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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최북단 모로코로

by 조영환

여행의 계절, 다시 걷는 스페인-지브롤터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최북단 모로코로



세비야에서 이베리아반도 최남단 타리파로


우리는 세비야 대성당 근처 북경성에서 식사를 마치고 이베리아반도 최남단 타리파로 이동한다. 이제 남은 일정은 모로코로 들어가는 일정만 남은 셈이다. 세비야 대성당 근처엔 한식은 물론 스페인요리, 안달루시아 요리부터 지중해, 중국, 인도, 프랑스, 이태리 등 세계 각 나라의 음식과 패스트푸드까지 들어와 골목골목 자리를 잡고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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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달키비르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달려 스페인 남쪽 끝으로 내려간다. 끝없이 펼쳐진 평화로운 이 땅, 푸르른 목초지를 온전히 가축들에게 내어준 이 땅, 겨울에는 농사짓던 땅을 온전히 휴경하며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비닐하우스를 이곳에선 단 한 동도 볼 수 없다. 온화한 기온을 가진 이 땅의 축복이지 싶다. 완만한 둔덕과 경사면을 따라 평원을 오르내린 지평선은 눈부시게 흰 회벽돌로 지어진 마을과 만나 하나로 어우러진다. 붉은빛 기와지붕을 얹은 눈부시게 흰 벽체는 지중해에 반사된 강렬한 태양빛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다가온다.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거슬림이 없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드넓은 대지는 이곳 사람들의 심성과 다르지 않을 듯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오래전부터 해안을 지키며 서있었을 낡은 성곽이 멀어진다.


우리는 그렇게,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모로코와 마주 보고 있는, 지브롤터해협 건너편 안달루시아 Andalusia 카디스 주의 작은 항구도시 타리파 Tarifa를 떠난다.




타리파는 710년 무사 빈 누사이르의 베르베르 군 사령관 타리프 이븐 말리크의 공격 이후 ‘타리파, 로마지명 ‘Hispania’라는 지명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근처의 볼로니아 마을 바엘로 클라우디아 Baelo Claudia는 고대 로마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Baelo_Claudia


히스파니아(Hispania)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를 가리키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된 로마 시대의 지명이다. 초기 정착민이었던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의 역사를 반영한 지명으로, Hispania는 페니키아어로 "토끼의 땅" 또는 "북쪽 땅"을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을 때, 반도에 많은 토끼가 서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이름을 붙였다는 해석도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오늘날 레바논과 시리아 해안에 위치한 고대 페니키아 지역에서 출발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했다. 페니키아는 지중해를 따라 무역과 항해를 통해 번성했던 해양 국가였으며, 기원전 1,200년경부터 활발히 활동했다. 이들은 항해술이 뛰어나 지중해 전역을 탐험하고, 무역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다양한 식민 도시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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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주된 목적은 자원 확보와 무역 확장이었다. 이들은 특히 은, 철, 주석 등의 금속 자원을 얻기 위해 이 지역을 중요한 무역 거점으로 삼았다.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대표적인 도시로는 오늘날 스페인 남부에 위치한 카디스와 말라가가 있으며, 이들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히스파니아는 서고트족과 그 후 무어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무어인의 문화가 이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기독교 세력의 레콩키스타(재정복) 시대가 도래하면서 히스파니아에는 로마, 서고트, 이슬람, 그리고 기독교 문화가 차례로 쌓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다양한 역사적 층위가 단층처럼 쌓여 현재 이베리아 반도의 풍부한 문화적, 건축적 유산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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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칼리프의 확장 정책에 따라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반도 정복이 시작된 10세기경부터 꾸준히 요새화된 타리파는 1292년 카스티야의 산초 IV세에 의해 정복되어 북아프리카 이슬람 세력의 공격에 저항하는 거점이 된다. 그러나 이슬람과 가톨릭 두 세력 간의 빈번한 충돌은 결국 1340년 마리니드의 또 다른 포위 공격으로 타리파 전투(일명 리오 살라도 전투라고도 함)가 벌어진다. 마리니드 왕조의 술탄 아부 알-하산 알리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의 가톨릭 함대를 물리친 후 타리파 근처의 살라도 강으로 진격하여 이베리아반도 진출의 발판을 삼으려 하였으나 사실상 이 전투, 타리파 전투를 마지막으로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반도에서 모두 무력화된다. 결국 1492년, 스페인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과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은 이슬람교도들의 수중으로부터 이베리아반도를 재탈환하며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고 레콩키스타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해 8월 3일 세 척의 범선을 갖고 콜럼버스가 팔로스 항에서 출항하며 새로운 식민지 개척이 시작되며 또 다른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스페인의 그라나다 정복,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반도에서의 패퇴로 종결지어지기까지 이베리아반도 최남단에서 부딪친 두 세력의 충돌로 인하여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던 타리파였다.

