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 새겨진 에도시대의 영광
[설국의 기억, 일본을 걷다]
닛코 동조궁
시간 속에 새겨진 에도시대의 영광
신비롭고 장엄한 곳을 찾는다면 닛코(日光)만큼 완벽한 장소는 없다. 일본의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에서, 나는 마치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나와시로마치에서 출발하여 후쿠시마를 거쳐 달려온 끝에, 드디어 닛코 동조궁(日光東照宮)에 도착했다. 시계는 오전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신비로운 숲길을 지나 닿은 역사적 성지
동조궁으로 들어서는 순간, 웅장한 삼나무 숲이 길게 늘어선 풍경이 펼쳐졌다. 높이 치솟은 삼나무들이 마치 신을 향한 기둥처럼 서 있었다. 나무 사이로 부드러운 빛이 스며들어 경이로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살짝 내린 눈이 가지 위에 소복이 쌓여 신비로움을 더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얀 눈송이가 흩날려 마치 봄날 벚꽃이 질 때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천천히 흩어지는 꽃잎처럼 보였다.
경내로 들어서자, 부드럽게 휘어진 돌길이 나를 안내했다. 발 밑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경험은 특별한 느낌이었다. 부드러운 이끼가 덮인 석축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년 동안 이곳을 찾은 이들의 발길이 새겨진 듯, 돌길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나무와 돌 사이사이에는 눈이 살짝 쌓여 자연이 만들어낸 섬세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온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며, 신성한 장소임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신성함이랄까.
신사의 입구에 다다르자, 거대한 석조 도리이(鳥居)가 웅장한 자태로 우리를 맞이했다. 마치 세상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가벼운 떨림이 몸을 타고 흐르며, 속세의 소음이 점차 희미해졌다. 도리이를 넘으면 세속의 무게를 내려놓고 신성한 세계로 들어선다고들 한다. 나는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겼다. 문턱을 넘는 찰나, 낯선 고요함이 나를 감쌌고, 이곳의 오래된 공기가 피부를 스치는 듯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며, 마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묘한 감각이 들었다. 돌에 새겨진 나뭇잎 문양의 조각이 섬세하고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장인들의 손길이 닿은 예술적 가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도리이 너머로 보이는 붉은 신사 건물과 황금빛 장식들은 눈부신 대비를 이루며,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가볍게 내린 눈이 석등과 지붕, 경내 마당 위를 덮어,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천천히 떨어지는 눈송이마저도 정적을 깨지 않으려는 듯 공중에서 머뭇거리다 조용히 내려앉으며, 마치 이곳의 신성한 침묵을 경외하는 듯했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먼 곳으로 사라지고, 오직 영겁의 시간만이 차분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기며 숨을 고르자, 이곳이 지나온 세월과 역사, 그리고 오랜 세월 일본인들의 신앙이 어우러져 있음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한 예술과 장인의 손길이 깃든 공간
닛코 동조궁은 단순한 신사라고 하기엔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황금빛 금박을 입힌 웅장한 목조 건축물과 정교하게 조각된 장식들이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요메이문(陽明門)이었다.
이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기둥과 천장에는 섬세한 채색이 더해져 있어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했고, 용과 봉황, 기이한 신수(神獸)들이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었다. 금박으로 장식된 문이 햇빛을 받을 때마다 눈부시게 반짝였고, 그 빛이 주위 공간까지 환하게 물들였다.
요메이문 앞에 서니, 이 문이 왜 ‘시간을 잊게 하는 문’이라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장식은 볼수록 새로운 세밀함을 드러냈고, 그 세밀한 조각 하나하나에서 장인의 손길과 정성이 오롯이 느껴졌다. 문양 사이사이에는 천년의 세월이 깃들어 있었고, 그저 장식이 아닌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성한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바라보는 순간, 나는 동조궁이 단순한 신사가 아니라 예술과 신앙이 결합된 위대한 유산임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세 마리의 원숭이(見ざる, 言わざる, 聞かざる)’ 조각도 이곳에 있었다. ‘보지 말라, 듣지 말라, 말하지 말라’는 삶의 교훈을 담고 있는 이 작은 조각이,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원숭이들의 표정과 몸짓이 실감 나게 표현되어 마치 지금이라도 조각 속에서 뛰어나올 것처럼 생생했다. 작은 조각 하나에도 담긴 정성과 의미가 새삼 놀라웠다.
경내 곳곳에는 작은 나무패찰(絵馬)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시험 합격’ ‘가족의 건강’ ‘행복한 결혼’ 같은 소원들이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다. 어떤 글귀는 정갈하고 조용한 기운을 풍겼고, 어떤 글귀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패찰 위에 빼곡히 쓰인 한 글자 한 글자가 이곳을 찾은 이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 옆에는 참배객들이 타종하는 청동종(鐘)이 있었는데, 그 맑고 청아한 소리가 신성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종각 안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가라앉은 마음을 더욱 평온하게 만들며, 신성한 공간에 더욱 깊은 울림을 더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장인의 손길, 신앙과 염원이 켜켜이 쌓인 흔적들, 그리고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과 신성한 기운이 깃든 동조궁에 머문다는 것은 생애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이곳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의 경건한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황금빛 건축물 사이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빛, 경건한 표정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고요한 숲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어우러지며, 마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감각이 들었다.
