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카를 쓴 무슬림 여성 같은 모로코의 메디나 페스 Fez, 천년의 이야기 천연염색 무두질 공장 태너리 Tannerie, 전통음식 꾸스꾸스 Couscous와 따진 Tagine
모로코의 아침
모로코의 아침은 새벽부터 촉촉한 비로 시작되었다. 시간은 04시 40분.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면, 알보란 해(Alboran Sea, 지중해의 가장 서쪽 바다로 지중해의 관문, 지브롤터 해협과 영국령 지브롤터와 닿아있다.)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물을 끓여 호텔에 준비된 인스턴트커피 한 잔을 타 마시며 노트북을 열어 메모를 남긴다. 커피 향에 마음이 잠시 머무르고, 어둠에 잠긴 낯선 땅의 바다에 눈길을 주며 잠시 사색에 잠긴다. 모로코의 새벽 공기 속에 스며든 물기와 바다 향이 감각을 깨우며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하늘 높이 솟은 중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 광장을 중심으로 아직도 그 옛날 왕족과 귀족들이 살고 있을 듯 웅장하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웅장하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건축물들, 돌조각을 잘라 장인의 손으로 하나하나 모자이크처럼 박아 넣은 잘 정비된 거리, 예전엔 마차들이 다녔던, 타일 같은 작은 돌을 무수히 박아 넣은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오가고 있다.
유럽인들은 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답고 아직은 꽤나 쓸 만한 유산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풍요로운 삶과 대조되는 아프리카의 빈곤은 과거 식민지 개척과 대탐험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역사적 강자의 수탈이 남긴 상처일 것이다. 그들에겐 영광스러운 대항해 시대였지만, 이들에겐 착취와 상처의 시대였을 것이다.
지나온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여정을 되돌아본다. 머릿속에 남은 상념과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을 맞추듯 하나의 줄거리로 그려진다. 왠지 심기가 편치만은 않다. 이런 여행자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이른 아침부터 차분히 내리는 빗줄기는 탠지어를 적시고 탠지어는 여행자의 마음을 적신다.
우리는 이른 아침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전날 투숙한 호텔 타리크의 객실은 하얀 회벽에 이슬람식 문양이 새겨진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섬세하고 미려한 동판 세공 티 테이블과 집기로 채워진 호텔이다. 비좁은 공간에 노후된 시설의 호텔, 그래도 이만한 호텔 찾기가 쉽지 않다는 호텔이다. 타리크 호텔 Hotel Tarik 주변으로도 타워크레인이 세워지고 야간임에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호텔을 증개축 공사가 한창인 모양이다. 엘리베이터는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는 골동품에 가까웠다. 그런대로 호텔 로비와 식당은 아늑한 분위기다. 입구에 게양해 놓은 다섯 개의 국기 중 태극기도 보인다. 아무튼 그저 이국적 분위기에 만족해야 하는 호텔이지 싶다. 온통 붉은빛 조명으로 가득한 호텔 식당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아프리카 북부의 미로도시인 페스로 이동한다.
붉은 땅의 나라 모로코
가는 곳마다 이름 모를 선인장이 사람 키만큼 자라고 있다. 지나는 마을마다 땅에 납작 엎드린 농가주택들 주변에도 선인장이 가득하다. 이웃집과의 경계나 울타리에 대부분 선인장이 자라고 있는, 다소 이색적인 풍경이 여행장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푸른 하늘이 여행자를 맞는다.
