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서로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다.

by 알쏭달쏭

아빠는 11년간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셨다. 가족이 아프다는 건 한 사람의 병뿐만이 아니다. 가족 모두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일이다.


뇌출혈 수술을 받으신 뒤 일주일째 의식이 없다가 눈을 뜨셨다. 눈을 뜨셨을 때, 우리는 아빠가 다시 살아나서 생명을 얻은 것만 같았다. 전두엽 손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최근 기억은 못할 수도 있다고도 하셨다. 그런데 아빠는 우리를 기억했다. 언니에게 몇 번 고모이름을 부르신 것 말고는 큰 실수도 없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기적 같았다.


담배를 피우시던 아빠에게 강제금연이 시작됐다. 금단 증상은 거셌고 아빠는 점점 짜증이 많아지셨다. 병원이 답답하셨는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나가면 안 된다고 했더니 우리 몰래 외출증을 간호사에게 내셨는데 날짜란에 1995년이라고 적으셨다. 우리는 그걸 보고 웃으면서도 슬펐다. 외출증을 내야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은 좋았지만, 몇 년 인지도 모르신다는 걸 보니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


대소변을 가리기 위해 기저귀를 차야했고, 그 몫은 엄마에게 돌아갔다. 삼 남매를 다 키워놓으니 아빠가 아이가 되셨다. 지능은 약 8세 수준, 더 나아지긴 어려울 거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절망하자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8세면 생각보다 똑똑한 편입니다."


위로 같기도, 현실 같기도 한 말이었다.






대학병원은 입원비가 비싸기도 하지만, 오래 입원을 시켜주지도 않았다. 대학병원을 나와 한방병원, 재활병원으로 옮겼다. 엄마는 이제 자기 몸을 돌봐야 할 시기에 아빠를 돌봐야 했다. 아무리 애써도 아빠는 금방 좋아지지 않았다. 엄마는 깊은 잠을 자지 못했고, 새벽마다 깨서 아빠를 살폈다.


아빠를 반드시 멀쩡하게 만들어놓겠다는 엄마의 강한 의지는 매일 무너졌다. 어느 날, 엄마가 유독 많이 힘들어 보이셨다.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가 나보다 오래 살면 너희는 어떡하니? 누가 아빠를 돌보니? 차라리 내가 아빠랑 같이 떠나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든다."


오랫동안 버티던 기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엄마를 붙잡아야 했다. 그 순간 엄마를 설득할 수 있는 건 자식 사랑뿐이었다.


"엄마, 아빠가 먼저 그렇게 가면 우리는 더 못살아. 우리가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지금은 같이 버티는 수밖에 없어. 엄마 많이 힘들겠지만 나도 최대한 자주 와서 도울게. "


예상대로 이 설득은 통했고, 엄마는 다시 '버티는 엄마'로 돌아오셨다. 그 과정에서 수천번, 수만 번 무너지셨겠지만 다시 의지를 다지시며 아빠를 간호하셨다.




기적처럼 3년쯤 지나자 아빠는 말을 또렷이 하셨고, 대소변도 가리셨다. 웃기도 하시고, 우리에게 감정도 느끼셨다. 여전히 조금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였지만 이것만으로도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의지가 성공한 순간이었다. 뇌는 한쪽이 손상되면 다른 쪽이 그 기능을 도운다고 한다. 아빠는 엄마의 헌신으로 다시 아빠가 되었다.


가끔 엉뚱하게 행동하시긴 했지만.

내가 본가에 내려간다고 하면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셨다. 집에서 입던 핑크색 수면바지에, 얇은 패딩을 입고, 까치집머리를 하고 아침부터 서 계셨다.


"아빠 추운데 집에서 기다리지. 나 버스터미널로 오는데 여기서 기다리면 못 만나잖아."


"너 온다고 해서 기다렸지. "


그 말에 미안하면서도 귀엽고 너무 짠했다. 정장차림에 무뚝뚝했던 아빠는 그렇게 나에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사위가 처음 인사 오던 날, 분주한 엄마와는 다르게 아빠는 말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계셨다.


'내 딸이랑 결혼하겠다고?'


그런 얼굴이었다. 무심한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남편은 '장인어른이 원래 말씀이 없으신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남편은 결혼 이후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친정에 자주 가자고 했다. 나와 아빠의 애틋한 관계를 잘 알고 있기도 했고, 아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도 했던 것 같다.


아빠의 임종날, 남편이 아빠 손을 잡고 말을 했다.


"장인어른, 감사했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아빠 장례식이 끝나고 남편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장인어른이 나한테 예전에 고맙다고 종종 말씀하셨어. "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시종일관 내 딸 뺏어간 도둑놈이라고 생각하시는 줄 알았는데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니 믿기지 않았다.


남편은 말했다.

"나도 장인어른에게 귀한 딸을 맡겨 주셔서 고맙다고 생각했어."


아빠는 오래 아프셨기에,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가르쳐주었다. 더 끈끈해질 수 있었고, 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빠가 아이처럼 약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아빠는 떠났지만, 아빠가 남긴 방식으로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더 소중하게 아끼며 사랑하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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