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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May 17. 2024

민속춤 할라이와 카파도키아 벨리댄스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문명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벨리댄스

튀르키예 여행기 -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문명 종교의식에서 비롯된 카파도키아 벨리댄스 Belly Dance 공연


그는 춤 공연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 중 방문한 나라나 지역의 민속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라 여겼다. 안동여행 중 보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스페인에서 보았던 플라멩코가 그랬고 중국의 가무단 공연과 소수민족의 민속무용 등이 그랬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춤 공연이 음악과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춤보다는 춤과 함께 연주되는 음악에 더 깊은 관심을 가졌고 끌리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민속 공연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창과 같은 것이었다. 춤과 함께 연주되는 음악을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의 감정의 언어를 느낄 수 있었다. 춤은 그의 눈을 사로잡았지만, 그의 영혼을 울리는 것은 감정의 언어, 음악이었다. 음악은 춤의 율동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고, 춤은 감정의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표현했다.


춤 공연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닌 그가 민속춤이나 가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음악을 공부하며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種族音樂과 文化(이강숙編 民音社, 1982)’라는 도서는 서양음악의 범주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음악적 요소와 민족적 색채가 가득한 음악에 마음이 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외국을 여행하며 접할 수 있는 민속춤이나 음악은 전문가에 의한 깊이 있는 공연이 아니었기 때문에 분명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종족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동기부여는 충분히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며 접했던 파두(fado)는 특별히 기억되는 인상적인 음악이었고, 집시들의 플라멩코 공연은 꽤나 강렬했던 감정의 언어를 느낄 수 있었으며, 중국이나 아시아지역 소수민족 무용에 동반되는 끊임없이 반복적인 단조로운 선율이나 리듬은 다분히 주술적인 느낌이 강했던 음악이었다.  


음악은 인류 역사상 언제, 왜? 발생되고 어떻게 발달되어 왔는지 명확하지 않다. 종족음악학 Ethnomusicology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만한 일관되고 통일된 정의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음악은 인류문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문자가 없던 기원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음악의 기원설 중 음악이 갖고 있는 주술적 의미는 매우 설득력 있는 설 중 하나이다. 고대 음악은 종교적인 제례(祭禮) 의식과 결합된 형태나 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확인된 사실이다. 실제로 고대의 악기 또는 회화, 조각 등에서 비교적 고대 음악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종족 음악이 한 민족의 삶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춤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춤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지만, 춤에는 음악, 문학, 문화, 미술, 종교 등 한 민족의 삶의 언어가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여행 중 접하게 되는 춤이나 민속공연 등을 뾰족하게 날을 세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치사르의 'Halayhan Kaya Restaurant'로 향했다. 오늘 밤, 이곳에서 펼쳐질 벨리댄스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여행 중 전문적인 예술가들의 공연을 보기는 쉽지 않다. 오늘 공연 또한 일반적인 여흥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큰 기대 없이 공연장으로 향했다.


우치사르로 이동하며 보았던 카파도키아 야경은 낮의 풍경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은은하게 밝힌 불빛과 붉은 조명이 동굴을 이용한 호텔과 식당 등 카파도키아 특유의 기암 사면으로 비추어졌다. 단순히 ‘이국적이었다’라고 표현하기엔 차원이 다른 풍경이었다.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유독 녹색 조명으로 밝혀진 이슬람 모스크의 첨탑이 아니라면 지구상의 마을이 아니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곤 사실 꿈에도 몰랐었다. 사진과 지인들의 후일담으로 보고 듣는 간접적인 경험으론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이곳에 와 보고서야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 파노라마의 야경은 마치 SF영화에 나올 법한 외계행성에 온 느낌 같은, 별유천지(別有天地)였다. 


