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정신과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되돌아보면 발단의 계기는 이사였던 것 같다. 환경의 변화였다.
나는 정신과를 한번 옮겼는데 그 계기는 단순했다. 선생님의 너무 간단한 진료와 뾰족한 연필이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해야 할까? 뭐, 그랬다. 생각해 보면 그 선생님 자리에는 늘 뾰족한 연필들이 날카롭게 몇 개씩 세워져 있었다. 각을 맞춘 것도 아닌데 누군가가 그리 깎아놓은 건지 볼 때마다 불쾌했다. 심지어 난 그런 뾰족한 것에 대한 공포증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 불쾌함은 늘 매번 진료를 갈 때마다 느끼곤 했는데, 오죽했으면 그걸로 누군가 날 찌르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건 마치 꼭 커터칼이 날이 세워져 촘촘히 박혀있는 듯한 인상적이었다.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에 대기실에는 의사가 취미로 만들어 놓은 레고수집품이 있었는데, 난 그걸 보며 종종 아이들이 와서 저걸 건드리면 어쩌려고 저렇게 휘황찬란하게 놓은 걸까.라는 의구심이 있었다.
지금과 달랐던 건 약의 개수였는데, 지금 먹는 양의 절반도 안되었었다. 생각해 보면 약 먹는 거 하나는 편했던 것 같다. 그 외엔 전부 별로였는데, 맘카페에선 아직도 그 의사가 괜찮다는 댓글이 종종 올라온다. 하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았던 의사였다. 내과처럼 3분 진료컷으로 볼 의향이었으면 애초에 대학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우울증과 불안증을 고치러 갔는데 더 불안해져서 오는 상황도 있었다. 이건 무슨 일이람. 나는 병원을 바꿔야 함을 확실히 느꼈다. 그래.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두 번째 만난 선생님은 지금 선생님이다. 1년 정도를 보았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똑같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대기실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예 없을 때도 많다. 주로 상담시간을 길게 잡아두시는 터라 그러는 것 같다(처음엔 병원이 안돼서 망할 줄 알았다 하도 사람이 없어서.. 다행히 아직까지 진료하고 계신다) 생각해 보니 내 첫 진료상담 때도 한 40분을 했던 것 같다. 의료수가와 맞지 않는 진료임에는 분명하다. 웃기게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원가족 얘기를 하고 눈물을 꾹꾹 누르면서 나왔다. 그 진료 이후로 그렇게 길게 진료 보는 일은 없었다. 나에 대해 알려면 원가족 이야기가 필요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 했던 의료 행위였음을, 지금은 깨닫는다. 지금 내가 원가족에 대해 상처받은 이야기를 하면 굳이 가서 보면서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늘 말씀하신다.
언제나 내편에 서서, 객관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은 기가 막히게도 타이밍을 아신다. 불안한 타이밍의 이유, 조급증이 몰려올 때의 위기상황,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린 2주마다 만나서 매번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더 심해지면 그 2주를 못 참아서 가는 경우도 있다. 벌벌 떨면서 가는 동안에 진정이 된다. 나의 말에 본인이 휘둘릴필요도 없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며 너무나도 객관적인 이야기를 다정하게 말씀해 주신다. 뭔가를 시도할 때 그렇게 하면 나아질 것 같으냐고부터 먼저 물으신다. 나의 안위와 불안을 제일 먼저 다루어주시는 분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먹는 약이 엄청 많다.
전에 다니던 병원에 비하면 두 배정도? 거의 세배정도 되는 것 같다.
난 이 약들을 삼킬 때마다 생각한다. 낫긴 하는 건가.
그러고 나서 선생님의 말을 생각한다. '먹기 전보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답변을.
어떻게 보면 그건 의사와 내가 찾는 답안지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먹기 전의 상태와 먹은 후의 상태가 확연히 다르고, 효과가 어느 정도 있다면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
왜냐면 살아야 하니까. 살아가야 하는 거니까 말이다.
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살고 싶다고 생각해야 살아지는 게 삶이니까.
어쩌다 정신과를 오게 된 계기가 환경의 변화였지만, 이토록 오랫동안 다닐 줄은 몰랐다. 한 3개월 다니고 그만 다닐 줄 알았다. 누가 마음의 감기라고 했나. 감기로 3개월 동안 병원 다니는 사람은 없잖아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하려면 그 돈을 지불하고라서라도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애 낳고 처음에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나에게 지금 돌아간다면 말해주고 싶다. 얼른 가라고. 얼른 가야 너도 행복하고 너의 자식도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말이다.
누군가는 정신과를 쇼핑 다니듯이 다닌다고도 한다.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안 맞는 선생님이라면 맞는 선생을 찾을 때까지 다녀야 하는 게 정신과다. 어차피 내 돈 내고 진료받는 거 기왕이면 나한테 한 번이라도 더 친절하게 해 주고 세심한 척이라도 해주는 선생님이 좋은 거다. 으레 다 그런 위안을 얻으려 가는 걸 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이건 내 순수한 백 프로의 생각일 뿐.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나 또한 우울증 환자로써 느끼는 건, 인간이란 복잡하고도 이토록 어려운 존재라는 것.
사람이 사람을 치료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정신과 쪽은 정말 미치게도 참 호전되는 게 더디고 더디다는 것. 인내심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의학이라는 것.
오늘 공원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아직도 한참 남았을지도 몰라. 나으려면.
그래도 살아나가는 거지. 그게 나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라고 말이다.
오늘도 심리학책을 그것도 교보문고에서 잔뜩 사가지고 오는 길이었다. 불안에 대해.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게으른 것에 대해. 모두 다 나에 대한 책인 것 같다. 아마 잔뜩 선생님한테 내밀면 웃으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걸 읽고 뭔가 개선된 게 있느냐고 물으실지도.
아니요 전혀요. 내 대답은 너무도 한결같아서 뻔하다.
그저 나에 대해 아는 게 맞는 건지 책에서 찾아 헤맬 뿐이다. 알려고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는 게 맞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왜냐면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나를 알려고 할수록, 공교롭게도 자꾸 작은 무언가가 불쾌해진다. 그것은 회피보단, 불쾌에 가깝다. 그즈음이면 책을 덮고 이젠 그만 봐도 될 것 같은데, 자꾸 보는 심리는 뭔지 나중에 질문해 봐야겠다.
허, 읽다 보니 전자책으로 읽은 책도 사 왔네. 이렇게 사람이 깜빡깜빡한다. 보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어쩌면 손에 잡히지 않는 불행을 떨쳐내려고 정신과에 가는 걸 지도 모른다. 행복을 찾는 게 아니라, 불행을 털어내기 위해서.
그래서 내 불행은 털어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