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의 기억, 열도를 걷다]
신오쿠보, 한국을 닮은 거리에서 마주한 국경 없는 풍경
도쿄의 아침은 언제나 분주하다. 전철역 계단을 오르내리는 구두 소리, 오늘날 대부분의 대도시의 일상이 그렇듯, 이곳 도쿄 사람들도 목적지를 향해 망설임 없이 걷는다. 질서 정연한 행렬. 익숙하면서도 어느새 다시 낯설어진 풍경 속을 걷다 보면, 한 정거장을 건넌 순간 세상이 바뀐다. 단, 한 정거장을 왔을 뿐인데, 언어가 달라지고, 냄새가 바뀌고, 거리에선 익숙한 음악이 들려온다. 신주쿠에서 단숨에 도착한 곳, 신오쿠보(新大久保)이다.
신오쿠보. 도쿄 속의 작은 한국.
서울도 아니고, 도쿄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국경을 초월한 낯선 감각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신주쿠의 한국거리 신오쿠보이다.
한류의 골목, 그 시작은 ‘삶’이었다
신오쿠보의 시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지금은 수많은 네온사인과 한류 콘텐츠로 빛나는 거리이지만, 이곳의 뿌리는 고요하고도 처연한 역사 속에 닿아 있다.
전후 일본, 폐허가 된 도시 한복판에 남겨진 이방인들이 있었다. 조국의 분단과 전쟁이라는 상처를 안고 일본에 머물게 된 재일 한국인들. 이들은 국적도, 뿌리도 불분명한 채 살아가야 했다.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그들은 신오쿠보와 같은 도시 외곽에 하나둘씩 모여, 작은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이곳에 롯데제과의 공장이 들어섰다. 그 공장은 단지 사탕과 껌을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터전이었고, 희망의 불씨였다. 공장 주변으로는 한인 가게들이 생기고, 언어와 음식, 옷차림과 인사말까지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느리게, 그러나 꾸준하게 '한국'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신오쿠보는 그저 힘겨운 삶을 꾸려가는 공간이었다. 비좁은 골목을 따라 김치 냄새가 은근히 퍼지고, 담벼락 너머에서는 한국말로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본 사회의 그림자에 가려진 작은 세계,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그러던 중, 2000년대를 전후해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한류. 겨울연가의 배용준, 드라마 ‘대장금’의 이영애가 일본의 브라운관을 장악하던 그 시기, 신오쿠보도 함께 깨어났다. 그전까지 ‘한국인들의 거리’였던 이곳은 ‘한국을 경험하고 싶은 일본인들의 거리’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김치찌개를 먹기 위해, 한글 간판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그리고 K-POP 스타의 포스터를 사기 위해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 골목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본 이 골목의 본질은 여전히 ‘삶’이었다. 단지 소비되고 소비되는 유행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장소. 한류는 그 위에 피어난 꽃 같은 것이었다. 일본 속 한국 문화는 그렇게 힘겨웠던 삶을 지켜왔던 이 거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났다. 억압된 공간 위에서도,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끝내 피어나고야 마는 것. 신오쿠보의 한류는 곧 삶이 문화를 품어내는 방식에 대한 증명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곳은 수많은 방문객으로 북적이지만, 그 시작점에 서 있던 사람들의 그림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한국거리를 걸어 보았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지켜온 한국인의 정체성이 있었기에 한류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본 신오쿠보는 단지 한류의 메카가 아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주류사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거리이고,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골목이었다.
골목은 한국을 닮았고, 리듬은 한국어로 흐른다
신오쿠보역 개찰구를 나서는 순간, 나는 익숙한 이방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본 도쿄, 그 중심부라 하기엔 지나치게 낯익은 언어가 거리 위를 장악하고 있다. “연탄불고기”, “수미네밥상”, “명동김밥”, “시장닭갈비”, “치킨타운”, “장터”, “행정서사” 그리고 “원룸”…
이름만 들어도 서울의 어느 동네 골목 어귀를 떠올리게 하는 상호들이 일본 도심의 공기를 베고 있다. 하지만 이 간판들은 억지로 ‘이식’된 풍경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시간 속에서 스며든 힘겨웠던 삶의 흔적들이다.
건물 벽면에 붙은 케이팝 아이돌의 브로마이드, 골목을 가득 메운 치즈핫도그 냄새, 가게 안에서 종일 흘러나오는 한국 대중음악.
내가 본 신오쿠보는 관광지라기보다는 일종의 ‘감각의 확장지대’였다. 언어는 시각을 사로잡고, 음식은 후각을 자극하며, 음악은 청각을 장악한다. 눈으로 읽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리. 삼겹살이 불판 위에서 ‘치이익’하고 소리를 내면,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이고, 지글지글 익는 닭갈비 소리에 발걸음이 멈춘다. 소주병이 부딪히는 소리, 가게 밖까지 들려오는 주문의 목소리,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 대화 속 한국어까지, 모든 게 이국적이면서도 매우 익숙하다.
나는 순간, 여기가 서울인지 도쿄인지, 경계가 흐릿해졌다. 전혀 한국이 아닌 땅에서 너무도 선명하게 한국을 만나는 기이한 경험이었다. 이 거리는 단지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 체계다. 도쿄 한복판에 숨겨진 한국의 리듬, 그 리듬이 삶처럼 거리를 채우고 있다.
여행자나 일본의 젊은이들이나, 이 골목을 걷는 건 단지 맛집을 탐방하거나, K-POP 굿즈를 사기 위한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무언가 더 깊은 감정,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일본이라는 공간 안에서 얼마나 유연하게 흐르고 스며들 수 있는지를 목격하는 일이다.
