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직장내에서의 괴롭힘이 최근들어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괴롭힘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예전에도 직장내에서의 괴롭힘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지고 파괴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저 개인간에 해결해야할 문제로 치부되었다.
그러다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피해를 입는 근로자들을 국가차원에서 구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논의가 생겨나면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2019년에 '직장내 괴롭힘'이라는이름이생겨났다. 이제는 직장에서의 괴롭힘 문제가 국가에서 해결해야할 사회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이 직장내 괴롭힘, 태어난지 얼마안된 법이라 그런지그시작이 순탄하지 않다. 직장내 괴롭힘 사건은 근로감독관에게도 참 괴로운 사건이다.
갈등과 분쟁은 양 당사자 사이에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줄 뿐만아니라 실제 국가적인 손실로 이어진다. 국무조정실에서 발주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해 평균 232조7000억원을 사회적 갈등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법과 법원이 생겼다.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하면 안되는 부분"을 미리 정해놓아 갈등을 예방하는 역할로 법이 활용되고, 공정한 제3자로서 각 건별로 시시비비를 가려 이미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은법원에서수행하고 있다. 예방은 법으로, 사후대책은 법원에서. 이것이 국가가 갈등을 관리하는 기본적인 툴인 것이다.
그런데, 현행 직장내 괴롭힘은 이와 정확히 정반대로 관리되고 있다.
첫째로, 직장내 괴롭힘은 정확한 판단기준이 없다. 법에서는 직장내 괴롭힘을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그 무엇도 직장내 괴롭힘이 될 수 있습니다.'이다.
당연히 국민들이 혼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내가 A사원에게 프린트를 부탁하는 것이 직장내 괴롭힘인가? B과장님의 송별회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직장내 괴롭힘인가?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명확하고 세세한 판단기준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특정행위가 직장내 괴롭힘이다 아니다 판단하기가 어렵다. 예측가능성이 없는 추상적인 규제는 문제해결의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새로운 갈등과 혼란을 조장한다.
둘째로, 이미 발생한 직장내 괴롭힘을 처리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다. 근로자끼리의 괴롭힘이든, 사용자에 의한 괴롭힘이든, 직장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고 조치하는 당사자는 갈등의 이해관계자인 사용자이다.
과연 이해관계자인 사용자가 직장내괴롭힘에 대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와 조치가 가능할까?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장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로 보인다.
물론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직장내 괴롭힘의 숫자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사와 판단을 국가에서 모두 수행한다면 수많은 인력과 돈이 필요할테니 일차적으로 사업장에서 스스로 처리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현재 직장내괴롭힘의 해결을 원하는사회적인불만과 니즈는 엄청나다. 실제로노동부에서는 직장내괴롭힘 문제로 일선의 근로감독관들이 매일 염증을 겪고있다.
진정의 내용은 사업주가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된 의무를 하지않았어요가 아니라 "직장내괴롭힘을 당했어요 도와주세요"다. 본인의 문제를 사용자가 아닌, 객관적인국가 기관에서 판단받고 구제받고 싶어하는목소리로보인다.
하지만 직장내 괴롭힘으로 노동부에 찾아온사람들의 십중팔구는위와 같은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고민이해결이 되지않아 또 다시 괴로움을 겪는 경우가대부분이다.
이 지독한 직장내 괴롭힘 문제를시원하게 해결할 수는 없을까?
제일 먼저,근로감독관이 괴롭힘을 판단할수는 없다. 직장내괴롭힘과 같이 명확한 기준이 없는 사안에서 일개 공무원 개인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수 많은 문제를 양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괴롭힘을 판단하는 주체로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최소 법원과 같거나 유사한 형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기관이 바로 지방노동위원회다. 법원과 유사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가진 기관으로서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법원보다 싼값으로 단시간내에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직장내 괴롭힘 업무 전반을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담당할 필요성이 있다.
단, 현 상황에서 단순히 업무만을 넘기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 노동위원회는 조직 내부에서도 상당히 격무조직으로 최근 업무가 많아지고 메리트도없어 모두가 기피하는것이 현실이다.
이런상황에서 적절한 인력과 예산투입없이 노동위원회가 직장내 괴롭힘 업무를 소화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직장내괴롭힘이 사용자에게 판단과 조치를 모두 떠넘기면서 지금도 많은 문제들이 파생되고 있다. 사업장 감독을 나갈때 사업주가 이게 괴롭힘이 될까요? 물어볼때마다 참 애매한 부분이 많다.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법과 규칙으로 명확하고 세세하게 판단기준을 내릴 수 없다면 반드시 적법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 사안별로 괴롭힘 유무를판단할수 있도록 조치해야한다.
현행법은 절대로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실효적인 구제수단이 되지 못한다. 유명무실화되어 수많은 피해근로자들에게 더 큰 괴로움을 주고 있다.
직장내괴롭힘은 그 누구도 가해자가, 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문제를 규정한 법이므로 누구나 꼭 알아봐야하고, 이에 생각해보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태어난지 얼마안된 법이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치열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로 계속해서 고쳐나가야한다. 많은 사람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