모로코 땅은 짙은 붉은색이다. 사람들의 집 역시 붉은 토벽으로 지어져 단순한 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현대식 주택조차 대부분 2층 구조로 낮고 단정하다. 새로 개발된 택지 지구의 주택들도 예외는 아니다. 마치 작은 성냥갑들이 나란히 놓인 듯한 모습이다. 이는 유목민의 주거 특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 시간가량을 달려온 우리는 붉은 땅의 모로코 들녘을 지나 페스의 도심으로 들어선다. 거리에는 흰색 질레바 차림의 남자가 알루미늄 창틀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어간다. 검은색 상의를 걸친 차도르 차림의 여인은 그의 뒤를 따른다. 코카콜라 로고가 인쇄된 붉은색 차광막을 씌운 가게 앞에 걸터앉은 남루한 행색의 젊은 남자의 초점 잃은 시선은 지나는 행인들을 무료하게 따른다. 건물 기둥마다 붙였다 떼어낸 포스터 크기의 광고지 흔적이 덕지덕지하다. 귀퉁이가 뜯겨나간 광고판은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신음을 토해내고 있다.
고층 건물이 차츰 눈에 띄고 차량도 점점 많아진다. 중앙선도 그어져 있지 않은 도로 여기저기서 차량들이 뒤엉키며 혼잡스럽다. 이래도 아직은 큰 문제는 없다 한다. 하얀색 비닐 고깔로 팔뚝을 감싼 조금은 특이한 복장의 교통경찰관은 지나는 차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원형 교차로 중앙 분수대에서 한줄기 물줄기가 푸른 하늘을 가른다. 붉은색 흙에 뿌리를 내린 야자수 나무 아래에선 청춘 남녀가 마주 서서 포옹하고 있다. 히잡 (아랍어: حجاب, 영어: hijab)이나 부르카 (아랍어: برقع Burqu)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성들이 거리 곳곳에 보인다. 다른 이슬람권 국가보다 훨씬 개방적인 모로코 도심의 풍경이다. 번화가 공원 사자상 위에 어린 사내아이들이 몸싸움을 벌인다. 히잡 차림의 모로코 여인이 아기를 앉고 지나간다. 무장군인과 경찰이 일개 조로 공원 거리를 순찰 중이다. 왕궁이 가까이 있는 모양이다.
도로변 대형 입간판에서부터 호텔, 작은 가게와 식당에까지 모하메드 6세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는 나라 모로코, 붉은색 바탕에 초록색 큰 별이 그려진 모로코 왕국의 깃발이 그들의 희망과 꿈을 앉고 도심 곳곳에서 나부낀다. 붉은색은 모로코 왕실의 색이고 이곳의 붉은 땅과도 관련 있는 듯하다. 초록색은 이슬람교에서 신성시하는 색으로 이슬람 사원, 왕실의 궁성과 무덤, 민가의 집에서도 초록색 지붕과 초록색 타일을 많이 사용한다. 큰 별은 이슬람교의 5가지 율법을 상징하는 술래이만의 별이라 한다. 아무튼 왕궁 성벽 위에서부터 도심의 원형 교차로, 빌딩의 꼭대기에도 가는 곳마다 붉은 깃발이니 도시 분위기가 어째 좀 전제적인 느낌이 드는 모습이다. 마치 80년대 이전의 우리나라 모습과 비슷하달까!
아라베스크로 상징되는 이슬람과 알마크젠 왕궁
페스의 엘즈디드 지역 구시가지 인근에 있는 모로코에서 두 번째로 큰 알마크젠 왕궁 Dar al Makhzen의 출입문과 벽은 이슬람 전통양식인 아라베스크 Arabesque 문양으로 섬세하고 화려했다. 왕궁 앞 광장은 야자수 나무가 가득하다. 섬세하고 미려한 세공으로 다듬어진 아치형 청동 출입문 위로 초록색 지붕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주 출입문 앞에 알루미늄 사다리를 높이 걸쳐 놓고 아라베스크 장인들이 한창 도색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왕궁 옆 경비초소엔 경비 군인들이 서성이고 여행객들은 이슬람 양식의 화려한 문양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댄다. 왕궁은 왕이 자주 방문하는 관계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왕궁의 외관을 관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중해적 유산이다. 이슬람 예술가들은 자연의 모습에서 일정한 패턴을 표현하여 그것을 양식화했다. 우상숭배가 금지된 이슬람권에서 사람과 동물을 그려 넣을 수 없기에, 식물의 줄기와 잎이 가지고 있는 반복적인 패턴을 추상적인 무늬로 도안하여 기하학적 무늬와 배합시킨 것이다.
