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내 편이 없어."
아빠는 공무원으로 일하시면서 자주 힘들어하셨다.
내가 첫 정신과 상담을 받던 날, 의사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혹시 가족 중에 우울증을 겪으신 분이 계신가요?"
그 순간 아빠가 떠올랐다. 늘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은 표정, "직장 그만두고 싶다", "죽고 싶다."라고 엄마에게 털어놓으시던 날들. 그때는 그냥 일이 힘들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 역시 나와 같은 상태였던 게 아닐까 싶다.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적은 없지만 아빠가 늘 힘들어 보이셨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던 중, 문득 떠올랐다. 아빠는 뇌출혈 이후 실제로 우울증을 진단받으셨다는 것을.
그 무렵 아빠는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으셨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장난을 했다.
"아빠 제리 누구 닮은 거 같아?"
"그게 뭐 중요하냐?"
아무 의미 없는 듯한, 힘 빠진 목소리. 나는 아빠를 안아드리기도 하고 아이를 안겨드리기도 했다. 아빠는 잠깐 웃다가 금세 표정이 사라졌다.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마음까지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와 아빠가 다툴 때면 우리 삼 남매는 자연스럽게 엄마 편을 들었다. 어리고 미숙했던 우리는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담배 좀 그만 피워."
"아빠 좀 일찍 들어와."
그때 모든 게 아빠 때문인 것 같았다. 아빠가 조금만 더 잘해주면 우리 집이 행복해질 거라 믿었다. 그렇게 원망은 쌓이고, 아빠의 희생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했던 말이 몇 가지 떠오른다.
"우리 집에 내 편이 아무도 없어."
"나중에 너희 들이 크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어릴 때에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의 마음이 이제야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는 완벽한 어른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나는 여전히 서툴로 미완성이다. 그렇다면 아빠도, 엄마도 어쩌면 그저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을 것이다.
아빠는 공무원을 하면서 주말엔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오셨다. 하지만 우리 눈에는 엄마의 고됨만 보였다. 삼 남매를 돌보고, 직장도 다니고, 집안일까지 해내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아빠는 늘 무뚝뚝하고 무심한 사람으로만 보였다.
가끔 아빠가 무너져도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은 가족 안에 없었다. 그나마 내가 아빠랑 가까운 편이었지만, 그마저도 아빠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우리도 각자의 삶에 치여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 단 한 번도 아빠에게 이렇게 말해본 적이 없다.
"아빠 고생 많았지. 고마워 아빠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어."
아빠는 우리에게 힘든 내색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아빠가 우리에게 해주었던 말은 따뜻하지만 단순했다.
"공부는 밤새서 하지 마라. 평소에 한 대로 시험 봐라."
"공부 잘하는 것보다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
"어른 보면 인사를 잘해야 한다."
퇴직 후, 아빠의 짐을 챙겨 집으로 가져온 날이었다. 그곳엔 아빠가 스크랩해 둔 기사들이 있었다. 가족이 더 행복해지는 방법, 부부싸움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 칼럼들. 짧게 써 내려간 일기 같은 기록들, 꼼꼼하게 적힌 가계부까지.
그제야 알았다.
아빠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은 없었지만, 누구보다 우리를 걱정하고 연구하고 버티던 사람.
우리가 잘 살기를 바라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