그렇게 별이 총총하게 뜬 것 같은 별유천지 야경을 보며 우치사르 마을에 외곽에 있는 ‘Halayhan Kaya Restaurant’에 당도했다. 동굴 입구 위 언덕에 세워 놓은 입간판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낯선 단어 ‘Halayhan’이 눈에 들어왔다. 낯설고 생소한 ‘Halay’와 익숙한 ‘Han’과 합쳐진 단어였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검색해 보았다. Halayhan은 ‘민속춤 공연을 하는 큰 공연장’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카파도키아엔 동굴호텔(Kaya Otel)과 동굴식당(Kaya Restaurant), 동굴 캠핑장(Kaya Camping)처럼 kaya(암석)를 붙인 상호들이 많았다. 결국 ‘Halayhan Kaya Restaurant’는 민속춤 공연을 볼 수 있는 동굴 레스토랑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어지간하지 싶었다. 


도로변 나지막한 언덕에 있던 동굴 입구는 허름한 처마를 달아냈을 뿐 일반적인 식당 출입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심하게 말하면 초라한 까마귀 둥지 같았다. 이런 곳에서 뭔 공연을 할까 싶을 정도로 초라해 보였고 어색했다. 이곳이 공연장 입구라니? 도로변에 바투 붙어 있는 언덕에 동굴을 뚫고 공연을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꾸린 듯했다. 그래도 벨리댄스를 공연하는 곳인데, 공연장치곤 너무 허술하게 느껴졌다. 도로와 인접해 있는 동굴 출입구도 협소했다. 언덕 사면에 덧댄 손바닥 만한 처마가 전부인 보잘것없어 보이는 입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동굴 내부는 예상과는 달리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다. 까마귀 둥지 치고는 상당히 넓었다. 굴을 팔 때 생긴 우둘투둘하게 패인 흔적에 붉은 조명이 비추어 제법 운치 있는 동굴 내부는 또 다른 별유천지 같았다. 동굴 입구를 통하여 동굴 내부로 들어섰다. 잔망스러운 젬베의 경쾌한 리듬과 함께 자지러질 듯 동굴 안을 가득 메우는 클라리넷의 기교적인 선율이 공연도 보기 전에 여행자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붉은 천으로 덮여 있는 테이블엔 에페스(Efes) 맥주, 터키 전통 증류주 라키(Raki,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인 Tekel이 생산한 yeni Raki), Meysu 오렌지 주스, 탄산음료 등이 미리 세팅이 되어 있었다. 땅콩 같은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동굴 내부를 둘러보았다. Halayhan Kaya Restaurant의 동굴 내부 공연장은 마치 신비로운 동화 속 세계 같았다. 겉보기와 달리 넓고 웅장했던 내부 공간은 어두웠지만 동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으며, 은은하고 따뜻한 조명과 촛불 같은 불빛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동굴 내부의 거친 벽면엔 히타이트, 페르시아, 로마 등 아나톨리아 지역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명의 상징들이 새겨져 있었다. 히타이트 문명을 소재로 한 전차, 동물을 부리며 밭갈이를 하는 아나톨리아 고대인의 농경 생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존재 등 다양한 고대문명의 이야기가 부조로 새겨져 있었고 이렇다 할 다른 장식은 없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곡식을 빻거나 찧을 때 사용하는 둥글고 커다란 절구통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모습을 새긴 부조였다. 그가 어렸을 때 보았던 나무 절구통과 너무나도 닮은 절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식량 가공이나 음식 제조에 중요한 도구였던 절구는 농경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도구이지만, 이곳 부조에서 나무절구의 모습을 보리라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별다른 건축 자재가 덧붙여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동굴 내부 천장과 거친 암석 벽면은 카파도키아 특유의 자연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암석을 깎아내고 파내어 만든 레스토랑엔 이미 100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https://youtu.be/OZdNBIC2YL8?si=qsDZH9-e9ztvdUZr

이윽고 관람석의 대부분 조명이 꺼졌다. 동굴 내부는 은은한 붉은 조명만 남았고 중앙 홀 무대를 구분하는 바닥 LED조명이 들어왔다. 무대에 소품이 놓이고 젬베와 클라리넷 연주가 더욱 흥을 돋우고 있었다. 남자 무용수 한 명이 무대로 올라와 박수를 치며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였고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10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횃불을 밝히며 무대로 올랐다. 자지러질듯했던 음악은 무용수들의 입장과 함께 다소 반복적인 리듬과 선율로 바뀌었다. 


