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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찌질이

by 알쏭달쏭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있는 듯 없는 듯이 튀지 않는 사람이었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 중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존재감 없이 학교를 졸업했다. 소위 반에서 한 명씩 있는 '조용한 찌질이'였다.


집에서도 조용히 있는 건 생존전략이었다. 본능적으로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남동생 가운데 껴서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고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기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조용히 참았다. 풍선을 사달라는 말도, 붕어빵을 사달라는 말도 조용히 참았다. 그게 편했다.


엄마는 날 소개할 때 '착한 아이'라고 설명하셨고, 꼭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요새 애들 같지 않게 유독'이라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그도 그럴 것이 말 잘 듣고 학교출석 열심히 하고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예의 3종세트까지 풀 장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건강해서 속을 안 썩이는 아이였다고 하셨다. 언니와 동생이 감기에 걸려도 나는 안 아파서 한약도 따로 안 먹이셨다고 했다. 밥도 주는 대로 잘 먹어서 살도 올랐고, 잘 웃었고, 잘 웃겨줬다고 했다. 내가 말했을 때 사람들이 웃는 게 좋아서 개그우먼이 되고 싶기도 했다.


가끔 엄마 마음에 들고 싶어서 집안을 대청소하면 언니랑 남동생이 뭐라고 했다.


"작은 누나는 맨날 예쁨 받으려고 노력해!"


라고 핀잔을 주면 내 딴에는 조금 억울했다. 그냥 엄마 마음에 들고 싶었고 칭찬을 받고 싶었다. 그 칭찬을 받고 나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르겠다. 힘든 게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좋았다. 그때 나는 엄마가 '나'도 사랑하는지 궁금했었던 것 같다.


엄마의 마음에 들고 싶었던 마음은 공부로 이어졌다. 엄마가 눈높이 선생님한테 했던 말을 계기로 나는 공부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이는 언니랑 동생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니까 잘 좀 가르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꽤나 상처받았지만, 엄마한테 따져 묻지 않았다. 엄마한테 예쁨 받으려면 공부를 잘해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어릴 땐 그래도 뭔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난다.


"엄마 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 어려운 사람들의 집을 깨끗하게 바꿔주고 좋은 환경에 살게 해주고 싶어."

"남자들만 있는 환경에서 여자가 일하기 힘들어. 위험할 것 같기도 하고"

"엄마 미용사가 되고 싶어. 나 머리 만져주는 거 좋아하잖아"

"일단 공부를 해봐. 선생님이나 공무원, 농협 이런 곳이 좋지."


"엄마 사육사가 돼 볼까? 동물들 보는 게 정말 좋아."

"......"

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는데 엄마가 좋아하지 않았다. 인정욕구가 별로 없었더라면 엄마 말에 상관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밀어붙였겠지만, 엄마 말을 듣고 나면 괜히 힘이 빠졌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랑 수영장을 갔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공사장이 있었는데 한 인부가 "야 너희들 얼른 저리로 피해! 여기 위험해!"하고 소리를 크게 지르시는 걸 듣고 내가 차가 오는지 보지도 않고 길을 건너다가 나만 차에 치이게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나를 데리러 온 아빠가 목격했고, 그렇게 병원으로 실려왔다.


턱과 팔, 다리 쪽에 큰 상처가 났다. 아빠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 놀라서 입이 네모가 될 정도로 우셨다고 나중에 언니에게 전해 들었는데 묘하게 속으로 기뻤다. 내가 다친걸 엄마가 슬퍼했다는 사실이 기쁜 마음이 든다는 게 나 조차도 소름 돋는 일이지만, 그때 마음이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돼서 감동을 받았다.

피아노를 1학년때부터 5학년때까지 배웠는데 너무 하기 싫었다. 남동생은 서예, 중국어, 웅변 같은 다양한 교육을 받았는데 나는 계속 피아노만 배웠다. 시간이 지나 첫째 딸 제리가 어느 날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는 데 불현듯 옛날일이 떠올랐다. 내가 언니 따라서 피아노를 엄마한테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했던 게 어렴풋이 떠올라버린 것이다. 이제껏 피아노가 싫다고만 기억했었고, 억지로 한 기억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만두게 된 계기도 내 의지였다. 속셈학원을 가고 싶다고 말하니 엄마는 두말 않고 학원을 바꿔주셨다. 말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피아노 싫다는 말을 못 해서 계속 피아노 학원에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을 잘 못하고 살아왔다. '나만 참으면 돼.'라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마음의 병이 생겼나 보다. 끝도 없는 무기력에 뒤덮여 몸이 천근만근이 되었다. 사춘기시절을 제대로 겪지 않고 착한 아이로 살아오니 지금 곧 불혹이 되는 이 나이에 오춘기를 겪나 보다. 나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는 게 편해서 점심메뉴도 정하지 못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게 뭔지를 몰라서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남에게 맞추는 게 훨씬 편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도 없거니와 있다고 해도 상대방이 싫어하면 내가 더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난 어릴 적 모습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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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