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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시집보내는 아빠의 마음

"너 같으면 좋겠냐?" 아빠의 목멘 대답

by 알쏭달쏭

신혼여행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둘째 딸 드디어 결혼해서 좋겠다! 이제 삼 남매 시집, 장가 다 보내니까 후련하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듯한 느릿한 말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런 소리 하지 말어."


그 속에는 내가 예상치 못했던 짙은 서운함이 배어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희미하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갑자기 목이 메어 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 나 시집가서 서운해?'


"그럼 너 같으면 좋겠냐? 당연히 서운하지."


평생 무뚝뚝했던 아버지의 솔직한 고백에 가슴이 무너졌다. 그건 세상 어떤 말보다 진한 사랑의 언어였다.


"그러면 다 큰 딸이 시집을 가야지. 언제까지고 시집 안 갈 줄 알았어? "


"갈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지."


그때 거의 서른세 살, 그리 이른 결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과 만난 지 단 9개월 만에 이뤄진 결혼은, 아빠에게는 갑작스러웠을 것이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 잘했으니 걱정 말어. 딸내미 키우느라 고생 많았어. 아빠, 사랑혀"


아빠와 통화할 때면 나도 모르게 그 느릿한 말투를 따라 하게 된다. 뭐에 쫓기듯 1분을 넘기기 힘든 통화는 늘 뜬금없는 "사랑해."로 급히 마무리되곤 했다. 느릿하고 구수한 말투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짧은 통화에 남겨진 목이 멘 여운은 신혼여행의 달콤함마저 덮을 만큼 무거웠다.


뒤이어 엄마와의 통화. 엄마는 "네 아빠 결혼식 때 울었어."라고 무심하게 전했다. 엄마는 결혼식 내내 밝게 웃으셨고, '아빠가 살아계실 때 둘째 딸을 결혼시킨 것'으로 부모의 모든 미션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역력했다. 기다리던 딸의 결혼이었기에 마냥 기뻐하실 줄 알았던 아빠가,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알았다. 결혼식 내내 밝게 웃던 엄마 뒤에서, 아빠는 조용히 울고 계셨다는 걸.

‘딸을 시집보내는 기쁨’이 아니라 ‘딸을 떠나보내는 서운함’으로 그날을 버티고 계셨다는 걸.




아빠는 식장 입장 전 대기하는 순간에도 잔뜩 긴장한 채 굳은 표정으로 계셨다.


2011년 12월, 아빠는 뇌출혈로 수술을 받으셨고, 공무원 생활 중 우리 삼 남매 모두를 결혼시키겠다는 아빠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병가를 내고 회복에 전념했지만, 아빠는 결국 복직하지 못하고 명예퇴직으로 공무원생활을 끝내야 했다.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빠 간병에 모든 시간을 썼고, 우리 가족의 삶은 그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아빠에게 딸을 무사히 결혼시키는 것은, 자신의 건강과 꿈을 잃은 후 남은 마지막 소망이자 의무였을 것이다. 그 무게가 결혼식 내내 아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음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신부 입장!"


웨딩드레스를 입고 걷는 건 상당히 불편했다. 발로 드레스를 차면서 걸어야 겨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아빠는 내가 팔짱을 낀 팔에 유난히 힘을 많이 주고 계셨다.


아빠는 절뚝거리는 걸음을 사돈과 하객들에게 들키지 않고, 딸에게 당당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유난히 더 빠르게 걸으려고 하셨다. 웨딩드레스에 엉켜 아빠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아빠에 이끌려 마치 장군 같은 걸음으로 뚜벅뚜벅 힘차게 드레스를 발로 차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아빠의 절뚝거리는 걸음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아빠의 몸이 안 좋아지셨다고 했다. 당신의 절뚝거리는 걸음이 티 나지 않게, 집에서 걸음을 연습하시며 입장을 잘하기 위한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그 걸음은 딸을 시집보내는 슬픔을 억누르고, 딸의 앞날을 축복하려는 아버지의 숭고한 의지의 발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너무 무심하게 느껴졌다. 왜 중요한 건 항상 나중에 알게 되는 걸까.


난 그것도 모르고, 결혼식 내내 환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 결혼식에 갔을 땐 눈물도 잘 흘리는 내가 정작 내 결혼식에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상상한 대로 행복한 표정으로 '완벽한 결혼식'을 치렀다고 자부했다. 아빠, 엄마와 눈 마주칠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눈을 피하고, 억지로 더 환하게 웃었다.


딸의 그 환한 웃음이, 아빠 입장에서는 얼마나 야속하셨을까. '내 서운한 마음도 모르고 결혼한다고 저리 좋을까'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을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슬픔과 '잘 가라.'는 사랑이 교차된 마음을 삼키며 온몸으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고 계셨다는 걸 몰랐다.


아빠의 그 걸음은 내가 보지 못했던, 가장 크고 완벽한 사랑의 행진이었다.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과 모든 힘을 쏟아낸, 아빠의 당당한 행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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