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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ady Sep 02. 2024

너희들 월급에는 욕값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거라면 좀 더 받아야겠는데요.

 옛날에 과장님이 그런얘기를 하신적이 있다. 너네들 받는 돈에 '욕값'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욕먹고 힘들어도 일이다 생각하고 넘기라고. 누군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풀어주고 욕을 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근데 과장님, 그런거면 좀 더 받아야겠는데요'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회사에 오는 사람들은 약이 오를데로 올랐거나 속에 울분이 가득해 어떻게든 해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답답한 문제를 시원시원하게 해결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아 네, 돈을 못받으셨다구요~? 그돈, 제가 받아드릴게요! 걱정마시고 집가서 편히 쉬세요" 하고 말이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임금의 지급은 사건 진행 중 부수적인 사안일 뿐 원칙적으로 민사의 영역이다. 근로감독관의 주 업무는 노동법 위반에 대한 수사, 즉 위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형사처벌에 있다.


 그럼에도 가끔 근로감독관을 사적으로 고용한 흥신소 직원 혹은 내 돈 먹고 튄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듯 하다. 가끔씩 들어오는 악성민원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신규 공무원 연수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근로감독관으로 잔뼈가 굵으신 베테랑 선배감독관님이 강의를 오셨다. 상당히 유쾌하신 분이셔서 즐거운 분위기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의가 무르익을때 쯤 갑자기 선배님께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이야기는 바로 친하던 동료 감독관이 순직했다는 이야기 였다. 유쾌하시던 감독관님께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는데, 나는 그 때의 순간이 지금도 참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전국 2,000여명의 근로감독관 중에 종종 자살이나 과로로 삶을 떠나시는 분들이 있다. 가끔 사내 게시판에는 자살한 근로감독관이 생전에 민원인으로 부터 받았던 폭언과 괴롭힘이 작성된 문자와 전화내용들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것들을 읽다보면 속에서 화가 끓어오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구나하고.


 감독관들이 자살로 삶을 마감해도 바뀌는 건 없는지 세상은 똑같이 흘러간다.  바쁘게 전화기를 들고, 조사를 하고 해야할 일들을 한다. 다음에 사내 게시판에 올라오는 사람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아니길 바라면서.


 과장님 말씀 대로 내가 받는 월급에 욕값이 포함되어 있다면, 나야 말로 지금 임금체불을 당하고 있는 듯 하다. 욕 먹는 걸로 따지면 연봉이 1억은 되어야 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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