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일기를 봐준 누나

2025년 3월 8일

by 양동생

어젯밤, 몇 개의 덕질일기를 누나에게 보여줬다. 전부는 아니었다. 전부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건 말하자면 내가 아주 오랫동안 숨 쉬듯 써온 마음의 기록이고,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더 조심스러운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중에서도 비교적 수위가 낮다고 생각되는, 말하자면 덜 절절하고 덜 깊게 파인 몇 개를 고르고 골라 보여줬다.


처음엔 망설였다. 누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랐고, 사실 보여주고 나서의 내 기분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좋아하는 걸 들킨 사람처럼 민망할 수도 있었고, 무심한 반응에 며칠은 혼자 시달릴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보다 더 단단한 거리감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덕질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자기만의 세계이기도 하니까. 그걸 꺼내 보여주는 건 일종의 노출이었고, 동시에 일방적인 신뢰였다.


그런데 누나는 오늘 말했다. “내 일기가 궁금하다고”고.


나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궁금하다고, 또 어떤 글들이 있느냐고, 말끝을 올리며 웃는 그 어젯밤 전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오래 남았다.


사실 보여주기 전까지는 누나는 이걸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진지하게,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 기록을 써왔는지 알게 된다면, 누나는 그것을 부담으로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나는 끝까지 편안하게 있었다. 조금 웃기도 했고, 장난처럼 놀리기도 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반응했지만, 그 안에 미묘하게 섞인 존중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이걸 정말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이 일기를 만드느라 얼마나 진심으로 썼는지, 얼마나 많은 마음을 매일같이 꾹꾹 눌러 담아왔는지, 그걸 감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다는 태도일까.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감당해줬다는 사실이, 때론 위안이었고, 때론 물음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나가 그 일기 자체를 긍정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자기만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그 세계의 주인과도 같은 당사자에게는 더욱더. 아주 사적인 감정들이 꾹꾹 눌린 문장들을, 무방비한 상태로 누군가에게 건네는 건 그 사람을 아주 많이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누나가 그것을 읽어주었다는 것, 심지어 더 보고 싶다고 말해주었다는 것이 내겐 감동이었다. 내가 보낸 마음이 한 번쯤은 진심으로 닿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는 그런 날이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이 조금은 드러난 날. 어젯밤 내가 오래 껴안고 있던 것을 조금 열어보였고, 누나는 그걸 조용히 받아줬고, 나는 그 반응 안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여전히 헷갈리고, 여전히 조심스럽고,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지만, 오늘 나는 조금 더 누나에게 가까워졌다고 느끼고 싶어졌다.


비록 전부는 아니더라도, 덕질일기의 일부 페이지를 누군가가 읽고, 웃고, 궁금해하고, 기억해주는 일이 이렇게 애틋할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먼 미래에 전부를 건넬 수 있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나는, 이 감정의 일부를 꺼내 보여주었고, 누나는 그걸 외면하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언젠간 말하고 싶다. 좋아한다고, 좋아하고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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