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와 불안의 입자들

2025년 2월 17일

by 양동생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바깥공기가 뿌옇다. 눈앞의 풍경이 희미하게 번진다. 공기가 나쁘다는 걸 뺨을 스치는 감각만으로도 알 수 있다. 상쾌함 대신 묵직한 기운이 가라앉아 있다. 미세먼지다. 이런 날은 숨을 쉬는 것조차 어쩐지 피곤하게 느껴진다.


이런 날이면 누나가 떠오른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거울을 보며 마스크를 단단히 썼으면 좋겠지만, 아마 그냥 현관문을 나서겠지. 누나는 마스크를 싫어할 것 같다. 나는 그런 누나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공기를 걱정하며 살아간다는 건 꽤 피곤한 일이라고.


미세먼지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한다. 마치 우리의 불안이나 고민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피부에 닿고, 호흡에 스며들고, 차곡차곡 우리 안에 쌓인다. 처음에는 가벼운 불편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영향을 미친다. 한 번의 깊은숨이 당장 우리를 바꾸지는 않지만, 날숨과 들숨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것처럼.


사람들은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공기청정기를 돌리고, 창문을 닫는다. 하지만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관계도, 감정도, 기억도 그렇다. 멀리한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비가 내리면 먼지는 씻겨 나가고, 바람이 불면 공기는 다시 투명해진다. 그러면 한순간 안도하며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다시 뿌연 하늘이 찾아오고, 나는 마스크를 챙기고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점검하며 살아간다. 마치 불안과 걱정이 사라졌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 내일도 누나를 걱정하며 창문을 열 것이다. 바깥공기가 여전히 뿌옇다면, "그래도 바람은 분다고, 어딘가에서 더 맑은 공기를 끌고 올지도 모른다"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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