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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훈 Sep 19. 2023

비 오는 날의 지하철과 ‘쟈철에페’

비가 싫다! 승객들은 비를 싫어한다!

근데 그건 기관사도 마찬가지, 나도 비가 싫다!

[사실 나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비를 좋아하는 편이다. 음악으로 가득한 내 공간의 창문을 때리는 빗줄기 어딘가에 낭만이 있다고 믿는 족속이다.]


기관사는 비를 싫어한다. 사실 앙심을 품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망할 빗줄기.

기관사가 비를 싫어하는 이유는   없이 많다.

굳이, 구태여 내가  가지 뽑아보자면,

우선  오는  지하철 타러 가는 길이 싫다.

비 오는 날 지하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을 지나 퀘퀘한 비먼지 냄새가 진동하는 승강장으로 향하는 승객들의 기분이 썩 좋지 않듯, 기관사 역시 운전실이든 어디든 타러 가는 길을 공유하는 만큼 그 길이 싫다.


특히 태풍이 오는  출고[차량기지에 쉬고 있는 열차를 점검해서 본선으로 끌고 나가는 ]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참을 걸어가며 주변의 비를  끌어다 맞게 된다.

특별히 재수 없는 기관사로 통하는 나는 태풍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출고를 해야 했다.

 번은 말도  되는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오는  출고를 하게 되었다.

 말도  되었던 태풍은 비가 땅에서 하늘로 거꾸로 오는 거라고 착각이  만큼 정신 나간 바람을 동반했다.

이런 경우 사실 우산은 액세서리에 불과해진다.

의미 없는 도구를 머리 위에 얹고 가던 나는 생각했다.

이게 용도가 뭐지?’

나는 우산을 접었다.[사실 바람에 부서졌다…]


 다른 문제는 지상구간의 경우 철길에 철바퀴에 비까지 겹쳐지면,

잔뜩 젖은 철길은 빙판이 되고,

빙판 위의 열차는  순간부터 미끄러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세게 출발해도 바퀴가 헛돌며 미끄러지고,

조금만 세게 제동을 걸어도 미끄러지며 제동거리가  이상 늘어난다.

자연스럽게 정위치에 정차하는 일은 극악의 난이도를 가지게 된다.

악조건 속에서 여기저기 과주[열차가 정위치에 멈추지 못하고  가서 멈추는 ] 벌어지고, 무전에는 불이 난다.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한 상황이다.


 이게 ‘심각한상황인지를 설명해 보겠다.

과주가 일어난 상황을 상상해 보자.

과주가 일어나면 출입문 취급을   없다.

해서 퇴행운전[후진과 같은 개념] 해야 하는데, 이것은 관제의 허가를 득한 후에 해야 한다.

우선 고물똥통 무전기로 관제에 연락을 한다.

 번에 연락되면 다행이지만, 보통 이런 급박한 상황에선  번에 되질 않는다.

어떻게 관제와 연락하여 허가를 득한 후에 퇴행운전을 시작한다.

[융통성 있게 선조치를 하고 관제에 후보고를 하면 되겠지만, 그러면 기관사에게 1 위반에 1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융통성은 150만원이 필요하므로 부자기관사가 아니면 융통성을 쉽게 발휘할  없다.]

퇴행운전을 해서 정위치에 정차한  다시 출입문 취급과 안내방송을 하고, 다시 열차를 전진운전에 대한 세팅으로 바꾼  운행을 재개한다.

[열차지연으로 인한 시간적 압박은 덤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내방송이다.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열차에 있는 승객들이 불안함 혹은 불편함을 느낄  있기 때문이다.[또한 이는 민원으로 직결된다]

해서 안내방송을 계속해서 해야만 한다.

처음에 과주했을 , 퇴행운전 시작할 , 정위치에 멈추었을 , 다시 출발했을  사과방송 .

조금이라도 소홀했다간 바로 민원이 들어온다.

이 모든 걸 잘 가지도 잘 서지도 못하는 빗길의 고물 지하철을 가지고 해야 한다.


이렇듯  오는 날에는 열차가  멈추지 않기 때문에 미리부터 제동을 취급해야 하고, 늦는다면 승객들의 민원이 폭발하기에 늦지도 않아야 하며, 아무리 급하더라도 과주하지 않아야 한다.

 오는 날의 기관사는 슈퍼맨이 되어야만 한다.

해서 비 오는 날이면, 우리 지하철의 기관사들은 [절대 비가 올 수 없는]지하구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지하구간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오는  지하구간의  승강장에는 전문적 스포츠인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펜싱 선수들이다.

평소라면 닫히는 출입문에 아쉬워했을 그들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산을 가장한 펜싱용 검이 있었다. 그들의 손엔.

올림픽 펜싱 경기를 보는  같았다.

출입문이 닫힌다는 방송의 끝에 나오는 전자음이 그들에겐 펜싱경기를 시작한다는 부저음으로 들렸다.

부저음이 들린 순간 그들은 달려나갔고 닫혀가는 지하철문에 공격을 내질렀다.

문은 당연히 닫히지 못했고, 그들은  펜싱 경기에서 자신의 공격이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문이 열리길 기다린다.

단호한 그들에 의해 기관사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연다.


펜싱 종주국인 프랑스에서  오는  한국의 지하철 승강장에 온다면 놀랄 것이다.

한국의 펜싱 사랑이 대단하구나?’

해서 국제펜싱연맹 FIE에서는 올림픽,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월드컵  국제 대회를 개최할 때에,

기존의 플뢰레, 에페, 사브르 세 종목과 더불어 ‘쟈쳘에페’ 종목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올림픽 펜싱 경기와  오는 지하철 펜싱 경기의 차이점이 있다면, 관객들의 반응이다.

올림픽 펜싱 경기에선 공격 하나하나에 관객들이 환호한다.  스텝  스텝과 공격들에 그간 선수의 노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는 지하철 펜싱 경기에선 공격이 성공할 경우, 관객들이 공격에 성공한 선수를 눈을 치켜뜨고 바라본다.

선수 본인은 탔다는 사실에 기뻐하지만, 다른 승객들 수백 명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사실과 다른 승객들의 시선이 본인에게만 보이지 않는 듯하다. [혹은 못 본척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렇듯  오는 날의 지하철은  유쾌한 공간이 아니다.

승객에게도 기관사에게도.

내가 승객일  어떠할까?

 역시   때의 습하고 찝찝한 지하철 특유의 분위기, 비에 의해 떠오른 묵혀진 지하철 비먼지의 퀘퀘한 냄새가 싫다.

  때는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때는 차가 제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러  손님들이 있다는 ,

내 손님들의 일이 중요한 일인 동시에 내가 하는 일 역시도 우리 도시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비가 와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 흘러가는 흐름은 조금 달라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도시 전체를 가라앉힐 작정으로 내리는 비라거나, 모두를 위협하는 코로나, 경제 위기, 전쟁 .

짜증스러울 수도 혹은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따위가 씻어내림에 불과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면,

각자 제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는  아닐까?

모든 부품이 제자리에서  역할을 한다면 잠시 멈춘 기차도  움직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고민할  없이, 비가 오던 뭐가 오던 무던히  일을 해야겠다.

이 도시의 다른 모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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