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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Jul 22. 2022

5. 우리만의 정서가 담긴 순간

다섯 번째 휘게이야기


요즘, 하루 종일을 살아 내고 나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한 시간은 몇 분쯤이 될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든다.


하루 종일 현실에서도, 가상의 세계에서도

어느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이 감정은 내 감정이 맞나?

지금 이건 내가 하고 싶고, 갖고 싶어 하던 게 맞나?

지금 내가 하는 이 말은 어느 누군가의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이었던가? 그런 생각들이 오간다.



진짜 나는 누구이고, 진짜 우리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눈을 감고 잠시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를 온전히 알고 나면, 바라보는 다른 것들에 담아지는 내 마음이 순수해진다.





나에게는 나름대로의 큰 일을 앞둔 직전이었던, 주말의 이야기이다.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걱정하는 일은 최대한 떠올리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홀라당 보내버려야지!! 했던 주말.


어느 날 마음에 새겨두고 있던 한 블로그 이웃분의 레시피를 떠올려냈다.(네이버블로그 @꼬레푸드)


왠지 이 간식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만드는 과정, 귀여운 결과물을 보여내기까지 매 순간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것만 같은 간식이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바로, 고구마치즈떡.




남편한테 주말이 다가오기 며칠 전부터 나 고구마치즈떡 만들 거야, 하고 계속 입버릇처럼 외치고 다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만들고 말 테다.' 하는 굳은 나의 의지를 담아.


고구마치즈떡을 만드는 재료는 정말 간단하다.


고구마, 치즈(원하는 치즈 종류 무엇이든, 나의 취향을 담으면 된다.), 찹쌀가루, 설탕. 끝.


단순한 재료만큼이나, 만드는 과정도 쉬워서 잡념을 날리고 정서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아주 어린아이들이 흙이나 모래, 찰흙을 가지고 놀면서 행복해하는 것과 같이

다 큰 성인에게도 나의 심적 불안감을 잠재워줄 손놀이가 필요하다.



찹쌀가루와 설탕을 2.5:2의 비율로 섞을 때, 큰 고구마 2개 정도 분량을 사용하는 레시피였던 것 같다.


집에 고구마가 많이 있었던 관계로 나는 4~5개 정도의 고구마를 써서 찹쌀가루와 설탕의 양도 더 늘려줬다.

전자레인지로 따뜻하게 데운 고구마는 으깨주고, 찹쌀가루와 설탕과 함께 마음껏 섞어준다.


어느덧 귀여운 반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혼자 신이 나 방방 뛰었던 것 같다.





취향껏 버터를 조금 발라주고 프라이팬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주면 정말 따뜻, 고소, 담백, 달콤한 고구마치즈떡 이 완성된다.


보기에도 귀엽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즐거움을 주었던 이 귀여운 간식을 바라만 봐도 흐뭇한 이 순간


남편이랑 나는 이런 순간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오롯이 둘이서 재료를 요리로 탄생시키는 순간을 끊김 없이 지켜보는 것.

그리고 같이 마음껏 그 음식을 즐겨보는 것!





반죽을 하고 굽는 시간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에서 30분 남짓.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생각 없이 이 순간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24시간 중에 유일한 순간일 수도 있는 이 짧은 찰나.


이 순간 나는 잠시 나를 만난다.


하루 중 잡념 없이 머리를 텅 비워낸 순간을 기억하는가?


그랬던 적이 언제쯤이었을까?





열심히 고구마치즈떡을 만들어서 남편한테 선보였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이라 조금 더 신이 났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도 이 순간을 다시 같이 느껴보고 싶다고 해서, 이번엔 감자로 감자치즈떡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미 한 번 해봐 익숙해진 요리를 다시 할 땐 전에 없던 용기가 나기도 한다.


나만 믿어!






재미는 찾았지만, 과신은 때로 참사를 불러오기도 하는 법이라는 걸 잠시 잊었다.


과신과 과욕.

뭐든지 과함은 부족함만 못하다.


우리의 욕심껏 담은 치즈들이 빼꼼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어

고구마치즈떡보다는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감자전분 덕분에 특유의 쫄깃함은 더 살아있었다.







차별하지 않을게, 하면서도 이쁜 아이들만 먼저 찾게 되는 게 또 내 맘이기도 했나 보다.


남편이랑 맛보기 하려고 집어 든 떡 2개가 만든 것 중에 제일 이뻤네.






따뜻한 간식이랑 어울릴 만한 홍차를 가져와서 남편이랑 잔잔한 하루의 끝을 장식했다.






잔을 따뜻하게 데우기 위해 처음엔 따뜻한 물을 넣고 비워주고

홍차를 처음 우려낸 잔은 또다시 한번 비워주고

그다음 잔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맛을 내어주는 전통차.


넉넉히 끓여온 따뜻한 물을 곁에 두고


물이 다 동날 때까지 남편이랑 천천히, 자그마한 잔을 비워내면서

일주일 고되게 보내느라 경직된 몸과 맘을 따뜻하게 녹여내었던 순간.





아주 잔잔한 음악과, 아주 서정적이고 인정스런 이야기가 담긴 드라마를 나란히 앉아 듣고, 바라보면서


그날의 공기, 분위기와 우리의 기분을 천천히 온몸으로 느껴보려 했다.


이렇게 오롯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채운 공간을 만들고

우리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과 감성으로 포장한 선물 같은 하루를 만들 수 있는 날이

바삐 살아온 일주일 중 단 하루 정도라도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가!


다들 다가오는 이번 주말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한 공간에서 그 순간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무려, 주말이 코 앞으로 다가왔으니까.

우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핑계가, 이유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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