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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 싫어하는 사람이 하루 종일 민폐를 끼쳤을 때

극한 육아

by 알쏭달쏭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얼마나 심하냐면, 아파트 청소 중이신 미화 아저씨께 인사를 드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인사 때문에 혹시 집중이 흐트러질까 싶어 결국 인사도 못 드리는 정도다. 혹은 아저씨도 내향이시면 인사가 오히려 불편하시진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남편이 출근한 주말, 집안일을 하다가 아이들을 텔레비전 앞에 방치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일단 나가자."


도서관에 들렀다가, 무인문구점에서 뽑기 하는 코스로 아이들을 설득했다. 소박한 계획을 들고 집을 나섰다.

도서관에 도착하자 첫째 제리는 어린이 매트에 드러눕고, 둘째 티커는 잔뜩 책을 가져왔다. 책을 읽어주던 중, 평소 책을 멀리하던 제리가 갑자기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성우처럼 연기까지 넣어 읽어줬다. 그 모습을 본 티커의 입이 쭉 나왔다.


"엄마는 언니만 사랑해. 나한테는 책 안 읽어주고, 언니만 읽어주잖아."


심통이 잔뜩 난 목소리. 하지만 제리의 잠깐 생긴 관심이 사라질까 봐 황급히 티커를 달랬다. 이미 질투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책을 뽑았다 넣었다 하며 투정을 부리다가 결국 울음이 터졌다.


순식간에 비상이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아이들을 안고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차분히 타일러보았고, 티커는 겨우 울음을 멈췄다.


책을 정리하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웨건에 아이 둘을 태우고 걸어가는데, 도저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잘 살아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힘이 빠지지.'


그런 생각들이 밀려왔다.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강아지와 산책 중인 노부부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강아지 안 좋아하나?"

아이들은 방금 울고 나온 탓에 굳어 있었고, 괜히 오해받을까 싶어 얼른 말했다.


"애들 강아지 좋아해요. 방금 도서관에서 울다가 나와서 그런 거예요."


내가 다시 말을 하자 아이들은 그제야 마음을 풀고 강아지에 관한 질문을 시작했다.


"이름이 뭐예요? "

"왜 한쪽 귀가 뒤집혀있어요?"

"갈색이 왜 섞여있어요? 염색한 거예요?"


그렇게 마음이 풀리는 듯싶었다.




무인문구점 앞에 도착해 말했다.



"티커는 도서관에서 울었으니까 뽑기 없어. 언니만 뽑기 하자"

티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눈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흔들렸다.


"혹시 너도 뽑기하고 싶어?"

다시 물어보자 티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도서관 가서는 절대 울면 안 돼. 도서관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면 안 되는 곳이잖아. "

티거는 알겠다고 조용히 대답했다.



밖에서 놀다 보니 출출해져서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티커가 제리의 옷에 떡볶이를 흘렸다. 제리는 울고 소리 지르고, 티커는 바로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제리는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티커 싫어! 내 옷에 떡볶이 흘렸어!!"

"언니 미안해. 모르고 그랬어."


거듭된 사과에도 제리는 복수를 다짐했다


"티커한테도 나중에 떡볶이 흘릴 거야!"

"제리야 티커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사과도 했잖아. 받아주자."


하지만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사과 안 받아줘!"


결국 또 가게 밖으로 나왔다.




너무 지쳐 커피라도 마셔야겠다 싶어 카페로 향했다. 사장님 강아지가 피곤한지 누워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얘들아, 강아지 쉬는 시간인 것 같으니까 눈으로만 보자.”


잠깐 말을 듣는 듯하더니, 두 아이는 다시 강아지에게 몰려갔다. 다른 손님이 있는 자리였다.


“자리로 오라니까.”


그러나 듣지 않았다.

결국 사장님이 직접 제리에게 자리로 돌아가자고 말씀하셨고, 제리는 풀이 죽어 내 품으로 들어왔다.
나는 제리를 안아주며 조용히 말했다.


“봐... 엄마가 오라고 했잖아.”




너무 지치는 하루였다.
아파트 내 지하 카페에 내려갔다. 먼지가 쌓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이었다.

아이들은 신나는 듯 놀기 시작했고, 나는 갑자기 그 넓은 공간을 청소하고 싶어졌다. 걸레질을 하고 또 했다. 오늘 하루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친 것들을 보상이라도 하듯, 어느 때보다 열심히 청소했다.


아이들은 “엄마 청소하니까 좋다!”라며 클레이 놀이를 했다.


아이들도 나도 여러 번 울컥했다. 무너질 듯한 순간들이 자꾸 찾아왔지만, 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평화도 분명 있었다. 나는 오늘도 버텼고, 아이들도 잘 따라왔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도 잘 견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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