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그때의 나는 얼마나 바랐던가.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첫째는 초등학교 고학년, 둘째는 일곱 살인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 예전 직장이 적성도 잘 맞았고, 연봉도 꽤 높았던 친구였다. 과에서도 늘 상위권이었고, 취업면접도 한 번에 통과해 이른 나이부터 회사 생활을 한 친구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돌봐줄 사람이 없자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은 공무원으로 일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나는 예전 직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일을 그만둘 수 있게 해 준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일은 재미있었고, 꽤 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회사를 떠나고 싶던 이유가 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만난 그 상사는 시간만 나면 다른 사람 험담을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건을 들먹이며 욕하는 소리를 듣는 건 고문 같았다. 그 상사가 퇴사하고 나니 또 다른 상사와 마찰이 시작되었다. 이직이 너무 두려워 8년이나 버텼지만, 마음은 늘 도망치고 싶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그 연봉이 그립다.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의 달콤함. 소비를 많이 하지 않아 통장은 자연스럽게 차곡차곡 채워졌다. 적금이 쌓여가는 걸 보며 느끼던 그 뿌듯함이 있었다. 지금도 생각한다.
그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지금쯤 내 연봉은 얼마나 되었을까?
내 계좌는 얼마나 풍성해졌을까?
그리고 그 풍성함이 나에게 어떤 여유를 주었을까?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나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딸이 있다. 수천조를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는 아이를 꼭 낳고 싶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 친구들이 육아에 지쳐 "절대 결혼도 하지 말고, 애 낳지 마라."며 경고를 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아이가 갖고 싶었다. 그것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삼 남매로 자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삼남매라서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서로 기대어 일으켜주는 힘이 있었다. 아빠가 갑자기 뇌출혈 수술을 하게 되었던 날, 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내려가며 울고 또 울었다. 중환자실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앙상한 아빠를 보며, 우리는 병원의자에서 밤을 새웠다. 옆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때 생각했다. 혼자였다면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딸들에게도 서로 붙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삶은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으니까. 힘든 순간에도 서로를 잡아줄 손 하나는 꼭 있어야 하니까.
우리는 늘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본다. 놓아버린 것과, 지금 손에 쥔 것.
돌아보면 언제나 마음이 향하는 쪽은 '지금의 삶'이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그때의 나는 얼마나 바랐던가.”
삶은 늘 어떤 것을 얻고, 어떤 것을 놓아야 하는 싸움 속에 있다.
놓아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그저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뿐이다. 그 길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삶을 얻었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천천히 단단해진다.
늘 흔들리면서도, 나는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