벨리댄스 공연에 앞서 민속춤 공연이 먼저 시작됐다. 경쾌한 스텝을 밟아가며 서로 짝을 이루기도 하고 손을 맞잡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무대를 돌다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민속춤 공연이 이어졌다. 붉은색, 노란색, 흰색 수건을 손에 든 무용수들의 율동이 조금씩 빨라지고 음악 또한 빠르고 경쾌하게 바뀌어 갔다. 약 8분간 이어진 첫 번째 공연은 경쾌한 춤사위로 시각적, 청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했다.  


https://youtu.be/DFDQwQCY-90?si=VPL2DwJMbjT3kc8P

두 번째 공연은 아라비안 풍의 클라리넷 선율로 시작되었다. 마치 뜨거운 사막에서 신기루가 피어오르는 듯한 선율이 동굴 구석구석을 핥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인의 개미허리 같이 하늘거리던 클라리넷 카덴자(cadenza)가 끝나가며 젤베를 연주하던 고수(鼓手)의 리드미컬한 다블(Davul, 가죽이 씌워진 양쪽 면에서 저음과 고음의 서로 다른 소리가 생성되는 양방향 북) 연주가 이어지고 촛불과 선물꾸러미 등 소품을 들고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여자 무용수 중 한 명은 초승달과 별이 수 놓인 붉은 면사포를 쓰고 무대에 올랐다. 뭔가 스토리가 있는 무용극이지 싶었다. 


키가 훤칠한 남자 무용수와 대조적으로 작고 통통한 남자 무용수가 면사포를 쓴 무용수 뒤에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춤을 추며 무대를 돌았다. 붉은 면사포를 쓴 신부 뒤에 두 명의 여자 무용수와 남자 무용수들은 신랑 신부의 들러리 인 듯했다. 해설 없이도 춤으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공연이었다. 붉은 면사포를 쓴 신부는 신랑의 청혼을 거절하는 듯했지만, 마을 처녀와 총각들의 춤은 그들의 흥겨운 청혼 이야기를 계속해서 속삭이며 이어갔다. 신랑에게 힘이 최고라며 양팔을 불끈 들어 올리기도 했고 목걸이를 건네주며 선물이 좋겠다는 코치를 하는 등 다양한 춤사위는 신부의 마음을 하나하나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거절했던 신부였지만, 마침내 무릎을 꿇고 가슴 두근거리는 사랑을 고백하는 총각의 열정에 감동하여 청혼을 받아들였다. 마을 처녀와 총각들의 흥겨운 청혼 이야기를 민속춤으로 재밌게 구현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던 공연은 무용수들이 각자 관람석에서 남녀 관객을 무대로 이끌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갔다. 서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춤 형태는 우리네 강강술래와 유사한 점이 있는 춤이었다. 여자 관객 중 한 명이 신부 역할을 하고 남자 관객 한 명은 신랑 역할을 하며 조금 전 공연했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 유쾌한 놀이처럼 이어졌다. 관객이 따라 하는 어눌한 춤동작은 폭소를 자아냈고 동굴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공연이었지만 나름 내용도 있고 유쾌한 시간이 된 민속춤 공연이었다. 


두 번째 공연까지 보고 나니 할레이란 튀르키예 민속춤이 궁금해졌다. 튀르키예어 사전에 따르면, 할라이(Halay)는 ‘아나톨리아의 여러 지역에서 북과 주르나(zurna)와 함께 집단적으로 연주되는 민속춤’, ‘터키 동부, 남동부 지역에서 추는 쿠르드인들의 전통 춤’이라 설명하고 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Halay’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32년 Hamit Zübeyr Koşay와 İshak Işıtman의 ‘Anadilden Compiles’라는 책에 남아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할라이는 중앙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주르나(zurna)와 북 앞에서 손을 잡고 하는 놀이"로 묘사되어 있다.