경계를 넘은 문화는 국적을 묻지 않는다. 신오쿠보의 거리는 그 증거다. 서울의 에너지가 도쿄의 구조 안에 녹아드는 방식. 그 결과, 탄생한 풍경은 단순히 ‘한국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도시적 정체성이고 또 다른 형태의 문화의 편린으로 다가왔다.
한식은 일상이고, 고기는 공용어다
이곳 신오쿠보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음식’이다. 음식은 말보다 빠르게 문화를 전달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입안 가득 퍼지는 양념의 맛은 정체성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 한 입에,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쌈’의 테이블에 정갈하게 놓인 삼겹살과 쌈채소 앞에서, 일본인 손님들이 능숙하게 고기를 굽고 쌈을 싸는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어색함이 사라진 대신, ‘익숙함’이 자리를 잡았다.
‘카야치킨’에서 나오는 매콤한 양념치킨 냄새는 저녁 시간 무렵 거리를 유혹하고, ‘금돼지 솥뚜껑 삼겹살’의 뜨거운 철판 위에선 기름방울이 춤을 추고 있다. ‘MIYA 철판 삼겹살’의 매장에서는 조리하는 직원의 움직임조차 공연처럼 정제되어 있다. 이제 한식은 일본에서 더 이상 이국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그들은 김치를 곁들인 삼겹살을 ‘한 끼’로 받아들이고, 떡볶이를 친구들과의 간식으로 즐긴다. 더 이상 ‘문화적 수입품’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된 것이다.
신오쿠보의 거리 곳곳엔 분식집과 디저트카페, 한류 굿즈를 파는 상점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경주에서 시작된 ‘10원 빵’은 이제 오사카 도톤보리 거리에서도, 신오쿠보의 골목 안에서도 일본 젊은이들의 손에 들려 있다. 트와이스와 뉴진스의 포토카드, ‘한방 마스크팩’이 가득한 드러그스토어, 케이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바르던 립틴트를 찾는 일본 여성들. 이 모든 장면은 단지 소비를 넘어, 한국이라는 감정의 풍경에 닿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나는 오사카를 여행하면서도 비슷한 풍경을 보았다. 신사이바시에서, 도톤보리에서, 줄지어 선 푸드트럭 앞에 서 있는 젊은이들의 손엔 떡볶이 컵이 들려 있었고, 한국에서 갓 수입된 노래가 일본어 해석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과거 내가 고등학생 시절, ‘설국’의 정적이 감도는 눈 덮인 료칸 골목이나, ‘하코네에서 온 편지’의 잔잔한 호수 풍경을 통해 상상하던 일본은 분명 지금의 오사카와 도쿄의 한류 열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이제 일본의 거리는 달라졌다. 보다 역동적이고, 보다 혼합적이며, 무엇보다 국경을 넘어선 감정들이 스며들어 있다. 신오쿠보가 보여주는 건 단순한 음식의 인기나 트렌드가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로 한국 문화가 스며들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음식이 있었다.
밥 한 끼를 함께 먹는다는 건, 결국 마음을 나누는 일이다. 언어가 다르고 국적이 달라도, 불판 위 고기를 함께 굽는 순간, 대화는 자연스레 시작된다. 이 거리에서 고기는 그렇게 공용어가 된다.
기억의 일본, 변한 일본
나는 학창 시절 문고본 책장을 넘기며 ‘설국’과 ‘하코네에서 온 편지’를 읽은 후, 자연스럽게 일본에 관심을 갖고 일본에 관한 책을 꽤 여러 권을 읽은 편이다. 유키오 미시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에서 그려진 일본은 어딘가 서늘하고, 간결하며,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나라였다. 사람들은 조용했고, 거리에는 단정한 정적이 흐르며,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상상했던 일본은 무채색의 정원 같았다. 日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며 할복했던 미시마의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마주한 일본은 전혀 다른 풍경이다.
도쿄 한복판, 신오쿠보 거리 위에선 삼겹살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K-POP의 리듬이 거리를 춤추게 만들고 있다. 한글로 병기된 각종 안내판과 전철역 승차권 발매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리듬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오쿠보는 더 이상 이방이 아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거리의 ‘경계 없음’이었다.
이곳에서 한국과 일본은 구분되지 않는다. 언어는 섞이고, 음악은 함께 흘러가며, 음식은 공유된다. 신오쿠보는 더 이상 단순한 한인타운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이 감정적으로 가장 가까이 닿는 곳, 그 교차점이자 소통의 무대다.
정치적 뉴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류’라는 문화의 힘이, 이 좁은 골목 안에서는 명확히 보인다. 누구는 떡볶이를 먹고, 누구는 K-POP 굿즈를 사고, 누구는 김밥을 싸들고 공원으로 향한다. 모두의 목적은 다르지만, 신오쿠보라는 공간이 허용한 감정은 하나다.
"우리는 다르지만, 함께 즐길 수 있다."
서울도, 도쿄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거리 끝에서 다시 신오쿠보역을 향해 돌아오는 길.
가게 간판 하나하나를 다시 훑어본다. 지나치는 대화 속에 한국어가 묻어나고, 편의점엔 삼각김밥과 불닭볶음면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도쿄 안에 서울이, 서울 안에 도쿄가 스며든다. 이곳은 서울도, 도쿄도 아니다. 국경 대신 음악과 언어와 음식이 흐르는 거리. 신오쿠보는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새로운 도시 감각의 풍경이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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