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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도 쉬는 것이 불안한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

by 알쏭달쏭

2023년 재취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남편이 반대가 컸다. 이유는 이러했다.


"당신이 연봉을 이렇게 많이 삭감하면서 취업을 하면, 그다음 이직 자리는 이 연봉부터 협상이 될 거야. 무슨 이유로든 이렇게 연봉을 낮췄다는 건, 그다음에도 연봉을 낮춰줄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게 될 거고, 다시 높은 연봉으로 근무하긴 힘들어져. "


"연봉은 낮췄지만 애들 등하원도 가능할 만큼 가깝고, 새로 경력을 쌓기에 이만한 조건이 없겠다 싶었어. 그리고 당신 혼자 일하는 것보다 불안하지 않아서 당신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고..."


"자기 이제껏 제대로 쉬어본 적 없잖아. 당신은 정말 쉴 틈 없이 뭔가를 해왔어. 일을 할 때도 계속 주말마다 학원 다니면서 공부를 했잖아. 나 만나기 전까진 노는 게 뭔지도 모르고,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이 살았고.. 그러다 결혼해서 애 낳고 잠도 못 자면서 애 둘 키워내느라 힘들었는데, 둘째 돌 지나니까 바로 일을 다니겠다고? 왜 이렇게 여유가 없어?"


"일을 오랫동안 쉬었더니 내가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조금이라도 돈을 벌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해."


"여보, 당신이 그런 마음 갖지 않고 감정조절만 잘하면 돼. 그럼 내가 돈 벌어오잖아. "


"그 감정조절이 안돼서 이러고 있는 건데, 그것만 하면 된다고? 너무 무기력해서 뭐라도 하고 싶어. 내가 일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나이 들면 더 취업 힘들 텐데."


"자전거 타다가 3년 안 탄다고 해서 자전거 못타? 처음엔 버벅거려도 조금만 연습하면 바로 탈 수 있잖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좀 여유시간에 마음껏 즐겨봐. 그러다 보면 또 하고 싶은 게 생겨날 수 있어."


"계속 쉬어도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으면?"


"그럼 계속 아무것도 안 하면 되지. 뭘 꼭 해야 되는 거야?"


"내 인생은 우리 딸아이가 보고 배우게 될 건데 엄마는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내가 할 말이 없어."


"꼭 직장을 다녀야만 일이 아니야. 집에서 육아하고 집안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그리고 당신 덕분에 내가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일에 집중할 수 있잖아. 그래서 내 연봉의 반절은 당신이 버는 거야."


"그래도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기 싫어. 7시간 근무라서 애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게 나에겐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 8시간 근무에 거리까지 멀면 어머님께 부탁하거나 시터님 고용해야 되는데 그것보다 이게 더 좋은 선택인 것 같아."


"내가 이렇게 반대하는데도 하겠다고? 그리고 만약 취업을 할 거면 직전연봉보다 높게 협상하고 시터를 써. 직장인으로 살려면 그게 맞지."


"연봉을 높이면 책임도 높아질 거고 애를 못 보게 되는데.. 그래도 내가 애는 스스로 키우고 싶어."


"그러지말고, 이것저것 아무거나 해봐. 이런 시간도 그냥 있는 시간이 아니야. 나중엔 이런 여유 갖고 싶어도 없을 텐데,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진짜 뭘 하고 싶은지 알려면 뭐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니야. 하다못해 엄마들하고 이 동네 분위기 좋은 브런치카페를 모조리 다녀봐. 돈도 좀 쓰러다니고 피부관리도 좀 하면서 즐겨봐. 돈을 써봐야 어떻게 벌 지도 아는거야. 그러다 보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회사를 다니고 바빠지면 너는 평생 똑같이 살아온 대로 살게 될 거야. 제발 한 번만 내 말 좀 들어봐. "


남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여유시간이 있다고 해서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 사실은 두려웠다. 이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했던 거 하는게 가장 편했다.


'그렇게 여유롭게 살다가 시간만 보내고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지금 다시 취업을 해서 경력을 쌓아야 그나마 돈 몇 푼이라도 버는 것 아닌가? 새로운 걸 해볼 용기도, 자신도 없다.'

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결국 남편 말을 듣지 않고, 직장에 나가게 되었다. 겪어보고 깨달아야 아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좋은 조언이라고 해도 바로 이해되지 않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서야 알아차리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2년 전 남편의 조언이었다.




2025년, 올해 초부터 육아휴직이었으니 약 10개월째가 되어간다. 그동안 의욕적이었다가 힘이 빠졌다가를 반복하다가 다시 무언가에 의욕을 갖게 된 게 약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부터 하루 종일 무슨 글을 쓸지 생각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좋은 글귀가 있으면 메모장에 적어둔다. 동화책을 읽어도 어른이 깨달을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신기하다.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이 있다. 남편과의 대화도 좋은 소재이다. 나의 삶에 집중하면 나의 주변인들이 하는 말이 모두 한 편의 이야기가 되어있다. 그냥 살면 공중에 흩어지는 경험들이 글로 쓰면 살아 숨 쉬는 수필이 된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내가 무기력하지 않을 단 한 가지의 방법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고작 일주일이라고 해도 무기력 해지지 않았고, 상당히 의욕적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내 생각이 글이 될 때 기쁨을 느꼈다. 글이 아직은 돈 100원도 만들지 않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남편은 늘 '해야할 것'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다. 나에게 이런 말이 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직장에 다녀야 한다는 압박 없이,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분명 지금보다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남편은


"특별히 하고 싶은 일 없으면 안 해도 돼. 집안일과 육아만으로도 바쁜 거 잘 알고 있어. 그것만 잘해준다면 돈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돈걱정은 하지 마. "


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돈을 벌려면 또 돈벌이를 위한 일만 좇아 다닐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만, 그걸 위해 나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읽고 글을 쓰는 행위를 멈추지 않겠다.




왜냐면 재미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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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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