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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ady Sep 09. 2024

절대로 공무원 하면 안되는 사람이 있다

달리기 시합이 아니라 차례차례 순서대로 였습니다.


", 잘못 들어왔어"


 입사한지 얼마 안되서, 과장님이 시키신 일로  첫 보고를 들어갔다. 보고서와 함께 간단한 설명을 드린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붙들고 있는데, 과장님께서 보고서를 한번 훑어보곤 갑자기 "너는 여기  잘못 들어왔다"라고 하셨다.


 깜짝놀라 "네?" 반문하니 과장님께서 말을 이어가신다.  "싹싹하고, 젊고, 일 잘하고, 사기업에 갔으면 승승장구 하겠지만, 공무원 조직은 아무리 잘나도 별로 소용이 없어. 순서대로 하는거야 순서대로. "


 칭찬인지 아닌지 싶어 당시에는 애매한 미소로 넘어갔으나 이 말은 나중에도 꽤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말이 되었다.



'순서대로'


 공무원의 낙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승진이다. 그리고 이 승진은 웬만하면 능력 순이 아니라 입직 순이다. 꼬우면 먼저 들어와야 하는 세계의 법칙이라 하겠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때가 되면 승진 하는 것이니까 징계정도의 문제만 없다면 죽을똥 살똥 살지 않아도 어느정도 까지는 알아서 승진이 된다.


 한편으로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내 차례가 오기까지 순순히 기다려야하는 것이 숙명이다보니 어떤 이는 참 답답할 수 있다 하겠다.


 옛 과장님이 해주신 호랑이 담배피우던시절 이야기 중 하나가 있다. 예전에 노동부 9급으로 입사해 아주 높디높은 곳까지 올라가 승진의 전설이 된 아무개씨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께서 젊었을적 그분과 근무를 같이 했었는데, 승진의 전설이라는 그 분은 놀라울정도로 일을 못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능력없는  분의 승진 비결은 바로 ㅇㅇ군 출신이라는, 당시 실세들과 고향이 같다는 이유였다.)


 물론 극단적인 옛날 이야기로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겠으나, 공무원 세계에서 승진과 능력이 언제나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승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다. 관운.




 당신이 지금까지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살아왔다면, 쉽게 말해 '잘났다, 능력있다' 이야기 들으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공무원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의 능력이 백프로 성공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달리기 시합이 아니다. 너무 잘나지도, 너무 못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순서를 기다리는것이.


 왜 우리가 순서를 기다리다보면 "어, 야 빠졌어 빠졌어." " 30분 뒤면 들어가겠다." " 옆에서 이번에 많이 빠진다는데?" 라고 하면서 기다리지 않는가?


 딱 그렇다. 처음에 기다릴때는 할까 말까 망설이지만, 막상 서게 되면 무념무상, 궁시렁 궁시렁하며 그냥 서 있다.


 만약 처음에 "아, 사람 너무 많은데? 그냥 다른데 갈까" 라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 벗어날 마지막 기회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다.


  "와, 앞에 많이 없어졌네. 오 뒤에 사람봐." 이정도가 되면 나갈래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못 나가기 때문이다.


 잘 뛰는 사람도, 잘 못 뛰는 사람도 때 되면 차례차례, 그게 바로 공무원의 인생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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