 가족들로부터 나도 모르게 새겨진 것 같다. 어떨 때는 내가 무슨 깡통 로봇도 아니고 왜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데 달려나가는 것 같다고 느낀다.

이 먼 북극까지 와서 나는 무엇이 보고 싶었던 걸까. 과연 오로라가 목적인가, 바닷 속 생명체들인가. 아니면 신비로운 자연 광경인가.


타이밍이 무섭게, 여행 중에 전화를 받았다. 다음 주 입대 한다는 친척의 전화였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우리 외할머니. 그 자식이 남긴 아들과 둘이 함께 살았는데, 다음 주면 못 보게 된다. 당장에 혼자 남겨진 외할머니가 걱정이었다. 참 마음이 스산해진다.


이 눈밖에 없는 땅에 와서 내가 뭘 얻고 싶은건가. 내가 당신의 또 다른 다리, 눈이 되어 발버둥 친다고 죽은자가 돌아오는가. 마음만 더 시끄러워졌다. 언제나 생각의 끝은 내 무능에 대한 자책이다. 만약에 함께 왔었으면 정말 좋았겠다. 우리 삼촌.


오로라가 춤을 추는 와중에 운이 좋게도 떨어지는 유성우들을 보게 되었다. 덕분에 이곳에서나마 빌게 되었다. 이 진광경들을 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다음에는 함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내내 그런 경이로운 것들을 보며 빌고 다짐하며, 참 옛날 사람들 급제 같은 개념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당신들을 대신해서 그런 것을 이루어 내기에는 아직도 한없이 약하고 어리석은 놈이지만 결국 이루어 낼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 수 많은 다짐들 속에서도 아쉬운 점은 당신의 조카가 이루어내는 그 순간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욱 멀리 배를 타고 떠나 만난 고래들도 이 마음 속 파도들을 진정시켜줄 수 없었다. 내가 내 다짐들을 이루어 내기에는 너무나도 모질이 같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저 북극의 산에 올라가 돌을 쌓았다. 애초에 스스로 마음하나 진정 시킬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타고난 이 부족함은 계속해서 사그라 들 때까지 불태우면 되는거겠다.

북극의 고래들, 마테호른, 독도, 오로라, 유성우 죄다 3대가 덕을 쌓지 않으면 못 본다고 한다. 가족을 연관지어 대는 저 여행 상술에 내 발작버튼이 눌러져 올 해 저런 곳만 찾아 골라 갔다. 덕이 없어 못보면, 볼 때까지 덕을 쌓겠다.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없는 사람이 아니다 라며 이를 아득바득 갈아대고 갔다.


사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이 골통 같이 행동 하는건 나이 먹을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참 완벽하지도 섬세하지도 못하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고 남은 휴가를 거의 반납하다시피 일만 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위해 휴식을 주지 못하는게 아니라, 남들처럼 똑같은 시간에 일을 해도 능률이 안 맞는거다. 이렇게 아둥 바둥 하지 않으면 못 따라간다.


남들처럼 100개 중에 100을 모두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죽자고 달려들면 적어도 1은 할 수 있겠다. 올 해에는 그렇게 100개를 다 이루는 순간에 가족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다른 한편으로 이룰 수 없는 현실에 생각나면 눈물이 벅차 오르고 그리운 삼촌이지만, 보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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