주르나(zurna)는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코카서스, 남동부 유럽 및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연주되는 이중 리드 관악기이고, 다불(Davul)은 헤드 스틱 등 여러 형태의 스틱으로 고음과 저음 등 다양한 소리를 내는 타악기로 중동과 발칸반도 지역의 민속음악에서 자주 사용되는 악기다. 


할라이는 주르나와 다불로 연주되는 음악 반주에 맞추어 ‘암탉 파티’ 등 일정한 스토리를 춤으로 엮어내는 민속무용이다. 오늘날엔 주르나 대신 클라리넷이 사용되기도 하고 젬베(djembe)와 같은 여러 종류의 타악기가 함께 연주되기도 한다. 공연장에 따라 전자악기도 사용되고 있는 추세다.


때아닌 할라이 검색에서 빠져나와 함께한 친구들과 맥주를 한 잔 하며 다음 공연을 기다렸다. 와인도 한 병 주문해 마셔가며 느긋하게 공연을 즐겨 보기로 했다.


세 번째 공연이 시작되었다. 여덟 명의 남녀 무용수들이 화려한 색상과 무늬가 새겨진 의상을 입고 무대로 올라왔다. 남자 무용수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흰색 양말까지 신었다. 튀르키예 전통의상인 듯했다. 여자 무용수들은 조금만 물 항아리를 하나씩 머리에 이고 등장했다. 아바노스 토기가 떠오른 민속춤이었다. 물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뼉을 쳐가며 빠른 리듬의 음악에 맞춰 남녀가 짝을 지어 추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춤동작이 이어졌다. 뒷짐을 지고 무릎을 접었다 펴며 반복적인 스텝이 특징적이었다. 남자 무용수들의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물동이를 머리에 인 여자 무용수들이 물동이를 남자 무용수에게 건네주었고, 남자 무용수들은 건네받은 물 항아리를 쏟아부어가며 목을 축이는 동작을 연출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은 생명이었고 생명을 담을 수 있는 물 항아리는 소품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보였다. 인류 문명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 생명과 풍요, 다산이다. 무용수들이 춤을 추며 들기도 하고 머리에 이기도 하는 항아리는 생명의 상징이었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양손을 허리춤에 두고 무릎을 접었다 펴는 유연한 스텝과 발바닥을 끌 듯 물 흐르듯 이동하는 동작, 손을 맞잡고 군무로 이어지는 춤사위, 팔짱을 끼고 어깨를 서로 맞대는 동작은 할라이 민속춤의 대체적인 유형인 듯했다.


https://youtu.be/9sl6HN1CbnM?si=XAA1cpjCF8Kqz0DZ

잠시 휴식시간을 두고 네 번째 공연이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공연과는 조금 다른 색깔의 가벼운 공연이었다. 고수의 타악기는 다시 젬베로 바뀌었고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남자 무용수들의 의상은 검은 조끼와 바지에 붉은색 띠를 두른 차림이었다. 여자 무용수들은 알록달록 반짝거리는 주름치마와 소매가 넓은 원피스로 바뀌었다. 경쾌하고 유쾌한 춤이 이어졌다. 현란한 무용수들의 스텝이 특징적이었고 어깨와 엉덩이를 다소 역동적으로 흔들며 추는 요즘 춤에 가까운 춤이었다. 남녀가 짝을 이룬 무용수들은 어깨를 구부리고 몸을 비틀며 파트너와 함께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한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네 번째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화려하고 역동적인 민속춤은 오랜 세월 인류가 쌓아온 경험과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저들이 추는 춤 어딘가에 아나톨리아 땅에서 부흥하고 사라져 갔던 히타이트, 프리지안, 페르시아, 로마, 오스만 등 여러 민족과 제국의 그림자가 남아있는 듯했다. 


