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문과에 상경계열을 전공했다. 행정직 공무원이 된 나는 따분한 사무직 업무를 하겠거니 하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다. 그랬던 내가 처음 근로감독관이 되고나서 한 일은 바로 안전모와 안전화를 사러가는 것이었다.
처음 이 과에 배정되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내가 봐온 산업안전 근로감독관들은 항상 자리에 없었다. 항상 2인 1조로 안전모를 들고 바쁘게 어디론가 출장나가는 모습. 가끔은 바지에 무언가가 잔뜩 묻어있는채로 오기도 하고, 어떤때에는 흙바닥에서 굴렀는지 흙을 뚝뚝 떨어트리면서 사무실에 들어왔다. 이렇게일반적인 공무원 업무와는 조금다른산업안전 업무는 감독관으로서의 내 첫 업무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에 두명에서 세명꼴로 일을 하다가 돌아가시는 분이 생긴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지금도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물론 건설업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지만 어느 업종에서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보니, 현장에 출장하는 장소도 참 다양하다.
산업안전감독관의 업무는 사고를 예방하는 일이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찾아야 하고, 그 위험을 시정하도록 조치해야한다. 현장이 다양하다보니 다양한 사고사례와 규칙을 숙지해야하고,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처음 무작정 현장에 투입되다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비계, 동바리, 거푸집...' 단순한 건설현장 용어도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건설현장이라면 시공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제조업이라면 어떤 과정으로 제품들이 입고되고 출하되는지 어떠한 생산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부족했다.
제대로 된 근로감독관이 만들어지려면 만 3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꿔 말하면 3년이 안된 경력짧은 감독관들은 제대로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참 불합리한 일이다. 균일한 수준의 행정을 제공받아야할 권리가 있음에도 베테랑 감독관과 신규 감독관의 업무능력 차이는 천차만별이라 어떤 경우에는 수준높은 행정이, 어떤 경우에는 낮은수준의 행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산업안전 감독관 직무능력은 최저수준을 올릴 필요성이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감독관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경찰을 예로들어 보자. 입사와 동시에 중앙경찰학교에 들어가 8개월 이상의 훈련과정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게 된다. 그런데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은? 단 몇주 혹은 한달정도의 교육 이후에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은 사람의 생명과 관계가 높은 직군으로 중요한 업무이며 전문성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요구된다. 특히나 중대재해처벌법 등 처벌수위가 강해지고 있어 사업장에서는 대형로펌 등을 선임하여 법망을 회피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이때,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는다면 산업 안전과 관련된 법률의 실효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초짜 감독관 시절에는 막막하고 답답한 이유가 내가 못나서 인 줄 알았으나 지금와서보면잘 모르던 그 정도 수준에서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 자체가 구조적인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에서 인원충원에 급급해 소년병들에게 총한자루씩 쥐어주고 전쟁에 투입시키는 것 처럼 말이다. 단순히인력충원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충원되는 인력에 대해 어떻게 전문성을 확보할 것인지는 분명히고심하여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