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땐 장비 빨로 무수분 수육을 해보겠다고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냄비를 산적이 있었다. 그 냄비는 너무 무거워서 딱 한번 그 수육을 해 먹고 지금은 서랍장 어디 안 구석에 조용히 잠자코 있다. 내가 그때 깨달은 건, 요리를 할 때 냄비가 무거울수록 손에 잘 안 쓰게 된다는 것이다. 라면 먹을 때조차 말이다.
나는 주로 프리랜서 여자들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를 보곤 하는데, 어찌나 음식을 잘해먹는지 주부 10년 차인 나보다 음식으로써 대 선배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오늘은 그 유투버 중 한 명이 양배추 덮밥을 해 먹는 걸 시청하고 나서 집에 있던 양배추로 똑같이 덮밥을 해봤더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그 유투버가 왜 맛있다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요즘 혼자 사는 여자들은 정말 잘해 먹는다. 스스로 요리 연구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어디서 배워오는 걸까 싶을 정도로 집밥을 잘해먹는다. 나도 한 번쯤 똑같이 해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요리 못하는 여자인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다. 어떻게 혼자 사는데 저렇게 일일이 정성 들여가면서 먹는 거지? 혼자 살면 원래 인스턴트의 향연 아니었나? 나는 혼자 살지 않는데도 인스턴트 생활인데, 매 끼니마다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이 힘들지 않은 건가? 댓글로라도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자기 자신을 아끼고 돌볼 줄 아는 사람들임을 유튜브를 보다 보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나는 반대로 나를 아끼지 않아서 밥도 대충 먹고, 인스턴트도 많이 먹는다.
나는 이와 같은 생활을 조금씩 그만두기로 해볼까 생각한다. 이 생활은 굉장히 간편하지만 몸이 무거워지며 생각보다 편안하지 않다. 그리고, 꼭 음식 탓은 아니지만 사소한 감정에 예민해진다. 몸이 편하지 않으니 마음의 여유가 생길리는 당연히 없는 법이다.
어제 사온 토마토에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내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 쉽게 벗겨지는 토마토 껍질과 꼭지를 따내고, 주먹만 한 토마토를 뭉텅뭉텅 썰어냈다. 아무것도 담지 않은 냄비에 토마토를 넣고 끓이면서 가끔씩 숟가락이나 주걱으로 으깨준다. 얼추 토마토에서 물이 나왔다 싶으면 끄고, 올리브유 조금, 소금 조금 넣는다. 한 김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시원한 토마토 주스가 된다. 익혔으니 토마토의 성분도 몸에 더 좋을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엄마가 딱 3일 동안 산후조리를 해줬을 때 배웠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종종 이렇게 토마토가 나오는 계절에 해 먹는다. 기억은 선명해서 한 컵 따라 마시면 엄마가 금방이라도 달려와 다시 어린 나의 둘째 아이를 안아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꽤 좋은 기억이다. 엄마의 음식 중에서 순위에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간단하지만 생생한 토마토의 붉은 기억이 한편을 차지한다.
엄마는 내가 잘해 먹기를 바라지만, 나는 엄마의 생각보다 더더 형편없게 해 먹고 있다. 어쩌면 육아에 치인 다는 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엄마의 토마토 주스가 기억에 선명한데, 다 알고 있으면서도 안 해 먹다니.
그레도 며칠은 먹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나겠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다정다감하고 애틋한 엄마는 아니지만 딸에게 기억에 남는 음식을 해주던 엄마는 애잔하다.
오늘은 둘째도 일찍 데려왔으니 뭐라도 해서 맛있게 먹어야지. 나는 다짐하며, 눈에 보이는 라면을 애써 피한다. 하하, 정말 언행불일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