과연 민속춤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문화유산일까? ‘어쩌면 민속춤은 인류가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하고 소중한 유산 중 하나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유산이란 단순히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물건이나 사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인류의 지혜와 경험을 흡수하여 더욱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민속춤 또한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조금씩 변형되고 발전하며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왔다.


현대무용과 오늘날 흥행하는 대중적인 춤의 뿌리를 찾아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민속춤의 흔적이 존재한다. 민속춤은 단순한 춤이 아닌,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정서를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땅속에 묻힌 고대 유물처럼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인 것이다.


민속춤은 단순히 몸짓과 동작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민족 음악과 전통 의상, 그리고 극적인 요소까지 결합되어 있다. 민속춤을 통해 우리는 과거 인류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 민속춤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우리에게 소중한 정체성을 제공하는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속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에게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 그것은 단순히 오래된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의 일부이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승되고 보존되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https://youtu.be/o2niuFiHimE?si=lqpIuPcG-oJIkFKw

네 번째 무대를 마지막으로 민속춤 공연이 모두 끝났다. 잠시 음악이 멈췄고 무대 조명이 더욱 어두워졌다. 


Dr. Samy Farag가 작곡한 음악 ‘Gawaher’가 흘러나오며 화려한 의상의 벨리댄서가 무대로 입장하며 본격적으로 벨리댄스 공연이 시작되었다. 흰색 공단(貢緞, satin) 천으로 온몸을 가리고 무대로 들어온 벨리댄서의 망토의상이 조명에 따라 색깔이 바뀌었다. 막대로 연결된 망토가 허공을 가르며 나풀거렸고 뱅글뱅글 돌아가는 무용수의 몸짓에 따라 나비도 되었다 사막의 꽃처럼 피어나기도 하는 첫 번째 무대가 시작되었다.  


Dr. Samy Farag는 El Ghazal, Negma, Rakasni Ya Habibi, Queen Sekhmet 등 수많은 벨리댄스곡을 발표하였고 2023년까지 11개의 Cairo night라는 앨범을 발매한 이집트 출신의 작곡가이다. 가와헤르(جواهر, Gawaher)는 2000년에 발표한 앨범 Midnight Magic(Hollywood Music Center)에 타이틀 곡으로 수록된 벨리댄스 음악인데, 가와헤르는 수단에서 태어나 이집트의 남부도시 아스완 호텔에서 가수 겸 벨리댄서로 공연했던 카이로 가수이자 작곡가다. (출처: 위키백과 https://en.wikipedia.org/wiki/Gawaher )  


두 번째 무대는 Festival Darbuka(Arabian Belly Dance)라는 타악기 연주에 맞춰 벨리댄스의 기교를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엉덩이와 골반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벨리댄스 특유의 업 앤 다운의 기교적인 동작과 허리를 흔들며 스텝을 바꿔가는 공연이 이어졌다. 얇은 베일 같은 망토가 나풀거리며 매혹적인 그녀의 곡선이 드러나며 관능적인 기교가 펼쳐졌다. 강렬한 태양아래 뜨겁게 피어나는 사막의 꽃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곧게 뻗은 팔과 부드럽게 굴리는 허리, 상하체가 따로따로 움직이며 섬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는 아름다운 시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따로 놀고 있는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은 신기를 넘어 신비롭게 느껴졌다. 마치 신화 속 여신이 춤을 추는 모습 같았다. 그녀의 기교에 관객들의 간헐적인 환호성이 자연스레 터져 나왔고 이내 숨 죽이며 그녀의 몸짓과 관능적인 기교에 매료되었다. 사막의 모래바람에 실려 온 신기루 같은 황홀한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어깨와 상체, 엉덩이와 골반을 흔들다 임팩트 있게 끊어주는 반복적인 동작과 골반과 엉덩이를 한참 흔들며 짧은 스텝으로 미끄러지듯 무대를 오가는 기교였다. 섬세하고 우아함이 조화를 이루는 그녀의 두 번째 무대는 뜨거운 태양 아래 피어나는 사막의 꽃이었다.


