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특별하지 않은, 그래도 특별한

일상 이야기

by 김태연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우연히 사고 싶었던 책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후 그 작가님한테 소소한 질문을 하기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분명 가입할 생각이 없었는데 가입을 하고 있고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글이라니? 사실 일기도 겨우 쓸까 말까 한 게으름과 나태함을 천성으로 가지고 있는 여자인데 이렇게 앉아서 쓰고 있다. 둘째 아이는 장염이라 집에서 요양 중이고, 첫째 아이는 등원을 했고, 남편은 출장을 머나먼 해외로 갔다. 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시점에 고맙게도 요양 중인 둘째가 낮잠이불을 펴주니 그새 잠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5시에 일어난다. 나도 일어나고 아이들도 일어난다. 정말로 그 시간에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다들 미라클 모닝이라고 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보거나 취미 활동을 하거나 명상을 한다는데, 우리는 심지어 강아지까지 일찍 일어난다. 일어나 이 주인들아 빨리 와서 내 배변패드부터 갈아줘 찝찝하단 말이야. 하듯이 자기만의 공간인 울타리를 쾅쾅 앞발로 차며 기어코 우리를 깨운다. 그럴 때마다 화가 나는데도 나는 그걸 치워주고 있고, 그러고 있노라면 둘째가. 그리고 첫째가 일어난다. 다들 이 기상시간을 말하면 놀래곤 하지만 나는 그게 늘 일상이라 아무렇지 않다. 사실 나도 처음엔 화가 나서 울기도 하고 애들한테 애원도 해봤다. 좀만 더 자자 제발 엄마 조금만 더 자고 싶어 해도 눈이 그냥 떠진단다. 이제는 자포자기다.


어제는 늘 2주마다 가는 병원을 한주 더 미루고 3주 만에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어땠나요. 별로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네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것 빼곤 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었어요. 요즘엔 정리정돈을 해요. 다 하고 나면요? 다 하고 나면 큰애가 와요. 그래도 좀 더 일찍 끝날 때는요? 그럴 땐 책을 읽어요. 그냥 요즘엔 읽히네요. 좋네요. 괜찮은 일상이고 잔잔하네요. 나를 보며 선생님은 웃으며 말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내가 괜찮았나 생각해봤는데 실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돈이 없어서 불안해서 필요시 약을 먹은 적도 있었고, 아이들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속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로 마녀같이 아이들을 잡을 때도 있었다. 책이 늘 잘 읽혔던 것도 아니었고 정리를 기가 막히게 해낸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그 무엇도 제대로 한적은 없었다. 다만, 잘 지냈다는 뜻의 기준은 내가 필요시의 약을 얼마나 복용했는가에 따라 좌우되기도 했다.


나는 불안감이 솟구치면 공황이 온다. 그러면 약을 먹고 진정을 시킨다. 먹는 약은 불안장애가 있을 때 먹는 약과 늘 잠자기 전에 먹는 우울증 약. 가끔 생각한다. 이게 정말로 내 우울을 감소시키는 약은 맞나. 하지만 의심할 여지는 없다. 첫 번째로 다녔던 병원은 정말 별로였으니까. 두 번째로 지금 옮긴 병원은 의사 선생님이 말을 잘 들어주는 덕분인지 정말로 약이 효과가 있는 건지 우는 날도 줄었고, 우울한 일상도 줄었다. 지독히도 안 낫는 이 병은 그저 약을 먹으면 완화시켜주고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완전히 낫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일상생활만 가능하다면야. 내가 정신 차리고 아이들한테 밥을 해줄 수 있다면야. 아니 못해준다고 해도 시켜줄 정신만 있다면야 나는 이 약을 계속 복용할 의지도 있다. 정말 우울감이 끝이 없을 땐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공공연한 비밀로 나의 가족 말고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약을 먹는다는 것도, 우울증이 있다는 것도, 불안감이 심해서 공황이 가끔 온다는 것도. 나는 굉장히 뻔뻔하게도 겉으로는 밝은 척하고 타인의 말에도 공감해 주는 척을 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하면 나를 안타깝게 볼 것이고, 공황이 있다고 하면 저 여자 문제 있나? 하는 생각부터 들까 봐. 그것도 애 둘 있는 엄마가 저러면 어떻게 애를 케어해.라고 할까 봐.


실로 그것은 굉장히 간단하다. 혼자 다니면 된다. 애 마중하러 가는 것도 혼자 가고, 장 보러 가는 것도 혼자 다니고 옷도 혼자 보러 다닌다. 근데 특히 옷 살 때는 불안감이 심해지긴 한다. 내가 가게에 들어섰는데 나와 사장만 있으면 괜찮다. 근데 누가 옷을 보러 또 들어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게를 빨리 빠져나온다. (그런 나를 보고 언니 혹시 대인기피증 있어요? 하냐고 물어본 사장도 있었다) 기승전결 혼자인셈이다.

다행히도 자주 가는 옷가게 시간대는 내가 늘 사람이 많은 시간대를 피해서 가는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나만 있다. 사장이 옷을 봐주는 것도 좋다. 나는 센스가 없는 여자라 자기 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게 좋아 이걸로 하고 싶어라고 결정을 못 내리는 여자라서 사장들이 꼭 잘 어울린다고 해야 사는 팔랑귀 손님 중에 하나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연히 읽은 책의 작가에게 질문을 하고 싶었던 내가 글을 쓰고 있다. 재정적 상태에 대해 상담받고 싶었다. 이놈의 돈이 줄줄줄 새는데, 감당이 안된다. 가계부도 이젠 쓰기 싫고 살림이라는 게 점점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 둘을 보고 살림을 해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서 요즘 모색하는 중이다. 책도 읽고, 책도 팔아보고 가방도 팔아보고 지갑도 팔고, 우스갯소리로 가족 빼고 다 팔아치울 작정으로 팔고 있는데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이 감당이 안된다. 뭔가가 새고 있는데, 나 때문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번쩍.


누군가 도와줄리는 만무하고 내가 헤쳐가야 하는데 원체 경제관념이 아예 없는 나란 여자가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그래도 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나만 이렇게 빚더미에 앉아서 사는 건 아닐 거야. 저 사람들 말은 안 해도 나처럼 전전긍긍할 수도 있겠지. 하고 자기 위안을 하면 좀 낫다. 그래도 당장 내 현실이 급하니 우울증이 없는 사람들이 부럽고, 이겨낸 사람들도 부럽고, 자기 계발을 잘 한 사람도 부럽고, 돈이 많은 사람도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난 이미 진건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이번엔 한 달을 넘겨보자며 남편이 으쌰 으쌰 하면서 안녕 하고 해외를 갔다. 마의 한 달이 내 고비다. 정리도, 살림도, 재정적인 가계 상태도. 늘 한 달을 못 버티고 요요현상이 왔었다. 정리한답시고 수납용품을 사들이고, 살림한다고 음식 며칠 하다가 결국 시켜먹고, 돈도 안 쓴다고 절약하겠다고 하다가 어느 날 폭발하듯이 쇼핑을 하고. 너는 한 달을 못 버틴다며 남편이 비웃었지만, 이번엔 정말로 열심히 해보고 싶다. 그래서 이건 나를 위한 글이다.

별것 아니지만, 내게는 정말 특별한 일인데. 잘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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