아라베스크로 상징되는 이슬람의 개념은 광범위하다. 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북아프리카, 중동아시아, 중앙아시아까지, 발칸반도에서 붉은 모래의 땅 사하라 이남 지역까지 걸쳐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하는 매우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양상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전체를 상징하는 일련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아라베스크 문양이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에 크게 유행하는 양식이다. 이슬람의 강한 공동체 의식과 집단주의를 말해주는 아라베스크 양식은 이베리아반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면서 유럽과 아랍 건축이 한데 어우러져 12세기~17세기의 스페인 건축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을 탄생시킨다.
이슬람 전통음식 꾸스꾸스 Couscous
왕궁, 정확하게는 왕궁의 외관 일부 관람을 마친 우리 일행은 페스 우체국 POSTE MAROC 앞 도로에 대기한 버스에 오른다. 도로는 매우 복잡했다. 차창 밖으로 페스의 미로도시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블루게이트’라 한다. 게이트 옆에 좌판을 벌인 사람들이 가득하다. 바나나와 오렌지를 파는 리어카 노점상들도 보인다. 간이식당, 신발 상점, 웨스턴 유니언 은행, 코카콜라 파라솔 의자에 죽 나와 앉아 뭔가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 굴속같이 좁고 어두운 가게, 빛바랜 붉은색 차광막은 곧 내려앉을 것처럼 힘겹게 버티고 있다. 색이 바래 알아보기도 어려운 페스 구시가지 입구 표지판의 화살표는 기름기 빠진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무심하게 골목을 바라보고 있다. 좁은 골목 안으로 사람들과 상인들이 빽빽하게 뒤섞여 있다. 언뜻 보기에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정비되지 않아 무질서한 빈민가 같은 곳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점심 식사 후에 저곳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우리는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이네들의 전통음식 꾸스꾸스를 잘한다는 RIDA ELEGANZA(Restaurant Eleganza)의 허름한 식당 출입문을 발견한다. 굴속 같은 입구 위에 굵기가 서로 다른 각종 전기선과 통신선이 실타래 엉키듯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식당 입구가 좀 구질구질 하단 느낌으로 안으로 들어선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깜짝 놀란다.
첫째, 외부에서 보았을 때 내부 구조를 전혀 알 수 없는 노출이 철저히 차단된 구조로 전통적인 이슬람식 가옥구조였으며 식당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넓었다. 우리는 전통적인 이슬람 가옥의 정원에서 점심 식사를 즐긴 셈이다. 이네들 정원에 반드시 있는 분수, 다섯 분출구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분수 주변에 다섯 개의 촛불을 동시에 밝힐 수 있는 은세공 5구 촛대 다섯 개가 놓여 있었다. 이 또한 이슬람의 상징인 다섯 가지 율법을 상징하는 모양이다. 천정을 개폐하는 전통적인 이슬람식 가옥구조였다. 벽체와 바닥은 이슬람을 상징하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초록색, 황토색, 흰색, 청색, 검은색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그냥 평범한 식당이겠거니,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식당으로 들어섰는데, 골동품에 가까운 계산대 탁자와 티 탁자 등 모든 가구와 창문, 창틀, 문, 화장실 쪽 회랑 천장을 가로지르는 보의 전통적인 구조와 황토색 타일로 마감된 벽면 장식까지 정갈하고 아름다운 이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다. 역시 이곳에도 어김없이 모하메드 6세 국왕 사진이 걸려있다. 건물은 오래전에 지어진 것이지만 섬세하고 작은 타일들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으며 깔끔한 원형 식탁에는 기본적인 음식과 접시, 와인 잔 등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다.
