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자기만족이다.

by 김태연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려니 해야 할 일들만 눈앞에 보였다. 산더미 같은 빨래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설거지통,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는 청소기까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이제 좀 해야 하지 않아?라고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런 것 따위! 좋아 그냥 나가버리겠어! 첫째 아이의 하교시간이 채 2시간도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한시가 급했다. 어서 나가야 해! 여길 탈출하자!



무작정 나오긴 했는데, 갈 곳을 잃어버린 터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결국은 살림 용품들이 잔뜩 있는 리빙샵이다. 바보같이, 그렇게 크게 외쳐놓고선 살림살이를 보러 오다니! 자괴감에 빠진 나는 곧 아이쇼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왠지 이거 있으면 편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지배할 때쯤 나는 쇼핑 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읽었던 정리 책들과 미니멀에 관한 책들은 다 어디로 갔길래 이렇게 쓸어 모으고 있나? 자신 있게 외쳐 나와놓고선 고작 다시 집안에 뭔가를 들이려 하다니. 왠지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선생님에게 무지막지하게 혼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차분히 다시 물건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고, 나는 개껌을 집었다. 개껌 하나 정도는 사도 되지 않겠어? 그게 화근이었다. 개껌을 계기로, 나는 스텐으로 만들어진 비누받침대를 집어넣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요리 스푼도 한 개 집어넣었다. 요리를 얼마나 한다고. 하마터면 빨래 바구니도 2단으로 된 걸 살뻔했는데, 다행히도 재고가 없었다. 이제 그만 사라는 계시였나 보다.

집에 돌아온 나는 일단 가격표부터 떼어내었다. 그러면 반품을 하고 싶어도 못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비누받침대를 놓으며 음, 나쁘지 않군. 생각한다. 강아지에게 사온 껌 하나를 주고, 요리 스푼은 얼른 씻어서 말려두었다. 나무로 만든 식기들은 대체적으로 회전율이 빠르게 바꿔주는 편이다. 나무가 세제를 흡수한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기억이 있다. 만족스러웠어. 나는 나 자신을 달랜다.


결국 기어코 집을 나간 것도, 리빙샵에 가서 물건을 구매한 것도, 그리고 지금 이와 같은 일기를 쓰는 것도 다 자기만족인 셈이다. 타인을 만족시켜봤자 그건 결국 아무 일도 아닌 행위에 불가하니, 나는 나 자신을 만족시킬 것이다. 비누를 쓸 때마다 보며 생각하겠지. 괜찮은 쇼핑이었어. 그렇고말고.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다독인다. 한 가지 좋은 습관이 생긴 건, 왜 소비를 해야 하는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다는 것이다. 그 많은 책들을 읽었던 결과는 미미했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셈이다. 마치 내 아들이 축구를 시작하며 공도 제대로 못 차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드리블도 하고, 슛도 찬다.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은, 내 인생에는 없을 줄 알았건만,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라며 웃기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하다니. 그것도 소비하기 전에 말이다.



비록 지금 쓰고 있는 나의 이 글들은 내일 보면 부끄러워질 것이고, 내일모레 보면 더 부끄러워질 것임을 안다. 사람은 희한하게도 늘 과거형이 되면 아쉽고, 민망하기도 하고, 고치고도 싶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며 미래에서 다시 돌아보면 아쉽고, 부끄러울 것이다. 내가 고치려고 했던 습관들은 생각보다 고쳐지지 않았음에 안타깝고, 내가 없애고 싶던 순간들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현재를 살아가기로 했다. 미래는 미래고, 과거는 과거고, 현재 지금 내가 딛고 있는 이 현실에 만족하기로. 비록 필력이 바닥이어도 나는 글을 써보기로 도전했으니 지겨워질 때까지 써볼 것이고, 생각 없이 사재 끼던 과거 쇼핑에 비하면 적어도 생각이라는 걸 하니 그걸로도 한 발자국 더 나아진 셈이다. 쇼핑 덕에 글감도 생기고, 참 사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역시, 뛰어나가길 잘했다. 물론 와서 뒤집어진 집안을 보며 금세 후회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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