문득, 이곳에서 기도를 올리던 옛 신도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들며, 세월과 공간을 초월한 신성한 장소임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기리는 영광의 터와 에도 시대의 유산
닛코 동조궁, 이곳은 에도 막부(江戸幕府)의 창시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1616년 이에야스가 세상을 떠나자, 닛코에 웅장한 동조궁을 건설하고 이듬해 그의 유골을 안장하였다. 이후 일본 각지에 그의 위패를 모신 동조궁이 세워졌으며, 에도 시대에는 그 수가 500여 개소에 이르렀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초기에 상당수의 동조궁이 철폐되거나 통합되는 수난을 겪었고, 일부는 시간이 흐르며 복구되었다. 현재 일본 전역에 남아있는 도쇼구는 약 130여 개소이다.
닛코 동조궁을 둘러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에도 시대(江戸時代, 1603-1868)에 대해 공부했던 것을 떠올렸다. 이 시기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설립한 후 약 265년 동안 지속된 시기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 아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다. 사무라이 계급이 정점에 서고, 농민과 상인, 장인으로 구분된 신분제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구조는 일본 사회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경제적으로는 에도(현재의 도쿄)를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했고, 대도시에는 번화한 시장과 유흥가가 형성되었다. 일본 전역에서는 지역 특산물을 거래하는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금융 제도가 정비되며 상업 자본가들이 등장했다. 또한, 도시 문화가 발달하며 우키요에(浮世絵) 목판화와 가부키(歌舞伎), 분라쿠(文楽) 같은 예술 형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네덜란드와의 제한적인 무역을 위해 나가사키 데지마(出島)를 활용하였고,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정기적으로 맞이하였다. 나가사키 도진야시키(唐人屋敷)에는 중국인 상인들이 거주하며 무역을 활발히 하였고, 이를 통해 서양과 중국의 학문과 기술이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쇄국정책 속에서도 이러한 제한적 교류가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닛코 동조궁을 거닐며, 나는 이 모든 역사적 흐름이 이곳에 응축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백 년 전 에도 시대의 사람들도 이곳을 방문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현대인의 모습으로 이곳을 찾았지만, 과거와 이어진 시간의 흐름 속에 서 있다는 감각이 강하게 다가왔다. 닛코 동조궁은 일본 역사와 전통의 정수를 담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닛코와 일본 문화 속 역사적 기록
닛코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저술물로는 『닛코의 신사와 사원』이 있다. 이 책은 닛코 도쇼구, 닛코 후타라산 신사, 닛코 윤왕사 등 닛코를 대표하는 유적들의 역사적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룬다. 또한 『닛코의 신들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전통문화 체험』은 닛코에서 체험할 수 있는 신토적 관습과 전통적인 의례를 설명하며, 시대적 배경과 함께 닛코의 의미를 조명한다.
닛코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일본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학작품으로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와 『마쿠라노소시(枕草子)』가 있다.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겐지모노가타리』는 일본 궁정 생활의 화려함과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일본 문화의 근본적인 정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는 일본 궁정 생활의 단편적인 기록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생생한 시각을 제공한다. 이처럼 닛코를 방문하는 경험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일본의 깊은 역사와 전통을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을 초월한 감동의 여운
닛코 동조궁을 떠나는 길, 나는 다시 한번 요메이문을 돌아보았다.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그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경내 한편에는 금박을 입힌 가마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조선시대의 가마와 닮은 모습이 흥미로웠다. 또, 보물관에는 일본의 역사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건축물 곳곳에는 고색창연한 조각 작품들이 새겨져 있어 일본 예술의 섬세함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본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급하게 전화를 받자, 대형 프로젝트 수주 건이 급물살을 타고 있어 즉시 귀국을 검토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상대측에서 책임 있는 임원이나 대표이사를 만나자는 제안을 해 왔다는 전언이었다. 여행을 온 것도 잠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순간이었다. 한 손으로 요메이문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수주가 확정되면 즉시 귀국해야 하기에, 남은 여행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 했다.
전화를 끊은 후에도 몇 차례 추가 연락이 오면서, 나는 경내 한쪽 조용한 곳에서 통화를 이어갔다. 닛코 동조궁의 경이로운 분위기와 달리, 현실적인 업무 이야기가 오가며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문득 눈을 들어 보니, 사방에 펼쳐진 웅장한 신사 건물과 주변의 고요한 숲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나는 비로소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마지막 통화를 마친 후,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닛코 동조궁을 떠나며 ‘닛코를 보지 않고는 결코 화려함을 논할 수 없다(日光を見ずして結構と言うなかれ).’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나는 이곳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닛코의 또 다른 명소, 게곤노타키(華厳ノ滝) 폭포였다. 웅장한 폭포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신사의 정문을 지나 다시 길을 나서며, 나는 이번 여행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게곤노타키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한층 깊어진 마음으로, 나는 닛코의 자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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