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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황거와 메이지 신궁에서 느낀 시간의 결

by 조영환

[설국의 기억, 열도를 걷다]

도쿄 황거와 메이지 신궁에서 느낀 시간의 결


도쿄 한가운데, 고층 빌딩과 전광판의 홍수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공기가 이상할 만큼 고요해진다. 눈앞엔 여전히 자동차가 오가고 인파는 흐르지만, 어딘가 낯선 정적이 공간을 감싼다. 속도가 전부인 도시에서 드물게 느껴지는 ‘멈춤’의 감각. 그 감각 속으로 한 발짝 들어서는 순간, 도시는 뒤로 밀리고 시간은 다른 결로 흐르기 시작한다.


도쿄 황거(고쿄)와 메이지 신궁.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두 장소는, 겉보기엔 전혀 다르다. 하나는 철저히 통제되고 폐쇄적인 황실 공간, 다른 하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신성한 숲. 그러나 이 둘을 관통하는 감정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경건함, 절제, 시간에 대한 무언의 경외. 그것들은 화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지만, 사람의 움직임과 시선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도쿄 황거는 여전히 천황이 거주하는 장소다. 일본 근대사의 시작점에서 현재까지, 권위와 국가의 중심이 이어지는 공간. 돌담 하나하나, 수로를 가로지르는 다리 하나까지도 에도성 시대의 기억을 품고 있다. 반면, 메이지 신궁은 일본의 정신적 정체성을 새로 만든 곳이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메이지 천황과 황후를 기리기 위해 국민이 숲을 만들고, 신전을 세웠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가 모두 기념의 의미를 지니며 살아 있다.


두 곳은 도시의 흐름과 무관하게 고요히 존재한다. 황거에서는 질서와 단단함이, 메이지 신궁에서는 자연과 호흡하는 유연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둘 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과거를 보존하고, 현재에 녹이며, 미래로 이어가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이곳들을 걸을 때, 단지 ‘명소’를 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차라리, 일본이라는 나라의 심장을 직접 느낀다는 느낌에 가깝다. 소리 없이 뛰는,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 있는 심장.



고쿄, 권위와 침묵의 풍경


도쿄 중심부,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과 촘촘한 전철망 위에 여전히 한 나라의 옛 질서가 살아 숨 쉰다. 도로 하나를 건너자, 마치 또 다른 시간대로 접속된 듯 풍경이 바뀐다. 차가운 돌담, 잔잔한 해자, 그리고 그 위에 아치를 그리며 걸린 니주바시. 그 다리 앞에 서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속도를 늦춘다. 이곳은 천황이 실제로 머무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권위가 농축된 장소, 도쿄 황거(고쿄)다.


황거의 전신은 에도성이다. 도쿠가와막부의 심장이자, 260년간 일본의 실질적 통치 권력이 머물던 공간.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이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오면서 이곳은 권력의 물리적, 상징적 중심이 되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전쟁과 재건을 거쳤지만, 황거는 언제나 일본 정체성의 중심으로 존재해 왔다.


황거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황거 일반 참관 투어’다. 하루 두 차례, 제한된 인원만이 정해진 동선을 따라 내부 일부 구역을 견학할 수 있다. 하지만 보안상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 더 많다. 나 역시 당일 일정이 여의치 않아 투어를 신청하지 못했고, 대신 외원과 히가시교엔을 걸으며 그 거대한 외곽의 숨결을 마주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황거의 아름다움이 화려함에서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잡한 장식도, 높이 솟은 첨탑도 없다. 돌담과 담백한 목재, 소나무 군락과 구불구불 이어진 해자,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얹힌 침묵. 그 절제된 구성 속에서 오히려 묵직한 기품이 느껴진다. 일본이 보여주는 전통의 형식은 대체로 이렇다. 과장 없이,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황거 앞 광장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도시의 소음이 희미해진다. 주변엔 조깅을 즐기는 시민들이 있고,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무언가를 존중하는 태도로 이 공간을 대한다. 자연스럽게 말수가 줄고, 걸음이 느려진다. 그건 아마 이곳이 여전히 '살아 있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황거는 유적으로 남은 장소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천황이 거주하며, 신년 인사나 국빈 접견 같은 국가의례가 진행되는 곳이다. 외견은 과묵하지만, 기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것이 일본 황실만의 독특한 생존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듯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나라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돌담 너머를 볼 수 없기에,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되는 장소. 고쿄는 한 나라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현재로 연결하려 하는지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리고 그 상징은, 화려하지 않아서 더 강력하다.




