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탓이 아닌, 내 마음의 문제
아이들은 문제없다. 내 문제만 있다.
첫째 제리가 밥을 먹다가 나를 향해 재채기를 했다. 그리고 내 온몸에 '밥알샤워'를 시켜줬다. 머리카락이고 얼굴이고, 소파 틈새까지 밥알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 순간, 갑자기 몰려온 짜증에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야!!"
물티슈로 주섬주섬 밥알을 닦아내는 데도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침이나 재채기할 땐 소매로 가려야 한다고 수백 번을 말했는데, 아직 잘 안된다. 아이의 표정에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약간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변하자 바로 미안해졌다. 애라서 그런 건데, 그걸 알면서도 화를 내는 나 자신이 참 못나보였다.
그러자 남편이 깜짝 놀라서 방에서 튀어나왔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제리가 재채기해서 밥알이 난리가 났어."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고."
아마 나의 육아 방식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 지금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알기에 늘 조심스럽게 침묵하곤 했다. 대신 그는 제리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부드러운 말로 엄마 마음을 설명하고, 앞으로 어떻게 기침해야 하는지 알려주며 아이를 달래주었다.
그날 오후, 유치원에서 보내준 제리의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제리는 영어 문장을 말하면서도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틀릴까 봐, 혼날까 봐,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내가 아이를 두렵게 만들고 있구나.'
샤워를 하면서도 계속 심장이 두근거렸다.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화는 제리에게 향한 걸까? 아니다. 아마도 나 자신에게 향한 거다.
육아 스트레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제리는, 나를 엄마로 만나 계속 이런 순간들에 노출될지도 모른다. 내 얼굴도 요즘 부쩍 억울한 표정으로 굳어간다. 그게 또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혼자 버티는 걸로는 안 되겠다. 도움이 필요하다.
부모가 화를 내면 아이의 뇌에 멍이 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문장이 샤워기 소리보다 더 크게 머릿속을 울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는 제리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제리야 엄마가 아까 소리 지른 거 미안해."
하지만 '이제 다시는 화 안 낼게'라는 약속을 차마 하지 못했다. 이미 여러 번 했고, 번번이 그 약속을 어겼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아이들은 자라며 실수를 반복한다. 그리고 나 역시, 어른이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아이가 실수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나는 그 실수를 몰아붙였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내 감정을 먼저 다뤄져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오늘도 부족했지만, 그래도 다시 다짐한다. 내 감정을 먼저 조절하는 방식을 배우자. 내 감정의 방식이 아이의 세계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