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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주다

웃음으로 전해진 사랑의 언어

by 알쏭달쏭

"너는 참 귀여웠어."


엄마, 아빠는 가끔 내 어릴 적을 사진을 보며 그 말을 반복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귀여움'이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볼살, 좁은 미간과 작은 눈, 그리고 세상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조합이었다. 입술은 삐죽 나와 있었고, 눈썹은 내려갈 대로 내려가서 흡사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만화 캐릭터 같았다.


아빠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숨이 넘어갈 듯이 웃었고, 나를 놀리며 묘한 즐거움을 찾으셨다. 그것이 나를 향한 애정 표현임을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왜 나를 놀리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는 그 사진을 "우리 딸 시집갈 때 꼭 보내주겠다"며 소중히 보관하셨다. 이쯤 되면 나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 일부러 장난을 치신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장난기가 넘쳤던 아빠는 나를 가만두지 않으셨다. 아빠는 매번 황당하고 예측 불가능한 문장들을 던지며 순진한 딸을 시험에 들게 했다.


"이리 와서, '나는 메주다' 해봐."


나는 잠시 망설이거나,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저 아빠가 시키는 대로, 그 문장을 그대로 따라 했다.


"나는 메주다."


그 짧고 어이없는 말에 아빠는 또다시 배꼽 잡고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내가 하는 말의 의미는 정확히 몰랐지만, 아빠가 웃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아빠가 행복해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가 이렇게 하면 아빠를 기쁘게 해 줄 수 있구나'하는 원초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 순간 나는 아빠를 웃게 만들 수 있는 '능력 있는 딸'이라는 사실에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는 약간의 한숨과 함께 아빠를 다그쳤다.


"여보. 애한테 그런 말 좀 시키지 마."


엄마의 목소리에 걱정과 염려가 묻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건가? '생각하며 아빠와 엄마사이에서 아주 짧은 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가 뭐라고 하든, 아빠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계속 "나는 메주다"라고 해보라는 말을 반복하셨고, 나는 그때마다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엄마의 염려보다 아빠의 웃음이 더 크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나는 메주다."


그 말은, 그때의 우리 가족에게 가장 단순하고 완벽한 웃음 버튼이었다.






이 유쾌하고도 혼란스러운 유년기의 기억은, 성인이 된 나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 웃음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나를 꼭 닮은 둘째 딸의 모습을 통해서였다.


양 옆으로 한껏 튀어나온 볼살이 완벽한 구를 이루고 있고, 눈썹은 처져 있어 착해 보이지만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장난기가 많은 아이 고양이처럼 생겼다. 그 아이가 미친 듯한 귀여움을 발산하며 엉뚱한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할 때, 나는 깨달았다.


아빠가 딸에게 '나는 메주다'라고 시키며 웃었던 그 마음은, 그저 딸의 존재 자체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과 사랑을 주체하지 못했던 표현이었음을. 당신의 말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게 따라 하는 그 작은 생명을 보며, 세상 그 어떤 유머보다 환한 웃음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그 사랑의 복사본은 나의 딸에게로 이어져, 오늘도 우리 가족의 일상에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서툴고 어이없지만, 그 웃음 속엔 분명히 사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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