튀르키예에선(Oryantal dans)라 부르는 벨리댄스는 튀르키예, 이집트, 중동지역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엔 벨리댄스와 비슷한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고대사회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다산이었다. 여성의 다산은 그 사회와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었던 시대이다. 따라서 고대사회의 여러 집단과 나라에선 다산을 기원하는 종교적 의식이 상당히 많이 내재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과거 고대사회의 미인의 기준은 오늘날의 미의 기준과 전혀 다른, 다산에 기준을 두었던 것 같다. 벨리댄스는 바로 이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문명의 종교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오스만 제국 시기에 신을 유혹할 듯 상당히 관능적인 춤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미의 기준도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면서 현대사회 여성의 아름다움은 다산성보다는 관능적인 몸매와 볼륨감에 미의 기준을 두고 있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벨리댄서들의 몸매는 여전히 조금은 통통하고 다산형으로 보이는 체격의 댄서가 많은 편이다. 춤 자체가 배꼽과 엉덩이, 골반과 가슴, 배, 허리 등을 따로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동작들을 보여줘야 하는 춤이기에 의상도 신체 대부분을 과감하게 노출하여야 하는 의상이다. 


주로 이슬람 세계인 중동지역에서 발전한 벨리댄스는 18~19세기경 서구사회에 유행하던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의 영향으로 유럽을 비롯한 서구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만국 박람회에서 공연되면서 점차 서양에 널리 알려진 춤이다.


세 번째 무대는 Arabi(Yasar Akpence) 음악이 흘러나오며 관람석에서 네 명의 남성 관객을 이끌어내 무대에 세워 벨리댄스의 특징적인 동작을 보여주며 따라 하는 벨리댄스 참여형 무대였다. 


관객 참여형 무대는 ‘Rayheen NesshR- Bum Bum’ 이란 타악기로 연주되는 경쾌한 리듬에 맞춰 공연되는 관객 참여형 무대는 화려한 벨리댄스 동작으로 가득했다. 양팔을 잔물결처럼 흔드는 동작, 어깨와 가슴을 우아하게 흔드는 동작, 지팡이를 머리에 고정하고 엉덩이와 가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동작, 지팡이를 가슴에 올려놓고 엉덩이를 유연하게 흔드는 모습, 지팡이를 옆구리에 얹고 손을 흔들며 한 바퀴를 도는 모습, 지팡이를 엉덩이 위에 얹고 양팔을 수평으로 움직이는 모습, 손을 허공으로 길게 뻗으며 몸을 한껏 펼치다가 갑자기 주저앉아 엉덩이를 동적으로 흔들고 뒤로 눕는 동작 등 다채로운 벨리댄스 동작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이 공연에 참여한 불려 나온 남자들은 이 독특한 동작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관객들은 그들의 어눌하고 유쾌한 따라 하기 동작에 환호와 웃음소리로 응답했다. 이러한 관객의 참여와 열띤 반응으로 인해 공연은 생동감 넘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 되었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특별한 카파도키아의 밤이 되었다. 


마지막 무대에서는 Hossam Hosny의 'Yalla Beena' 음악으로 화려한 벨리댄스 춤동작을 선보이며 공연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아름다운 춤으로 관객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고 무대를 빠져나갔다.


카파도키아의 벨리댄스는 이 지역 지형을 살려 동굴을 파서 지은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응회암 암석을 파고 깎아 멋진 벨리댄스 공연장으로 꾸민 것이다. 이네들은 이런 식으로 주택과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 필요한 시설들을 만들고 카파도키아에서만 볼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사람들이 와서 주머니를 열도록 훌륭한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 덕에 지금 이곳, 카파도키아 동굴공연장에서 관능적인 몸매를 드러내고 절묘하게 제각각 움직이는 댄서의 기기묘묘한 동작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공연, 벨리댄스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공연이니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이지 싶다. 같은 이유에서 사진보다는 동영상을 게재한다.  

@thebcstory


#벨리댄스 #카파도키아 #튀르키예 #터키여행 #이집트 #우치사르 #민속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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