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치 어두운 방안.
불을 끄고 방 한가운데 우뚝 선 내 뒷모습.
무언가에 홀린 듯 손에 쥔 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xx일 xx다이아, 7시30분 출근.
06:00, 06:01, 06:05, 06:10.
06:10, 06:05, 06:01, 06:00.
여섯시영분, 여섯시일분, 여섯시오분, 여섯시십분.
여섯시십분, 여섯시오분, 여섯시일분, 여섯시영분.
06:00, 06:01, 06:05, 06:10.
여섯시영분, 여섯시일분, 여섯시오분, 여섯시십분.
알람1, 알람2, 알람3, 알람4, 온(on), 온(on), 온(on), 온(on).
소리 온(on)”
“자기야 그만해 무서워…”
다음날 출근 전에 잠에 들 때면 내가 어김없이 하는 행동이다.
그러니까 최소한 이틀에 한 번은 보이는 모습이란 소리다.
이걸 늘 듣는 아내는 내 병적인 알람 맞추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렇다 나는 ‘알람강박증’ 환자이다.
기관사의 근무는 대단히 불규칙하다.
내가 속한 부산지하철 2호선의 경우, 매일 약 50여 개의 근무가 존재하고 이마저도 평일, 토요일, 휴일에 따라 달라진다.
이 근무들을 주간근무, 야간근무, 비번, 휴무에 따라 나열하면 총 120여 개의 교번 근무가 발생하고 우리는 그 순서대로 근무에 임한다.
그러니까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들은 120여 개의 근무가 존재하는 불규칙 그 자체의 근무를 한다는 말이 된다.
그 결과 우리 기관사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알람강박증 환자가 된다. [수면장애는 덤이다]
알람강박증의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매일 다른 출근시간.
둘째, 매번 다른 승차[열차에 탑승해서 일을 시작하는]시간.
매일 다른 출근시간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던 나는 아주 유능한 알람 어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알람을 끄기 위해 사칙연산 게임을 해야 한다거나 정해진 형태의 사진을 찍는다거나 하는 퀘스트를 완수해야만 알람을 끌 수 있었다.
효과는 강력했다.
그래서 방심했다.
그 어플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했다.
새벽 출근인 날이었다.
전화 소리에 눈을 떴다.
미처 잠에서 다 깨지 못한 나는 전화 소리는 들리지만 전화가 오는 것을 자각하지는 못한 멍한 상태였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하다는 것과 왠지 모를 개운함을 느꼈다.
아주 달게 잠을 잤다는 느낌이었을까?
그 짧은 동시에 길었던 2,3초가 지나고 기분 좋던 개운함이 그대로 불길함으로 바뀌어갔다.
미친 듯이 울리는 전화벨을 그제서야 자각했다.
“니 어디고?!!”
“죄송합니다 알람을 못 들었습니다…”
분명히 알람을 맞췄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어플은 알람이 울린 내역을 확인해 볼 수 있었는데, 여러 개 맞춰둔 알람이 단 하나도 울린 기록이 없었다.
너무 분했던 나는 앱스토어에 리뷰로써 내 억울함을 풀어야만 했다.
헌데 그곳엔 나와 같은 일을 겪은 동지들이 여럿 있었다.
왠지 그걸 보고 굳이 리뷰를 남길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냥 그 어플을 지웠다.
후에 어떤 선배가 얘기해 줬다.
그런 거 쓰면 안 된다고, 폰 기본 알람을 써야 오류가 없다고.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 했던가… 알람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차[열차]를 놓치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생기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관사는 알람에 집착하게 된다.
[기관사는 근무 중에 정해진 시간, 역, 위치에서 이전에 운행하던 기관사와 교대를 해 줘야 하는데, 착각한다거나 등의 이유로 교대해 주지 못했을 때 차를 놓쳤다고 표현한다. 차를 놓치면 복잡하고 유기적인 기관사들의 근무가 아주 꼬여버린다. 차를 놓침으로 인해 원래 퇴근해야 할 기관사가 몇 시간 동안 퇴근하지 못하는 일도 가끔 있다]
사무실에 크게 붙은 표어가 기관사가 알람을 맞추어야만 하는 필수성에 대해 말해준다.
‘발차 10분전 알람 설정!!! 애꿎은 동료 기관사가 피해를 봅니다…ㅜㅜ’
해서 기관사들은 출근 후 바로 알람을 맞춰대기 시작한다. 기관사들이 알람을 맞추는 모습은 기관사들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다.
알람을 맞추는 것부터가 기관사 업무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출근하자마자 그날의 모든 근무에 대해 알람을 맞추어두는 기관사,
혹은 당장의 제일 가까운 근무에 대해 매번 알람을 맞추는 기관사,
무엇이 되었든 결국 기관사들의 알람은 수십 개가 맞추어진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기관사들의 알람 페이지는 알람으로 너덜너덜하기 마련이다.
또한 기관사들은 스마트폰의 시간 체제를 12시간제가 아닌 24시간제를 사용한다.
다들 오전 오후 알람을 잘못 맞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결국 24시간제라는 체제의 옹호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관사들의 시간은 알람으로 시작해서 알람으로 점철되어진다.
알람강박증.
출근하기 전날 다음날의 근무에 대해 알람을 맞추지 않으면 편히 잘 수가 없고, 차 놓치는 꿈 따위의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
맞춘 알람에 대해서도 수십 번을 확인해야 하며, 불안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덜해짐을 느낄 뿐이다.
근무 중에도 승차시간 10분 전에 알람을 맞추지 않으면 쉬는 시간이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에 관계없이, 1분 1초도 편히 쉴 수가 없다.
질병은 신호이다.
‘어디가 안 좋다, 이제라도 챙겨라’하고 알려주는 신호.
알람강박증도 질병이라면 마찬가지로 신호가 아닐까?
기관사로 일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던 알람강박증이라는 말.
알람에 지나치게 집착하던 내 모습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쯤 장난으로 찾아본 강박장애의 실제 증상들.
그 강박장애라는 질병의 실제 증상들을 내가 그대로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충격보다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몰랐을 뿐, 세상이 보기에 내 모습은 질병이었다.
내려놓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었고, 내려놓겠다는 마음을 먹고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집착과 강박에 대해.
근데 그러고 나니 슬픔보다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란 게 있었다면 뿌연 먼지가 그곳에 가득했는데, 갑자기 내린 소나기가 모든 먼지를 가라앉혀버린 것 같았다.
날리던 먼지가 바닥에 착 달라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 어떤 강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성공에 대한, 성적에 대한, 자식에 대한, 삶에 대한 것들부터 사소한 것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강박들이 존재할 것이다.
내 알람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보기엔 질병일 수 있다.
나는 알람이라는 강박을 내려놓고 나서야, 별일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도 내려놓아라.
그거 별거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