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시작.

by 김태연



장마의 시작이라는 문구가 인터넷 초록창에 그것도 날씨 부분에 메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아, 드디어 장마구나. 어쩐지 비가 올 것 갔다 올 것 같다 하면서 바람만 불더니 이제 비가 오는구나. 나는 반가운 마음 그리고 아들이 학교 가야 할 때만큼은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하는 이기적인 마음. 이렇게 두 가지의 감정을 가지고 초록창에 띄워진 문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이 해외에 나간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첫째 날은 아무 생각이 없었고, 둘째 날인 어제는 갑자기 문득 울고 싶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는 뜨고 나는 잠에서 깼다. 역시 아무 생각이 없어야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생각을 하게 되면 밑도 끝도 없이 파게 되는 성격이라 그럴 때는 내 자신이 엄청나게 초라해진다.


아무래도 이번 주는 내내 둘째 아이와 붙어있어야 할 듯하다. 장염이 괜찮아지나 싶더니 이번엔 콜록콜록. 잔기침을 하는 거다. 잔기침이란 모름지기 재채기가 아닌 정말 잔바리처럼 계속 나는 기침이랄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소리를 내며 콜록 거리는 둘째 아이가 안쓰럽고, 또 삼시 세 끼를 어떻게 차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나도 안쓰럽고 (나는 절대 아이만 안쓰럽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럴 정도로 모성애가 남다르지 않다) 결국은 한숨을 푹 쉬며 오늘도 유치원에 가지 말자.라고 했다. 내 아이는 요즘 우리 부부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을 잘하는데, 자기는 손은 괜찮다며 게임은 할 수 있단다. 배는 아프지만 손은 괜찮은.. 뭐 그런?

어이없어 웃음이 나왔지만 진지한 아이의 표정에 그래 니말이 맞구나. 배는 아프지만 손은 괜찮을 수도 있겠네 하면서 패드 게임을 틀어주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여보 나 너무 아파하면 우리 남편은 그래 누워서 쉬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침대 위에 누워서 습관처럼 핸드폰을 하고 있는 거다. 어른인 나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러는데 아이들이 틀린 말을 하지는 않는구나. 정말 사람은 애든 어른이든 똑같구나. 게임하는 게 보기 싫다고 유치원에 보내버렸으면 진짜 배가 아플 수도 있었겠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정리에 빠졌는데, 정리라는 건 정말로 버림의 연속이랄까. 아니면 끝이 없는 행군 같은 느낌이랄까.


정리 정돈에 관한 유튜브도 보고, 책도 섭렵하고 있는데 그 말이 그 말이고 그 영상이 그 영상이다. 심지어 엄청 잘하는 살림 유투버를 보면 꺼버리기도 한다. 우리 집은 그 집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깨끗하게 정말 먼지 하나 없이 매끄러운 주방을 가질 자신도 없다. 무엇보다 기가 죽는다.

아아, 나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그리고 일단 그렇게 하는 것도 너무 번거롭다. 행주를 삶는다거나. 스테인리스 제품들을 모조리 꺼내서 한 번씩 데운 뒤 행주로 닦는다거나.라는 종류의 것들. 환경을 생각한다고 모조리 비누로 바꿔버린다거나, 락스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세정제로 화장실을 청소한다는 뭐 그런 것들.. 나는 일단 그런 건 배제시켜버렸다. 가지고 있는 주방세제도 세 개나 남았고, 락스 성분이 들어있는 세제로 어쩌다가 꽂혀서 화장실에 칙칙 뿌려서 물로 닦아내야 하고, 행주도 그냥 몇 번 쓰다가 너무 더러워지면 버리고 있는 새 행주로 갈아서 쓴다. 나는 지구를 지키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여자인가 보다.

그럴 때면 나는 이 세상에 유해한 사람이라는 뭐..

그런 생각도 든다.