둘째, 식당 공간에 전시된 생활 집기들이 수준급이었다. 섬세한 청동 세공으로 만들어진 청동 원탁과 은주전자, 청동물병, 청동갓 스탠드, 촛대와 거울, 청동으로 제작된 이슬람 여인 와상, 티탁자, 이슬람 향로 등 갖가지 다양한 생활 집기들이 거의 예술품 수준이다. 성당이나 모스크의 보물들보다 더욱 정감 있는, 이네들의 실생활에 사용되었거나 사용되고 있는 이슬람 민가의 물건들이다. 따라서 식사 후에 이들을 둘러보는 즐거움은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이요 의외의 소득이었다.
셋째, 전식으로 나온 볶음야채와 빵에 이어 잠시 후 본식으로 나온 닭고기 꾸스꾸스 Couscous 맛이 우리 입맛엔 아주 만족스러웠다. 손으로 먹는 전통방식을 따라 해보고 싶었으나 참기로 했다. 마침 금요일에 이곳을 방문했으니 이네들이 금요일 대예배 후에 온 식구들이 함께 먹는다는 꾸스꾸스를 제대로 맛본 셈이다. 음식은 역시 문화를 맛보는 것이다. 후식으로 나온 민트 차가 잘 우려 져 붉은 빛깔을 띤다.
살라말리쿰! Sala malay kum!
말리쿰살라! malay kum Sala!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식당을 나온다.
부르카를 쓴 이슬람 여성 같은 모로코의 메디나 페스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페스(아랍어: فاس, 스페인어: Fez)의 복잡한 미로를 관광하기 위하여 남색 질레바 차림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로컬 가이드 낫시르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정확한 말은 ‘앗살라무 알라이쿰(아랍어: السلام عليكم)’이다. 아랍어로 "신의 평화가 당신에게"를 의미하는 이슬람권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사말이다. 우리는 식당에서 나와 큰 길가 우체국 앞을 지나 길을 잡는 낫시르를 부지런히 따라간다. 주차한 차량에 대형 버스, 리어카와 오토바이, 히잡과 질레바 차림의 사람들, 미로의 입구가 가까워지자 관광객을 따라붙는 아이들과 장사꾼, 호객꾼까지 차선도 없는 도로에 가득하다. 출발부터 정신없이 어수선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냉정해야만 이 미로를 제대로 탐험(?)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우리는 남성 모델을 내세운 헤어숍 광고와 Hostel DarRabha, 뭔지 모를 아랍어 광고들이 가득 붙어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결코 이방인의 발길을 허용치 않는 복잡한 페스의 미로에 첫 발을 내딛는다. 비좁은 골목길 사이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천년고채의 상하수도 시설이지만 아직도 유용하게 사용하는 페스의 미로는 여행자의 눈엔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경이로운, 그리고 믿기 어려운 현실로 다가온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인 7~80년대 허름한 나무를 이용하여 대충 짠 사과 궤짝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듯, 셀 수 없이 많은 벌집 같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밀집되어 형성된 천년고도이다. 그러나 여전히 21세기의 페스 사람들이 온몸으로 그들의 주된 생업인 가죽 가공을 하며 알라신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 이 미로에서 평생을 살아온 무하메드는 무두질로 6자녀와 아내를 부양하는 전형적인 페스의 가장이다. 그의 소원은 죽기 전 허락된다면 메카를 순례하는 것이다. 이 골목에 살고 있는 많은 무하메드의 삶과 꿈의 모습이다.
사방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페스,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특유의 냄새가 여행자의 후각을 심하게 자극한다. 이 비좁은, 그리고 또 비좁은 골목 안에서도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그들만의 놀이에 여념이 없는 개구쟁이 아이들의 천진함은 여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서자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네들의 일상이 다가온다. 길가 땅바닥에 아기와 주저앉아 구걸하는 사람들, 여행객을 따라다니며 그네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가죽 지갑을 팔려고 십 유로를 외쳐대는 사람들, 페스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다.
