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와 나들이를 가고 싶은 이유

2025년 2월 28일

by 양동생

원래 오늘, 나는 누나와 함께 나들이를 가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들이를 ‘가고 말 것이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었다. 미세먼지 앱을 들여다보고, 괜히 날씨를 점쳤다. 다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3월 28일에 가자는 이야기만 나왔을 뿐 역시 갈 수 없었다. 누나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런 흐름이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잘 짜인 듯 보이다가도, 작은 돌 하나에 신념이 휘청이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때로 어떤 일은 미뤄졌을 때 더 정확한 이유를 갖게 된다. 이번 나들이가 그랬다. 나는 왜 누나와 함께 어딘가를 걷고 싶었던 걸까? 단지 바람을 쐬기 위해서였을까? 겨우내 움츠린 몸을 펴기 위해서? 아니었다. 아마도 나는 우리 둘 사이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다시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을.


곽세라의 책에서 읽은 문장이 생각난다. “정말 마지막 순간이 오면, 마음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려 들지 않는다. 대신 추억 속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어 하고 내가 알던 이들을 한 번 더 보고파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누나와 함께 걸으려 했던 그 길은 ‘처음 가보는 곳’이 아니라,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는 걸.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앙코르 리스트 말이다.


사람들은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자주 말한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 미처 경험하지 못한 것들, 이루지 못한 꿈들. 그래서 번지점프를 하고, 피라미드를 보며, 세상의 끝까지 달려가려고 한다. 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되면, 그토록 애타게 바라던 미래는 손끝에서 미끄러지고, 우리는 오히려 지나간 시간 속 따뜻한 기억을 더듬는다.


누나의 웃음 소리, 여름날 함께 떠났던 양주 한센인 마을, 저녁 무렵 느닷없이 찾아온 누나와의 술자리 같은 것들. 그것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해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삶을 지탱하는 것임을, 인간은 아주 늦게야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누나와의 나들이를 기다린다. 3월이라는 시간은 단지 미뤄진 날짜가 아니다. 그건 하나의 기억이 탄생할 준비를 마친 시기다. 우리는 함께 걷고, 간식을 나눠 먹고, 아무 말 없이 길가의 풍경을 바라볼 것이다. 그러고 나서 십 년쯤 후에, 어느 쓸쓸한 오후에, 나는 그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아, 그때 누나랑 적당히 좋았지, 하고.


사람은 그런 식으로 산다. 의미 있는 과거를 위해 현재를 만든다. 그러니까 나들이를 간다는 건,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다시 보고 싶은 순간 하나를 마음속에 심는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그게 내가 누나와 나들이를 가고 싶은 이유다. 걷지 못한 길이 아닌, 함께 걸었던 길을 남기기 위해서.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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