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5일
나는 오늘 누나와 무서운 영화를 같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게 특별한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무서운 것을 함께 본다는 것 자체에 어쩐지 따뜻한 감정이 숨어 있는 것 같아서다. 평소라면 별것 아닌 장면에도 괜히 어깨를 움츠리게 되고, 누군가 옆에 있으면 괜찮은 척하면서도 은근히 그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누나와 함께라면, 아마 나는 영화가 무서워서라기보다 누나가 무서워하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 옆을 힐끔힐끔 볼 것 같다. 누나가 작은 숨을 삼키거나, 손끝이 떨리는 걸 보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괜히 웃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나는 누나를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무서운 영화를 본다는 건, 말하자면, 아주 가느다란 다리를 건너는 일과 비슷할 것 같다. 서로를 향해 건너가려는 것도, 그냥 멈춰 서 있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같은 긴장 속에 나란히 있는 것이다. 대단한 고백도 없고, 손을 꼭 잡지도 않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그저 나란히 앉아, 약간 빠르게 뛰는 심장을 가만히 느끼는 것. 그리고 가끔은, 스크린 속 귀신보다 옆에 있는 누나의 존재가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마다 누나는 살짝 몸을 움츠리고, 나는 그런 누나를 느끼면서 마음속 어딘가가 천천히 풀어지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아마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말이 없을 것 같다. 굳이 감상을 나누지 않아도 좋다. 무거운 공기가 조금씩 가시고, 함께 어둠을 빠져나왔다는 작은 공감만으로도 충분하다. 길을 걸을 때, 누나가 괜히 옷깃을 여미거나, 가로등 불빛 아래서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 걸 보면, 나는 생각할 것이다. 아, 역시 같이 무서운 영화를 보길 잘했다고. 이런 작은 일로도 사람은 누군가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구나, 하고.
하지만 누나는 역시 내 기대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누나는 말했다 "남자친구랑 볼 거야"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별로 놀라지도, 실망하지도 않은 척했다. 괜찮아,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누나는 나를 위해 사과하지 않았고, 나는 누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아마도,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겠지. 바라기만 하고,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 그저 그 사람이 조금 더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 일.
물론 아주 작은 파문은 마음속 어딘가에 일었다. 조용하고 느린 물결이었다. 외롭거나 슬프다기보다, 그저 깊은 우물 안에 조용히 돌 하나를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고개를 들고 누나와의 카톡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좋았다. 여전히 누나가 옆에 있는 세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 자리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일지라도.
그리고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무서운 영화를 함께 보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일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여전히 누나 옆에 있고 싶다. 영화가 끝난 뒤처럼,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처럼, 말없이, 그냥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