다시 낫시르를 따라 골목을 헤집어 더욱 깊숙이 패스로 들어간다. 흰색 교복 차림으로 빵을 구워가는, 페스의 아침을 여는 소녀, 사람들이 오가는 좁은 골목 한편에서 할아버지부터 손자들까지 돌아앉아 그네들의 전통방식인 다섯 손가락을 빨아가며 손으로 꾸스꾸스(금요일 대예배 후에 먹는다는 이네들의 전통음식)를 먹느라 낯선 이방인들의 얼굴은 아랑곳하지 않는 페스 사람들이다. 우리는 좁고 굽은 골목길을 따라 탐험하며 미로에서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어른과 아이들 아녀자와 노인들 모두가 이곳에서 대를 이어 1000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골목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집들과 천년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미로도시, 치열하게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는 이네들의 삶의 터전인 페스다.
중세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페스
모로코 페스 Fez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 최대의 복잡한 미로, 이네들에겐 성지나 다름없는 메디나다. 본래 메디나 المدينة المنورة Medina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서부 헤자즈 지방에 있는 메카 북쪽으로 약 350㎞ 지점에 있는 성지이다. 무함마드가 622년 메카에서 추방당하여 헤지라(성천)를 행한 곳으로써, 그 묘가 메디나에 있다. 무슬림들의 성지인 셈이다. 모로코에서는 도시의 중심, 구 시가지를 메디나라 부른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외적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복잡한 미로로 도시를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곳의 미로도 그중 하나다. 메디나는 적군이 침입했을 때 좁은 골목길을 이용한 게릴라 전법으로 싸우는데 효과적인 방어막이었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페스의 메디나는 중세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 무려 9,000여 개에 이르는 서로 다른 골목은 좁았다 넓어지고 뻗었다 구부러지며 이어져 완벽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좁고 급격하게 굽은 골목길은 차는 물론 수레도 다닐 수 없기 때문에 지금도 당나귀나 노새가 짐을 실어 나르는 중세 모습 그대로이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노새(당나귀 수컷과 암말을 교배하여 나온 것이 노새이며, 당나귀 암컷과 수말을 교배하여 나온 것이 버새이다.) 똥을 밟기 십상이다. 길을 재촉하는 노새 몰이꾼의 고함이 골목 어귀에서 들려올 듯하다.
페스 골목의 장인들
이 골목에서 처음으로 들린 금과 은, 청동을 손으로 두들겨 만드는 세공 전문상점을 둘러본다. 남다른 경륜이 느껴지는 장인이 보기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작은 의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정교하고 섬세하며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을 청동접시에 새기고 있다. 생활용기부터 장식용, 향합과 촛대, 크고 작은 접시, 풀무, 물병, 청동거울 등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세공품들이 가득하다. 공간이라 할 것도 없는 좁은 벽면에는 똑같은 일을 하던 그네들의 선조들 사진이 걸려 있다. 밖으로 나와 또다시 미로를 따라 걷는다. 금요일 오후라서 문 닫은 상점들이 많아 골목은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평일 같으면 이 좁은 골목에 현지인들과 아이들, 노새, 관광객들이 마구 엉켜 자칫 여행객들은 길을 잃기 쉽다고 한다. 길을 잃는 것이 어쩌면 이곳을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일 수 있겠지 싶다. 미로를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페스 특유의 냄새는 이내 익숙해진다. 노새의 배설물 냄새도 구불구불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이내 사라진다.
무두질 천연염색 공장 태너리 Tannerie
우리는 계속해서 골목을 탐험하며 이네들이 가공한 가죽제품을 판매하는 가죽판매장을 찾아간다. 무두질로 가죽을 가공하여 천연염색을 하는 태너리 Tannerie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기에 가죽판매장에서만 볼 수 있다 한다. 모로코 가죽은 단연 세계 최고의 품질이다. 디자인은 뒤떨어져 있어 살만한 상품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통가죽 혁대를 좋아하는 나는 상점에서 이네들의 품질 좋은 가죽 혁대를 하나 집어 들고 값을 치른다.