메이지 신궁, 숲 속의 신사


하라주쿠역에 내리자마자, 익숙한 도쿄의 풍경이 펼쳐진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 눈부신 상점 간판, 귓가를 때리는 전자음. 분명히 도심 한복판인데, 몇 걸음만 더 나아가 거대한 도리이(신사 입구의 문)를 지나치는 순간, 공기가 바뀐다. 갑작스레 조용하고, 서늘하고, 묵직하다. 시야를 가득 채운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고, 어디선가 흙냄새와 나무 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여기는 메이지 신궁이다. 도시의 심장부에 숨겨진 또 하나의 세계.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자연이 된 공간. 이 숲은 우연이 아니다. 1912년 메이지 천황이 서거하고, 이어 1914년 황후인 쇼켄 황태후가 세상을 떠난 후, 일본 전역에서 "그들을 기리고 싶다"는 국민적 열망이 모였다. 그 마음은 신사라는 형식으로 결정되었고, 이후 일본 전국에서 기증된 10만 그루 이상의 나무로 지금의 ‘진수의 삼림’이 조성됐다. 숲은 100년 넘게 자라며 이제는 원시림 같은 울창함을 뽐낸다. 자연을 흉내 내려했던 인공림은 어느새 진짜 숲이 되었다.


참배길은 길고 조용하다. 돌길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 있고, 사람들이 걷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 고요 속에서 문득 ‘균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이 공간은 도시와 자연, 전통과 현대, 인간과 신성함, 그 모든 것의 경계에서 정교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메이지 신궁은 단순히 제례가 이루어지는 종교시설이 아니라, 근대 일본의 국가 정체성이 처음으로 대중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황제의 권위와 국민의 감정이 만나는 지점, 그것이 이 숲이다.


본전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높고 단단한 목재 기둥, 완만한 곡선의 지붕,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녹빛으로 바랜 구리 기와. 화려함은 없지만, 눈앞의 건축물은 오히려 그 절제 속에서 더 깊은 장중함을 발산한다. 일본산 히노키(편백나무)의 나뭇결이 살아 있는 본전은 단순히 옛 양식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통을 대하는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정적이고 절제되었지만, 그 안엔 무게와 정성이 깃들어 있다.


건축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구조와 질감, 배치 방식은 충분히 사유를 이끈다. 메이지 신궁의 건물들은 숲과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 스며들어 공존한다. 하나의 구성 요소로 존재하면서도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메이지 시대가 가졌던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일본이 봉건 사회를 벗어나 근대 국가로 탈바꿈하던 격동의 시기, 메이지 천황은 국가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이 신궁은, 단순한 추모 시설을 넘어 근대 일본의 새로운 질서와 이상을 상징하는 장소가 된 셈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기도하거나, 조용히 걷거나, 혹은 그냥 멍하니 머문다. 특별한 설명 없이도 이 공간이 지닌 고유한 정적은 방문객의 자세를 바꾼다. 말이 줄고, 마음이 느려진다.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고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단지 ‘자연 속 신사’가 아니라 ‘기억과 상징이 깃든 숲’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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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수도, 하나의 시간


고쿄와 메이지 신궁. 이 두 장소는 도쿄의 서로 다른 얼굴이다. 하나는 절제와 침묵 속에 감춰진 궁궐, 다른 하나는 숲과 호흡하며 열린 시간을 품은 신사. 기능도 다르고 분위기도 정반대지만, 이 둘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같은 축 위에 놓여 있다.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 과거를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안에 살아 있게 할 것인가.


고쿄는 침묵과 통제의 미학이다. 접근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자체의 무게를 증명한다. 도쿄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철저히 자신만의 리듬을 지키는 공간. 반면 메이지 신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사람이 심고 가꾼 숲 속에서 걷고 머무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개방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근대 일본의 시작과 국민적 기억이 정중하게 깃들어 있는 장소다.


나는 황거 앞 소나무 정원을 걷다가, 메이지 신궁의 참배길에서 멈춰 서다가, 같은 생각에 닿았다. 이 두 곳은 단지 오래된 장소가 아니다. 시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공간 속에 스며들고, 사람의 자세를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걸음이 느려지고 말수가 줄며, 마음이 조용해지는 경험. 단순한 풍경 이상의 무게가 이곳엔 있다.


도쿄는 빠른 도시다. 지하철은 정확하고 거리의 흐름은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고쿄와 메이지 신궁은 그 속도에서 벗어난다. 더 느리고, 더 깊고, 더 묵직하게. 그래서 이곳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시간을 걷는 일이다. 전통이 현재 안에서 어떻게 숨 쉬는지를 몸으로 체감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은 멀어지고, 잎사귀 하나의 흔들림과 돌담의 결이 더 선명해졌다. 도쿄는 빠르지만, 그 한복판에는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기억하는 장소가, 바로 이 두 곳이었다.


이 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과거를 박물관 속에 가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거리 한가운데에 꺼내 놓는다. 황거의 해자 옆을 달리는 사람들, 신궁의 숲길을 걷는 이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전통과 현재가 나란히 존재하며,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이 두 곳을 걷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이 왜 그렇게 형식을 중요시하는지를. 그들은 공간을 통해 말하고, 침묵으로 감정을 전하며, 과거를 현재 속에 조용히 놓아둔다. 과거를 과장하지 않고도 단단하게 이어지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 모든 방식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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