나 한 사람쯤이야 라는 게 아니라, 나라는 여자는 그런 류의 것들을 지키기엔 일단 노력이 부족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며, 게으르다. 게으른 사람은 매번 그렇게 매일매일 청소를 할 수 없다. 내가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매일 무거운 (정말로 가져다 버리고 싶은) 청소기를 들고 여기저기 집안 곳곳을 누비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정리에 빠졌느냐고? 그건 그냥 하고 싶어서였다. 나처럼 게으른 여자도 하고 싶은 건 있으니까. 정리하면 이 우울의 구렁텅이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할까 봐. 그래서 시작한 거였다. 아직까지는 조금씩 유지되고 있지만, 지금 장마라는 핑계로 문도 마음껏 못 열고 비가 오고 있으니 나도 잠시 일시정지상태. 청소든 정리든 본디 날이 좋아야 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 법. 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비가 잔뜩 오는 날엔 가끔 나가고 싶다. 비 맞는 건 싫어하니 창문에 들이치는 빗물이 싫어서 창문을 꼭꼭 닫고 있으니 천둥번개가 치지 않는 이상 빗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빗소리는 좋아하기에 가끔 유튜브로도 틀어 놓기도 하는데, 자연의 빗소리는 당연히 듣고 싶은 법. 아마 아이가 유치원에 갔으면 진작에 나갔을지도 모르리라. 나가면 뭘 했을까. 일단 빵집에 들러 식빵을 사고 왔겠지. 아토피로 상처투성이인 내 다리를 장화에 가리고 나가서 왜 이렇게 습한 날 나와서 찝찝해하고 있나 후회하면서 걷다가, 물이라도 다리에 튀면 짜증스러운 얼굴로 집에 얼른 오려하겠지. 집에 와서는 집만큼 좋은 곳이 없노라며 커피 머신이 있어도 커피를 시킬 생각에 배달 어플을 켜고 있으려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남이 타 준 커피와 남이 차려준 밥이 제일 맛있는 거라는 걸 첫애 낳고 알았으니 말이다.


멍하게 바라보던 초록창을 끄고 나니 세차게 쏟아지던 비도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요즘엔 비가 안 오는 때에 잽싸게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 날파리라도 꼬일까 싶어 다 채우지도 못한 쓰레기 봉지를 얼른 버리고 온다. 날씨가 습하면 벌레들이 많이 꼬이는 법이라. 그것도 참 신기하지 왜 습하면 벌레가 잘 꼬일까. 얘네들은 어디 있다가 나타나는 걸까. 습한 날씨를 좋아해서 쨍한 날엔 어디서 쉬고 있다가 날이 습하다! 싶으면 활동하는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쓰레기 버릴 일이 이런 생각까지 할 일인가 싶다.


나뭇잎 5장을 가져오라는 학교 선생님의 숙제에 큰아이가 어제 따온 나뭇잎을 잘 말린 뒤 오늘 가져갔다. 그걸로 뭘 하려고 가져오라고 하셨을까. 내심 궁금해진다. 서로 다르게 생긴 나뭇잎을 가져오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서로 다르게 생긴 나뭇잎이 그렇게 많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뭇잎은 둥그렇게 생기거나 아니면 단풍잎 잎처럼 뾰족하게만 생긴 게 다일 줄 알았는데, 개구리라도 앉아있을 법하게 생긴 나뭇잎부터 길고 쉽게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나뭇잎까지. 정말이지 매우 다양했다. 큰애 숙제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렇게 자세히 나뭇잎을 볼 기회 같은 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아이의 숙제나 학교에서 한 과제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 정말로 이런 기본적인 상식들을 학교에서 배우는구나.라고 감탄할 때가 많다. 나도 분명 배웠을 텐데 다 어디로 간 걸까?


어쨌든 장마다. 비 소식은 태풍 말고는 언제나 환영. 그리고 귀찮은 마음도 비 오니까 그럴 수 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니 내 마음도 조금은 느슨해진다. 고맙다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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