강 옆으로 가죽염색을 위한 염료통들이 가지런히 들어서 있다. 페스를 관통하는 페스강은 가죽을 가공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다. 가죽을 빨고 무두질하고 염색하는데 아주 중요한 입지다. 이것이 유명한 페스의 가죽 천연염색장, 태너리 Tannerie이다. 우리는 가죽판매장에서 태너리를 내려다본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다. 안타깝게도 마침 염료 통을 일괄적으로 보수하는 기간이어서 울긋불긋 강렬하고 다양한 색상의 염색작업은 볼 수 없었다. 모로코의 강렬한 색상, 이네들의 천년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보아야 하는데, 염료를 모두 퍼내고 보수한 태너리는 무채색으로 깨끗했고 두 대의 타워크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태너리를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깨끗한 태너리 만큼이나 아쉽고 공허해진다.
이네들은 전통적인 무두질로 질 좋은 가죽 원단을 생산한다. 이를 구매하려는 유럽의 메이저 회사들과 바이어들을 상대로 거래를 하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유럽과 전 세계에 가죽 원단을 수출한다. 무두질이란 동물로부터 갓 얻어낸 생가죽은 부패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원피를 물로 깨끗하게 씻고 가죽으로부터 젤라틴을 비롯한 단백질 성분과 기름, 잔털을 긁어낸 후 유제를 작용시켜서 각각 사용목적에 따라 알맞게 가공하는 과정이다. 이때 부패, 충해, 곰팡이 발생을 방지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가죽은 물에 담그면 팽창하며, 건조하면 단단한 널판과 같은 상태가 되므로 반드시 무두질이 필요하다. 가죽제품의 소재인 가죽을 사용이 가능하게 하기 위한 공정 중 하나로, 가죽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가공 과정이다. 이들은 이 공정을 온몸으로 치열하게 한다. 모든 원피는 이들의 치열한 무두질로 비로소 가죽 원단으로서 가치를 갖게 된다. 관절염과 통증은 이들의 직업병이다. 낫시르가 페스 투어에 앞서 들려준 무하메드, 6자녀와 아내를 부양하는 이 땅의 전형적인 가장 그 무하메드는 무두질로 인하여 이미 관절염과 통증으로 고생한 지 오래되었다 한다.
카라위인 모스크 Mosquee Al Qaraouiyine로 이어진 패스의 골목길
우리는 태너리를 볼 수 있는 상점을 나와 이 천년고채(千年古寨) 가운데 우뚝 선, 예배시간이 되면 아잔이 울려 퍼지는 초록색 지붕의 카라위인 모스크 Mosquee Al Qaraouiyine에 다다른다. 무슬림이 아닌 우리는 들어갈 수 없고 그저 기웃기웃 거리며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과거 이들은 이베리아반도에서 쫓겨날 때 무어인들의 뛰어난 예술과 과학기술을 가지고 이곳으로 왔다. 9세기 중엽인 859년에 설립된 알카라위인 대학 جامعة القرويين, 이 대학 건물을 중심으로 12세기에 현재의 형태로 확장된 모스크는 이들 삶의 중심이다. 약 2만 2천 명의 참배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모스크와 이들이 메데르사 Mederasa라 부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이 미로에 있다. 미로 사방에서 출입할 수 있는 출입문만 14개로 그 규모는 가늠조차 어려웠고 미로로 연결된 페스에 대한 이방인의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과거 이드리스 왕조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페스는 서너 개의 도로와 기찻길이 지나고 있다. 도시가 갖춰야 할 모든 시설들이 9,000여 개의 미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미로를 중심으로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리고 모로코 왕궁이 있는 모로코의 다섯 개의 도시 중 하나이다. 페스의 메디나는 아랍-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잘 보존된 역사적인 도시 중 하나이다. 골목 여기저기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낡은 건물들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보강재를 사용하여 지지해 놓은, 천 년 동안 그렇게 붕괴되지 않고 페스를 지탱해 온 모습이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보인다.
