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쓴 사랑의 편지
아빠는 공무원이시면서 동시에 농부셨다. 할아버지는 평생 당신의 아들이 '흙을 만지는 고생'을 하지 않고 '펜대 굴리며' 살기를 바라셨다고 했다. 아빠는 그 말씀을 웃으며 전했지만, 결국 두 가지 삶의 무게를 동시에 짊어지게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지방 공무원의 월급만으로는 삼 남매를 키우는 것이 버거웠던 시절이었다. 아빠가 고향에 땅을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실의 부족함을 어떻게든 메꾸어 가족의 울타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던 가장의 절박한 선택이었다. 유니폼처럼 단정한 공무원의 옷차림 뒤에는, 언제나 땀과 흙먼지로 얼룩진 농부의 손이 숨어 있었다.
어느 날 아빠가 어린 나를 논으로 데려가셨다. 그 황량한 논두렁 위에, 아빠는 당신의 꿈과 행복을 심듯 감나무 묘목을 여러 그루 심어놓고 해맑게 웃으셨다.
"여기에 아빠가 감나무 심었으니까 나중에 감 나오면 따먹자. 네가 감 제일 좋아하잖아."
나는 묘목들이 너무 빽빽한 게 걱정스러워 물었다.
"아빠, 이렇게 많이 심으면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너무 욕심부린 거 같은데?"
아빠는 턱을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답하셨다.
"그런가? 괜찮겄지 뭐. 키우다 잘 안 자라면 몇 그루 뽑으면 되지. "
아빠의 눈빛은 무언가를 땅에 심고, 키우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행위 자체가 아빠에게는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는 유일한 놀이였으리라. 아빠는 시골에 작은 집을 사서 '별장'이라고 부르셨고, 마당에 대추나무와 앵두나무를 심었다. 그 별장은 가족이 주말마다 와서 과일을 따서 먹으며 깔깔 웃는 곳이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소박하지만 완벽한 행복의 풍경. 그것이 아빠의 꿈이었다.
하지만 아빠의 꿈은 가족들에게 쉽게 닿지 못했다. 엄마는 돈도 안 되는 농사에 주말 내내 신경을 쏟는 아빠가 야속했다. 엄마가 바란 주말은, 흙이 아니라 가족의 웃음이 피어나는 시간이었으니까.
삼 남매의 반응은 더 차가웠다. 시골에 가면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꿉꿉한 흙냄새가 났고, 모기에게 뜯겨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별장'은 즐거운 휴식 공간이라기보다, 품앗이 노동을 해야 하는 고생스러운 일터에 가까웠다. 우리는 농사일에 자주 따라가지 않았고, 아빠는 흙 속에 고립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날, 아빠가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트럭을 빌려 수박을 수확하던 해, 수박 풍년이라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수박이 '똥값'이 되었다. 아빠의 등은 땀으로 젖어 있었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적자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농사 전문이 아니었던 탓에 수박은 모양도 예쁘지 않았고 맛도 떨어졌다.
일이 한 번에 몰리니 사람도 쓰고 기계도 써야 했지만, 수확물로 그 돈을 회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언니와 남동생은 오지 않았고, 나만 따라가서 트럭에 수박을 싣는 일을 도왔다. 아빠는 그 자식 같은 수박들을 차마 버릴 수는 없으셨는지, 이웃과 근방의 친척들에게 억지로라도 나눠주어야 했다. 애써 웃고 계셨지만, 그때의 아빠의 뒷모습은 무겁고 축축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래도 아빠에게는 우리를 향한 숭고한 자부심이 있었다. 바로 '농약을 뿌리지 않은 농산물'을 직접 키워 먹인다는 자부심이었다. 모양이 이상하게 생긴 애호박을 식탁 위에 올리면서 "이거 유기농이야"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농사 때문에 얼굴은 까매지고, 웃을 때 생기는 눈가와 입가의 주름은 더 깊어져 점점 나이 든 모습이 역력했지만, 아빠의 표정은 그 어떤 공무원의 모습보다 행복해 보이셨다. 그 안에는 삶을 버텨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묵직한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
작년 가을, 엄마가 아빠의 감나무에서 감을 많이 따오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아빠의 흔적을 외면하듯 그 감나무 근처에도 가지 않으셨었다. 그랬던 엄마가, 마치 오랜 슬픔을 통과한 후 아버지의 유산을 비로소 마주하듯 감을 따오신 것이다.
"이거 아빠가 너 감 좋아한다고 감나무 심었잖아. 거기서 따온 거야. 가져가서 먹어."
어릴 적, 그 감나무들이 용케도 억척스럽게 자라, 이제는 박스에 가득 담길 만큼 풍성한 열매를 맺은 것이 신기했다.
나를 닮아 감을 유독 좋아하는 첫째 딸이 감박스를 보고 신나는 듯 말했다.
"이거 외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에서 나온 거야?"
"응 외할아버지가 심으셨어."
아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하늘나라에 간 사람이 심은 나무에서 어떻게 감이 열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근데 외할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셨잖아."
"응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우리 먹으라고 심어놓으신 거야."
아이는 감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정말? 와! 맛있겠다."
첫째가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장면, 당신의 가장 편애하던 딸과 그 손녀가 자신이 심은 나무의 열매를 보고 행복해하는 이 순간. 이걸 위해 그렇게 많은 감나무를 심어놓으셨구나.
"아빠, 꿈 드디어 이뤘네."
이 감은 아빠의 가장 성공적이고 눈부신 수확이었다. 아빠가 남긴 사랑은 시들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달고 촉촉한 기쁨으로 다음 세대의 입으로,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 호박과 감나무, 그리고 '별장'이라 부르던 그 작은 집은 아빠가 우리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크고 순수한 사랑의 증표였다. 세상의 잣대로는 비효율적일지라도, 아빠는 그 흙속에서 가장 풍요롭고 찬란한 삶의 가치를 일구어 내셨다. 아빠의 그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내 마음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게 깊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