우리는 항구 근처의 요새화된 붉은 해안 성곽을 바라보며 새털구름이 가득 내려앉은 타리파 항구를 떠나 지브롤터해협 Strait of Gibraltar을 건너 아프리카 땅으로 들어간다.




지브롤터해협을 건너 모로코 탠지어 Tánger로


우리가 탄 페리 여객선은 타리파 - 탠지어 (아랍어: طنجة, 스페인어: Tánger 탕헤르) 뱃길을 따라 지브롤터해협의 거센 물살을 살살 달래 가며 엇비스듬히 항해를 시작한다.


https://es.wikipedia.org/wiki/Estrecho_de_Gibraltar



지브롤터 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좁은 해역으로, 전략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해협의 가장 깊은 곳은 약 300m, 가장 좁은 폭은 약 14km로, 이 좁은 거리 덕분에 두 대륙인 유럽과 아프리카가 마주 보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해협은 스페인의 지브롤터와 모로코의 세우타 사이에 있으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무역과 군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거센 물살 위에 위태롭게 너울거리는 작은 조각배에 몸을 의지한 채 고기를 잡는 어부, 그 조각배 주위를 새까맣게 에워싸고 몰려들어 어부의 고기를 약탈하는 갈매기 떼,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조각배에 몸을 실은 어부의 치열한 손놀림은 고기잡이에 여념이 없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사이 폭 좁은 바다는 양 대륙의 땅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을 포용한다. 대서양으로 기울어져가는 해를 바라보며 우리가 탄 배는 서서히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 탠지어 항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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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탠지어 부두에서 단돈 1유로에 여행객들의 짐을 나르는 ‘포터’라 불리는 체구도 작고 등이 굽은 짐꾼들의 고된 삶과 만난다. 누구에겐 호사스러운 여행이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고단한 삶의 현장이다. 선박이 정박한 곳에서 출입국관리소 까지는 상당한 거리이기도 하지만 계단도 많고 오르내림이 심한, 이네들이 포토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이동통로이다. 바람은 세차고 무빙워크 같은 시설은 아예 없다. 캐리어가 힘에 부친 여성분들이나 고령자는 가방을 포토에게 맡긴다. 등이 굽은 키도 작은 포터, 그네들을 뒤로하고 탠지어 시내로 들어선다.


Tangier's population in 1873 included 40,000 Muslims, 31,000 Europeans and 15,000 Jews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uis_Comfort_Tiffany_-_Market_day_outside_the_walls_of_Tangiers,_Morocco.jpg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 최북단의 이슬람권 나라로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편입을 희망하는 반면, 아직까지 EU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로코는 아프리카의 선진국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극심한 빈부 격차 문제를 안고 있으며,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여전히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1956년 3월 2일,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하였으며, 그 이후 국가 발전과 안정성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모로코는 비교적 발전된 산업 기반과 관광 산업을 갖추고 있으며, 여러 사회적 개혁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절대왕정의 복귀가 이루어진 후, 왕국은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며 국가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모로코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독립 후 국가 발전과 잘 사는 나라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나름 선진화된 국가이다.


도시 전체가 그네들의 속을 남김없이 보여주기라도 할 듯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널브러져 있다. 잠자는 땅을 깨우는 중장비 굉음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을 이내 한 입에 집어삼킨다. 도시 곳곳이 파헤쳐지고 정비 공사가 한창이다.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풍광은 이들의 꿈과는 달리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어쨌든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고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땅, 이들의 국왕이 국제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다는 이 땅, 우리나라 여수,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와 엑스포 유치 경쟁을 벌였던 탠지어에 발을 내디뎌 아프리카 대륙의 관문에 들어선다. 여행자는 또 길을 떠나겠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이 그러했듯이 이들의 고단한 삶은 꿈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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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후 6시가 넘어서야 탠지어 인근 간두리 해변 Plage ghandouri 근처 모하메드 6번가에 위치한 Hotel Tarik에 여장을 푼다. 세비야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출발했으니 5시간 가까이 찻길 뱃길로 이동한 셈이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호텔 근처에 London Times 특파원인 Walter Harris의 집을 공원으로 조성한 Villa Harris Park가 있는데, 늦은 시간엔 치안을 담보할 수 없으니 호텔 정원 정도만 걸으란다. 우리는 잠시 소화도 시킬 겸 호텔 정원을 걷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선인장이 사람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정원에 잠시 머물며 그렇게 아프리카 모로코에서의 밤을 맞는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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