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속 불안함
20대 후반부터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했다. 내 캘린더에는 쉴 틈 없는 약속으로 가득 찼다. 약속이 없는 날은 보통 집에서 누워있었다. 혼자 살아도 집안일은 많고, 찾아보면 할 일은 많았다. 그리고 나는 주말마다 세무사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사실 공부할 것도 넘쳐났다. 그런데 퇴근하고 나면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게 싫어서 사람들을 만났다.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서울에 친구는 많지 않았다. 친구가 있다고 해도 그들도 애인이 있고, 다들 회사일도 바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도 만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소모임 어플로 87년생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동갑 친구라면 금방 친해질 수 있고,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모임에 나갔다. 이미 사람들이 친해져 있었지만, 새로 온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단톡방에서도 수시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친하진 않아도 반말로 하기 때문에 금세 친해진 것만 같았다. 매일매일 신나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다시 한번 대학교 시절의 분위기처럼 술도 마시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 신경을 쓰며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어주는 동안 나 스스로와의 시간은 뒷전이 되었다. 외로운 게 싫어서 계속 내 바운더리 안에 사람들을 모았다.
'조금 더 나와의 시간을 보내고 사색을 했다면 지금 쯤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남편에게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내가 남편에게 늘 내 이야기만 하다가
"그 말 이번이 열 번째인 거 알아? 어떻게 당신은 똑같은 이야기를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하냐?"
라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그날 있었던 새로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곤 한다.
"여보 있잖아. 오늘 그 동생을 만났는데 요새 영어유치원 때문에 고민인가 봐. 그래서 내가 영어유치원에 대한 전문가 강연을 많이 찾아봤지. 거기서는 아이의 발달단계에 영어조기교육이 안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에 맞는 적기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무반응, 무응답이다. 대체 누구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다니는 건지 알 수도 없고 이해도 안 되며, 그 동생이 대체 어떤 동생인지 매치도 되지 않아서 매일 헷갈려한다. 나에게 단톡방이 여러 개 있는데, 아이 출생연도에 맞춘 지역 단톡방과, 우리 아파트 엄마모임방 등 총 4개 정도의 단톡방이 있다. 우리 아파트 단톡방은 심지어 내가 개설했다. 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외로워서 참을 수 없던 나는 단톡방을 개설해서 엄마들을 번개로 만났다. 처음엔 둘째 티커가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얼른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육아를 이유로 만나게 된 엄마들은 전우처럼 끈끈했다.
최대한 많은 엄마들을 알고 싶었다. 그래야 어떤 엄마가 약속이 있을 때 다른 엄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을 사람으로 채우지 않으면 불안했었다. 성인들과 만나서 대화라는 걸 하고 싶지만, 직장 다닐 때처럼 퇴근하고 친구를 만나는 '자유'란 나에겐 없었다.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들도 아이들이 어린이집 간 낮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죄책감 없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애들 하원 후 애들끼리 놀게 해주는 '공동육아'때만 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육아를 해야만 하는 시간에 주로 만났다. 엄마들은 같이 밥을 해서 먹이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알아서 잘 놀기 때문에 엄마도 아이도 모두 즐거울 수 있다.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이 놀아줘야 하는 '대상'이지만, 아이들끼리는 본인들이 스스로 노는 '주체'이기 때문에 훨씬 몰입도 높고 즐거웠다.
남편은 회사에서 경력이 높아질수록 더 시간이 없어졌고, 그럴수록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재미있어? "
"아니 그냥 나 혼자 육아하는 것보다 덜 힘들고, 아이들도 상호작용하며 재미있게 노니까 더 좋은 것 같아."
"나 같으면 힘들어서 못할 것 같아서... 딱히 대화할 주제도 없을 것 같고, 그렇게 자주 만나는데 할 말이 있는 것도 신기하고.."
"늘 신기하게도 할 말이 생긴다? 늘 엄마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고민을 하거든, 대화하면서 같이 해결방법을 찾기도 해. 육아 관련해서 경험이 다 다르니까 서로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그래? 네가 좋다면 나도 좋지 뭐."
그러던 내가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지고 있다. 육아휴직 이후부터 마음의 여유가 점점 생겨나고 있어서 인지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치중되어 있던 에너지를 나에게로 가져오면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서 내 안에 간직하고 싶다.
글을 쓰는 건 '나와의 대화'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글을 쓰고, 다시 내 글을 읽는다. 처음에 글을 쓸 땐 문맥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두 번째 읽으면 같은 말을 반복한다거나, 쓸데없이 길게 설명한 부분이 많았다. 글이 정리되면서 생각도 정리되고, 마음도 간결해진다. 이 글이 일기면 써놓고 다시 꺼내보지 않을 텐데 , 누군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다시 읽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적음으로써 내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런 마음에서 이런 말과 행동을 했지만, 사실 과거를 찬찬히 복기해 보면 이런 점을 놓치고 있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특히 아이와 있었던 일을 적으면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되고,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해결할 수 있었을 법한 상황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렇게 하루하루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껴진다.
집에서 글을 쓰는 이 순간, 시계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적막한 거실에서도 더 이상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거실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며 차들의 움직임이나 깃발이 펄럭거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예전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잔잔한 마음을 느꼈다. 바쁘게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이제 비워야 할 때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인맥도 점점 늘리기보다는 가깝고 깊은 몇 명만 남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친구가 많을수록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내 장례식에 와서 울어줄 단 한 명만 있어도 될 것 같다.
언제나 내 이야기는 즐겁다. 밤을 새우고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다. 그렇다는 건 나는 내 인생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나 자신을 좋아한다는 뜻일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뭐든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나를 좋아하고 싶고, 나에 대해 알고 싶고,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인 것이다.
언제까지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다. 나는 애 둘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내 삶은 아이가 살아갈 수도 있는 미래 중 하나이다. 엄마처럼 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 높은 확률로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배우게 될 것이다.
"딸아, 세상은 살만한 곳이란다. 엄마는 불완전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고, 때론 너무 나약해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남 탓을 하기도 했단다. 그래도 스스로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어. 엄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괜찮게 살도록 도와주기도 했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아성찰을 하고 매일 나아진 방향으로 살려고 했어. 사람이 바뀌는 데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단다. 절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길게 봐야 해. 만약 이 글을 읽게 될 때 우리 딸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면, '엄마도 그런 과정을 겪으며 단단하게 성장해가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용기를 내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