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6일
오늘은 전화로 누나와 2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다. 별것 아닌 얘기들이었다. 주로 시답잖은 이야기들. 나는 가끔 애정표현도 섞었다. “누나, 나 진짜 누나 좋아해.” 같은 말들. 누나는 받아주기도 했고, 당황해하며 넘기기도 했다. 그건 어떤 미묘한 선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종종 고요하게 흔들리는 배처럼.
누나는 원래 선을 잘 긋는 사람이다. 아주 조용하고, 아주 명확하게. 마치 투명하지만 결코 흐려지지 않는 유리벽처럼. 처음엔 그게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나한테는 다가오거나 허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누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마, 그건 아직도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덕질을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자꾸 그 선을 넘고 싶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넘은 걸지도 모른다. 적어도 예전보단 훨씬 가까워졌다. 그 2시간의 시답잖은 대화는, 누나가 나에게 허락한 시간일 테니까. 말하자면, 조심스레 열어놓은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 오후의 햇빛 같은 것.
하지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누나는 모든 동생들에게 이렇게 평등할 뿐인 걸까? 그리고 그 평등함이야말로, 나에겐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누나에게 특별하고 싶었다. 평등이라는 말은 아름답지만, 누군가를 특별하게 여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가혹하다.
나는 그런 누나의 거리 두기를, 때로는 계산된 무관심으로, 때로는 조심스러운 배려로 이해해 보려 애썼다. 그러다 생각하게 됐다. 누나에게 ‘선 긋기’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어떤 집에서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되지만, 어떤 집에서는 현관에서 벗어야 하듯이. 누나는 단지 자신의 방식으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누나의 선을 넘으려 하면서 동시에, 누나가 내 선을 넘지 않길 바랐다. 나의 서운함과 나의 애정은 늘 엇갈리는 시차 속에 있었다. 나는 누나의 작은 미소 하나에 희망을 걸었고, 무심한 말투 하나에 하루를 허물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남’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남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거리란, 그 인정 위에 세워진다. 나는 백영옥이 말한 것처럼 누나와 ‘친밀한 타인’이 되고 싶다. 내 애정이 일방통행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만약 그렇더라도, 나는 오늘처럼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계속 건넬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니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생각보다 느린 일이다. 때론 느린 이해가 더 단단하다고 믿는다. 선을 넘는 일보다, 그 선 앞에서 오래 머무는 일. 그게 어쩌면 진짜 애정 아닐까. 누나와 내가 공유하는 그 선의 온도가, 오늘은 조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