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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남편과 화병 아내

주말 오전,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간

by 알쏭달쏭

토요일 아침, 애를 낳고 나서 늦잠이라는 걸 자본적이 거의 없다. 애들은 새벽 6시면 눈을 번쩍 뜨고 나를 깨운다. "엄마, 일어나!"

"5분만..."이라는 내 요청은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


8시쯤, 남편이 일어나서 아이들을 챙기기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불면증이 있어 주말엔 보통 11시~3시에 일어난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그걸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건 우리 부부의 오래된 갈등이기도 했다.


'왜 주말엔 나만 애들 보고, 남편은 당당하게 잠을 자지?'


애들이 어렸을 때 주말 오전은 정말 버거웠다. 쌓이고 쌓여 화병이 되었던 것 같다.


세수, 양치, 샤워, 심지어 배변까지.. 뭐라도 하려고 하면 애들은 화장실 문 앞에서 울고, 문을 두드렸다.

"제발... 똥 좀 싸자. 인간답게 살고 싶다."


다행인 건 둘째가 36개월이 넘어가면서 이제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기다려주기는 개뿔. 오늘 아침에도 내가 화장실을 가자마자 미친 듯이 불러댔다.


편도체가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화가 쉽게 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책 내용이 자꾸 떠올랐다.


아이들이라서 그러는 건데 나는 너무 쉽게 화를 낸다. 그리고 곧이어 자책한다. 이 패턴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11시 반쯤, 남편이 방에 와서 말했다.

"교대 좀 해줘. 어제 4시에 잤더니 너무 힘들다."

나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도 좀 늦잠 좀 자자. 나는 왜 늦잠을 자면 안 돼?"

남편이 묻는다.

"몸이 안 좋아서 그래? 그러면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생리기간이긴 했다. 어제부터 이유 없이 짜증이 올라왔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는데 왜 화는 줄지 않을까? 노력의 효과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냥 타고난 걸까? 아니면 내 뇌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그냥 끝도 없이 자고 싶었다. 남편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고립감이 밀려왔다.


그때 남편이 안경을 찾으러 안경점에 가야 한다고 했다. 바람을 쐬면 괜찮을까 싶어 나도 같이 간다고 했다. 초밥과 우동을 먹고, 간 김에 마트에 가서 여행준비물도 샀다. 아이들은 졸린지 슬슬 짜증을 내고 보채기 시작했다. 우리의 에너지는 빠르게 고갈됐다.


그러고 안경점으로 가던 길, 남편이 예민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당신은 왜 따라온 거야?"


"그냥 바람 좀 쐬려고."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하. 나 혼자 갔다 오면 한 시간인데, 당신하고 애들까지 오니까 네 시간이 걸리잖아."


"나는 그냥 같이 있으면 좋으니까."


"그건 컨디션 좋을 때나 하는 이야기지."


"미안해."


주눅이 들어 바로 사과했다. 혼날까 봐 조마조마하는 아이처럼 자책한다.


'괜히 따라왔다.'


남편은 평소엔 다정하고 유머도 많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선택엔 불같이 화를 낸다. 내가 원하면 맞춰주려다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확 터지는 성향. 나는 남편이 왜 그렇게 화가 많은지 몰랐지만 이제는 그의 포인트를 조금은 안다. 나는 '같이 가고 싶어 하는 사람', 남편은 '혼자 빨리 처리하고 싶은 사람'


초반엔 너무 부딪여 '내가 잘못 결혼했나?'라는 생각도 했다. 누가 나에게 이렇게 폭발적으로 화낸 적이 없어서 회피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감정조절이 어렵다. 누굴 비난할 입장은 아니다. 나는 늘 피했고, 피하는 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하는 것만으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서로의 상태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잠도 못 잔 남편에게 "같이 가자"라고 말하지 않았어야 했다. 7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상대 성향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어렵다.


단순한 결론 하나. 상대가 싫어하는 건, 하지 말자.

반성하고 다시 그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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