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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 틈도, 쉴 틈도 없는 엄마

엄마로, 직장인으로 버티던 날들의 기록

by 알쏭달쏭

2022년 6월, 둘째를 출산하기 한 달 전, 우리 가족은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 남편이 회사에 갔다가 옮아온 게 그 시작이었다. 남편의 고열로 증상이 시작되었는데 생각보다 기침도 심하고 목도 많이 아프다고 했다. 남편을 안방에 격리시키고 음식을 방에 넣어주었다. 남편은 우리도 어차피 걸릴 거라며 격리가 의미 있냐고 했지만, 나는 임산부였고, 제리도 두 돌이 갓 지난 상황이라 조심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남편이 서운해하더라도 철저히 격리를 시켰다. 첫째 제리는 밀접접촉자라 어린이집 등원을 안 하고 지켜봤는데 결국 다음날 제리와 나 동시에 코로나에 확진이 되고 말았다.


남편과 제리는 증상이 심했다. 워낙 둘 다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심한 편이라 코로나에 걸려도 마찬가지였다. 고열도 고열이지만, 제리는 음식과 물 전부 못 먹을 정도로 아팠고, 오로지 초콜릿만 먹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내가 고열없이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지나가서 남편과 애를 케어할 수 있었다. 나까지 아팠다면 애를 어떻게 돌보겠는가? 역시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것도 안 해도 아플 때가 있다. 더군다나 애를 둘이나 낳은 여자는 더더욱 뼈가 시리다. 30대에 운동해 놓은 걸로 40대를 산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작년에 직장을 다닐 때,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아팠다. 열감기는 기본이고, 눈에서 노란 고름이 눈물처럼 떨어지는 결막염도 걸렸던 적도 있다. 면역이 많이 내려갔는지 서랍에 타이레놀을 넣어놓고 수시로 먹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80년대 생은 공감하는 게 학창 시절 '아파도 결석은 하면 안 된다.'를 배워왔다. 참 교육이 무서운 게 더 이상 그러지 않아도 되는 데도 '아파도 회사에서 아프자.'라는 바보 같은 신념을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그날 할 일을 끝내야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이 연차 쓰고 들어가라고 해도 끝까지 연차를 쓰지 않는 게 '나의 성실함의 증거'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사람 참 쉽게 안 바뀐다. 그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애 둘을 하원해서 집으로 가면, 긴장이 풀리는지 소파에 누워서 유튜브를 틀어준다.


"엄마가 열이 나서 티브이 보고 있으면 좀 쉬다가 밥 차려줄게."


하면 애들에게 '엄마가 아프다'는 것은 비상상황이다.

"엄마 어디 아파? 머리 아파?"

라며 둘째 티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포동포동하고 작은 손을 내 이마에 대며 울먹이고 있다.


"엄마 열나? 잠깐 기다려봐. 내가 치료해 줄게 "

라며 제리가 가재수건에 시원한 물을 묻혀서 머리에 붙여준다. 어디서 본건 많아서 치료랍시고 해주면, 희한하게 조금 증상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프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좀 방치되곤 한다. 잘 돌봐주는 것도 건강한 엄마여야 가능하다.


계속 버티다가 그래도 못 버틸 것 같을 때는 남편에게 연락을 한다. 오늘은 야근하지 말고 퇴근하자마자 들어와 줄 수 있냐고.


" 열이 나는 데 반차 쓰고 좀 쉬지. 애들도 돌보려면 체력을 아껴야 하는데, 그렇게 무리하면 어떻게 하냐. 힘들 땐 반차 쓰고 내가 일찍 퇴근해도 되니까 미리만 말해줘. 끝까지 견디다가 못 버틸 때 말하지 말고. 내가 바로 갈게."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걱정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나를 답답해하는 것 같다. 조금 미련하다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남편이 이해는 가는 게, 이런 내가 스스로 날 봐도 그래 보이기 때문이다. 내 반차를 아끼듯, 남편의 반차는 더 아껴주려고 한다.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인데 한껏 쫄아가지고는 눈치나 살살 보는 게 좀 없어 보인다. 눈치 본다고 날 더 인정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왜 이렇게 연차를 못쓰나 했더니, 내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급연차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둘째의 수족구 증상, 첫째의 열감기, 가슴통증 등 애 엄마는 다채로운 이유로 회사에 휴가를 쓸 일이 많았다. 그것도 갑자기.

사람들이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나 혼자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더구나 내가 아픈 걸로 연차를 쓰기엔 정말 더 눈치 보이긴 했다. 그리고 3년의 공백 끝에 취업한 곳이라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강했다.


'눈치 안 봐도 돼. 다른 사람들도 업무에 큰 지장이 없다면 아이 때문인 거니까 이해해 줄 거야.'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만약 다른 직원이 아이가 아파서 먼저 간다고 하면, 나도 이해해 줄 거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듯 나 스스로도 이해해줘야 하는 건데 말이다.


그래도 남편에게 여러 번 교육(?) 아닌 교육을 받고 나니 조금씩 편하게 연차를 쓰기 시작하게 되기도 했다. 근로자의 권리를 제대로 사용해 줘야 후세대도 권리를 사용하는 게 자유로워질 거고, 자연스레 사회분위기도 바뀌게 될 것이라며 거창한 이유까지 대가며 연차 쓰는 걸 스스로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어린 엄마들도 그래야 애기 아플 때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다. 나의 행동의 파급력(?)이 그렇게 크진 않겠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 점점 변화하면 된다. 깨닫고 느꼈다면 변화하는 선택을 하자.


내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 딸아이도 나 같은 생각을 할 확률이 높다는 걸 항상 기억하며 살자고 스스로 다독이곤 한다.


내가 눈치 보면, 내 아이도 눈치 본다. 기억하자.


그리고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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