페스의 미로를 지극히 간단하게 둘러본 여행자의 눈에 비친, 이미 천년 전에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 천년고채, 그럼에도 골목으로 이어지는 도시 시스템은 완벽하고 꽤나 합리적인 미로도시 페스였다. 미로에 적합한 시스템들을 그 오랜 세월 동안 찾은 것이고 어쩌면 오늘도 그러한 합리적인 시스템을 찾는 작업은 진행형일 것 같다. 21세기의 오늘을 사는 페스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중세에 머물러있게 하면서도 그들만의 법칙으로 오늘날의 페스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사는 미로도시, 페스이다. 이방인의 눈에 철저하게 비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미로 속에서 오늘을 살면서 고된 삶을 만족해하며 살아가는 이네들의 붉은빛 얼굴에서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페스를 보며 이네들의 천년의 이야기를 들은 셈이지 싶다.
고깔 모양의 전통 냄비 따진에 담겨 나오는 전통요리 따진 Tagine
페스의 미로를 빠져나온 우리는 3시간가량을 달려 저녁때가 되어서야 카사블랑카에 도착한다. 호텔에서 준비한 모로코의 대표적인 전통음식 따진 Tagine을 저녁식사로 맛있게 먹는다. 고깔 모양의 뚜껑은 덮여서 나오진 않았다. 소고기는 기름기가 없어서인지 약간 퍽퍽한 맛이다. 밥과 야채도 함께 담겨 나온다. 아마도 밥을 넣은 것은 한국 사람들의 기호에 맞춘 모양이다. 조그만 하얀색 토기 그릇에 담긴 국물이 같이 나온다. 향신료를 넣어서 특유의 냄새는 났지만 뭐, 그런대로 맛있는 음식이다. 국물이 함께 나오니 무엇보다 반가웠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먹은 음식들은 국물요리가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국물이 함께 나오는 따진은 한국 사람들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았다.
따진은 이네들이 꾸스꾸스나 따진을 요리할 때 쓰는 고깔 모양의 조리기구인 전통 냄비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네로 치면 뚝배기 같은 것이다. 우리의 뚝배기는 모든 요리가 가능한 조리기구이다. 이네들의 전통조리기구인 흙으로 빚어 만든 따진도 그러해 보인다. 이네들은 따진에 닭고기나 소고기, 야채 등을 함께 넣어 우리네 찰밥 찌듯 화덕에 쪄낸다. 화덕에 반은 굽고 반은 찌는, 수분이 촉촉한 찜 요리인 셈이다. 전통적인 따진은 양고기 따진이라 한다. 그렇게 이네들의 전통 조리기구인 따진에다 구워낸 요리 이름이 또한 따진이다. 따진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굽기만 하면 되니 비교적 간편한 요리, 따진이다.
호텔 로비 티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HOTEL CASABLANCA와 전화번호가 적힌 고깔 모양의 뚜껑 덮인 붉은색 토기를 재떨이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따진 이었다. 아무튼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객실로 돌아와 내일을 위하여 휴식을 취한다. 어둠이 내린 창밖을 내다보니 아직도 거리에 두런두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불을 환하게 밝힌 상점들은 한창 영업 중이었고 식당에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며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호텔 건너 주택의 베란다에서 여인의 빨래 너는 소리는 어둠을 가르고 낯선 여행자의 시선은 다소 긴장된 허공을 가른다. 술을 먹지 않는 이슬람 국가여서 야간의 거리는 조용한 편이다. 그러나 여행객들은 종종 범죄의 표적이 된다 하여 호텔 밖 출입을 자제하라 한다. 오늘 하루 일정을 되돌아보니 페스의 미로도시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카사블랑카 호텔의 객실 불빛이 하나 둘 꺼지며 모로코에서의 두 번째 날 밤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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