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설거지도 했고, 청소기도 돌렸고, 애들도 등교, 등원시켰다. 아, 이제 오전 할 일이 끝났구나 싶어서 한숨을 돌렸다. 열어둔 창문도 닫고, 습한 기운이 몰려오니 에어컨도 켠다. 바나나 한 개를 뜯어먹으며 빨리 먹어치워야 이놈의 날파리들 사라지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온전히 쓸 시간이 주어졌다. 뭘 써야 할까. 막막하다. 탁상 달력을 보니 월요일에 정신과 가는 날이라고 적혀있다. 음.. 벌써 그렇게 돌아왔군.
정신과에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내가 가는 곳은 다행히 예약제라 서로 부딪힐 일이 거의 없다(난 그 제도가 참 좋다고 생각한다) 전에 다니던 곳은 사람이 정말 북적북적거렸다. 그러나,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암묵의 시간처럼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온 사람들 같이 보였다. 우울증도 있을 것이고, 뭐 다른 이유로도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점점 더 많아지는 병원의 사람들을 보며 놀라기도 했다. 아니 왜 점점 많아지는 거야?
코로나가 한몫했다고 했다. 나의 지금 선생님은. 태연 씨 같은 분들 많아요. 집에서 살림하고 애 보면서 우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썩 괜찮은 비교의 말을 해주는 선생님의 눈에서는 친절함이 묻어났다. 나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천만 원의 값어치가 있는 말이었다. 그건 첫 번째 병원이나, 두 번째 병원이나 똑같았다. 태연 씨만 그런 거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라고.
마음의 감기로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나는 듣지 못하니 각각의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상하리만치 말이 없는 사람들. 병원 특유의 분위기일까. 사람들은 마음이 아프면 말하고 싶지 않아 지나. 나는 문득 그런 의문이 듣다가도 깨닫는다. 그래 나도 힘들 땐 누군가와 말하는 그 에너지조차 소진하고 싶지 않았었지. 나도 그랬음을.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면서도 나는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 저 사람은 어디가 힘들어서 왔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며.
요즘 사람들은 너무 우울하다. 자신의 대한 확신도 없고, 무기력한 순간들의 연속이다. 꼭 코로나 때문일까. 사람을 못 만나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자신이 다니는 일에 대해 버티고 버티다 지쳤을 수도 있고, 외로움이라는 감정으로 찾아온 우울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고, 나처럼 무기력한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 우울이 한몫할 수도 있고. 꼭 우울만으로 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우울적 성향을 띠는 것 같았다. 내가 몸소 느낀 정신과는 그랬다. (더 큰 이유였으면 좀 더 큰 병원을 찾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아픈 사람들은 많고, 생각보다 잘 낫질 않는다. 환경이 변하지 않아서? 스스로 변하지 않아서? 그 어떤 말로도 해답을 찾을 순 없을 것 같다. 감기처럼 주사 맞고 단번에 나아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마도 우울증이라는 병은 인간에게 그렇게 주사 한방으로 낫기에는 심오하고, 어려운 병인 탓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주로 번아웃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기도 한다는데, 우울이 찾아오기 위해 번아웃이 먼저 침투하는 걸까. 참 가지각색으로 오는 병이다 정말.
극복.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 둠.이라고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나의 우울을 내버려 둔다. 고치는 건 선생님이니까. 그래서 찾아간 거니까 고쳐주시겠지. 하는 마음인 거다. 그래도 힘들면 찾아간다. 얼결에 맞닥뜨린 다른 환자는 웬만하면 눈을 안 마주치려 핸드폰을 한다. 그 마음, 나도 잘 알겠다.
마스크 덕분에 얼마나 다행인지.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할 말이 없어질 것 같다. 쉽게 찾아가기도 힘든데, 쉽게 말하기도 힘든 병이다. 마음의 감기라는 건 순 거짓말이다. 감기라면 빨리 나았어야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우울의 척도를 매번 갈 때마다 문항을 고르며 그래프로 보여주셨던 선생님은 이제 나에게 문항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나아지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대로라 별로 필요가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 조금 이상한데? 싶으면 얼른 가야 한다. 의사를 봐야 초조함이 100에서 1 정도는 떨어지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위해서 오는 거겠지.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음에 씁쓸하고,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함에 안타깝다. 감기 걸려서 병원 다녀왔어.처럼 쉽게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아닌 것 같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술도 못 먹고 사회생활도 못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술도 먹을 수 있고, 사회생활도 잘할 수 있다. 마음의 감기가 온다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낼 순 없지 않은가. 감기 왔다고 술 안 먹고 회사 안 가고 그런거 아니잖아. 다들 어떻게든 살아간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평생 울지도 않고, 평생 틀어박혀 살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나아간다. 미미한 발걸음으로.
그래서 나는 곧 있을 예약에도 찾아갈 것이다. 선생님한테 내 우울을 고쳐주세요.라고 말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