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사이에 일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이 생겼습니다. 나름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현실에서는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활약 중 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만나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근로자의 권리를 구제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애환을 가지고 사는 근로자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근로감독관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직업입니다. 근로감독관의 주 업무는 노동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근로감독관은 분쟁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이를 중재하거나 경찰관으로서 수사의견을 작성해 검찰로 넘깁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상처받았거나, 감정적으로 소모되었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거나 하는등 다양한 이유로 좋지 않은 상황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건들이 매일 같이 들어옵니다. 눈이 계속 내리더라도 쉬지않고 쓸어야 합니다. 계속 쓸지 않으면 눈에 쌓여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감독관입니다.
좋은 직업이라하면 자고로 높은 연봉, 좋은 근무환경, 일과 가정의 균형, 적절한 업무 난이도등의 조건이 있을 것이지만, 근로감독관이라는 직업은 이 모든 것에 낙제점을 받을 만한 직업입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 매일매일 전쟁같은 근무환경, 밥먹듯이 하는 야근, 그럼에도 높이 요구되는 전문성. 모든 것을 고려했을때 근로감독관이라는 직업은 객관적으로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직업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정해진 원칙과 약속이 존중받는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직업적 소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팀장님이 임금 안주는 놈들은 아주 나쁜놈들이라 다 징역을 보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웃어넘겼지만 임금체불 문제는 팀장님 말씀처럼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임금은 생계입니다. 그 사람 뿐 아니라 그 사람 가족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죠. 노동을 제공받았음에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과 그사람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살인하는 행위입니다.
물론 사업주라고 언제나 강자인 것은 아닙니다. 작업복에 흙먼지가 가득하고 산업재해로 손가락이 없거나 장애를 가지게 되신 사업주들도 있습니다. 하루 하루 월세에 쪼들려 살기도 하는 수많은 영세 사업주들은 근로자보다 생활수준이 열악하기도 합니다. 사업주도 결국 열심히 사는 사람일 뿐, 현실에서는 절대적인 선과 악이 있지는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립적인 시선으로 노동관계법령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가지고 해결해내야 합니다. 두꺼운 법전과 매뉴얼을 항상 곁에두고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지금도 제 곁에는 건강한 노동사회를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쳇바퀴를 돌리는 동료 감독관들이 있습니다. 미약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근로감독관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근로감독관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근로감독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시는 분이든, 불친절한 근로감독관을 만나서 기분이 언짢으셨던 분이든, 근로감독관에게 도움을 받으셨던 분이든, 노동부 감독으로 인해 고생하셨던 분이든 다양한 경험을 하신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기에 조금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좀 더 현직 근로감독관으로서 근로감독관의 현실, 일하며 겪었던 여러가지 애환들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일하며 생기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 사람사이의 여러 갈등에 대한 이야기, 가감없이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