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 허기진 밤 #051
사진을 찍다가 알림이 떴다. 용량이 부족하다는 메세지였다. 클라우드로 저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클라우드나, 하드디스크나 늘 없어질 것이라는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고민했다. 용량 결제를 할 것인지, 아니면 비울 것인지. 나는 두 가지 다 선택하기로 했다. 용량을 늘리면서도, 삭제를 하기로. 더 오래 소유하기 위하여.
나는 삭제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 맥시멈리스트를 원하는 나에게 삭제는 늘 힘든 일이었다. 특히 사진은 더더욱. 삭제는 단지 파일 하나만이 아닌 기억과 추억을 몰래 함께 가져간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늘 그것을 찾아 허공을 더듬는다. 하지만 나는 유한하기에 무언가를 버리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버려야 채울 수 있고, 채워져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결국 버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련은 나의 삶이 감당해야 할 짐이자 의무였다.
버림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나는 틈틈이 정리를 한다. 내가 가진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 순위에 들지 못한 것들부터 놓아준다. 아직도 내 서랍에는 10년 전 여행할 때의 버스 티켓도, 영수증도 보관되어 있다. 기억 못 할 추억임에도 들고 있는 건 내가 가진 미련이다. 나를 도울 제 3자만이 이 미련을 끊어줄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잔여물이 문제가 된다. 버림으로써 내 한편에 남은 자국들. 기억하지 못하지만 찌꺼기처럼 남은 감정들. 그러면서도 내 삶을 초기화하고 싶은 강박. 퇴직물처럼 층층이 쌓여가고 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들 하나보다.
같은 피사체를 연속적인 시간 내에 수십 장 찍은 사진들은 한두 장으로 줄인다. 복용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약국에서 받아온 약들도 버린다. 해져서 잠옷으로 쓰고 있었던 여행 등의 추억이 담긴 수십 장의 반팔 티들도 버린다. 고마운 마음으로 받고 아끼다가 결국 쓰지도 못한 채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물건들도 버린다. 하지만 아직 나는 용량이 모자랐다.
머릿속에 저장해 놓은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순간이다. 결국 우리는 물리적인 매개를 통해야만 기억과 감정이 그 시절에 있는 것 같이 살아난다. 어쩌면 나는 그러한 밀도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계속 채움과 버림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좋지 않은 건 아픈 과거 또한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일까.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있다. 버리지 않아도 비어 있는 공간이 남아 있다면, 그건 죽음을 앞뒀다는 신호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