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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훈 Sep 13. 2023

기관사 중요 업무능력, ‘대장관리능력’

사람은 모름지기 잘 먹고 잘 싸야 한다.

식사시간이 일정하지 못한 기관사로서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보다 시급하고 긴급하며 당면한 가장 강력한 문제는 잘 싸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지하철 열차에 화장실이 있는 걸 본 적 있는가?

승객들의 경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내려서 가면 된다.

하지만 기관사는 그렇지 못하다.

우린 마치 지박령과 같아서 내 열차의 운전실을 떠날 수 없다.


소변이야 어떻게 조절해 볼 수 있다 치지만, 설사나 급똥의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눈앞에 지옥이 펼쳐진다.

지옥에는 136가지의 지옥이 있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그중에는 분명 급똥이 터져 나오려 하지만 화장실을 못 가는 고통을 겪는 지옥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혹시 없다면 염라대왕님께서는 꼭 추가해 주세요. 이만한 지옥이 없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거대한 고통을 겪으며 바라보는 앞 풍경에는 끊임없는 어두운 철길과 터널이 펼쳐진다. 이 지옥이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고, 내 삶에 잘못이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된다.

급똥과의 사투를 벌인 기관사는 이러한 이유로 분명 어떠한 내적 성숙이 일어난다. 기관사로서 급똥과의 해프닝을 겪은 사실과 내적 성숙과의 관계는 내가 직접 논문으로써 증명해 볼 생각이다.

[교수님 그때 저더러 대학원생 하라고 하셨죠? 제가 드디어 공대 대학원생 논문으로써 가장 적합한 주제를 찾았습니다]


지하철 운전실에는 기관사들만이 가볼 수 있는[원하진 않지만] 지옥이 존재하는 터에, 이에 대비하기 위한 각자의 노하우들이 존재한다.


우선 가장 베이직한 방법으로는,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이다.

출근해서 가고, 열차 타기 직전에 가고, 열차 타고 나서 가고, 쉴 때 가고, 퇴근하기 전에 가고.

그냥 눈에 보이면 가는 거다.

이유는 없다, 그냥 가는 거다.

근무 시작 전에 화장실 가는 거부터가 근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장관리능력’ 그거 기관사의 중요한 업무 능력 중 하나이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것은 지사제이다.

모 기관사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서 만든 지사제가 최고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효과가 제일 빠르며, 대장의 수분은 싹 빼가서 확실히 편해지지만 직장에 대한 효과는 드라마틱하지 않다고 한다.

이 기관사는 대장과 직장의 수분 차이를 느낄 정도로 성장해버린 것이다. 무섭도록 대단한 능력이며, 대단히 능력 있는 기관사라 사료된다.

또 다른 기관사에 따르면, 먹으면 5분 안에 편해지며 1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이 지사제를 신봉하는 그는 일본 여행에서 지사제를 왕창 구매해 왔다.

그가 지사제를 사 온 양을 본다면, 일본 여행을 간 김에 지사제를 사 온 것이 아니라, 지사제 밀수를 위해 들른 일본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비과학의 영역에 발을 들일 때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용하는 방법이다. 나는 이것을 ‘응가혈’이라고 부른다.

언젠가 잡지를 읽던 중에 팔에 있는 혈자리에 대한 포스팅을 보았다. 여러 혈자리가 있었지만 그중 기관사인 내 눈을 확 잡아끄는 혈자리가 있었다. 무슨 혈인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곳을 누르면 생리현상을 참는 데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배가 아프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기도할 때 매개로 삼는 것들을 쥐듯 간절하게 응가혈을 눌러댔다.

응가혈을 누르며 급똥이 잦아들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모습은 어떤 종교의식과 같았을 것이다.

그래 나는 독실한 ‘응가혈’ 신자였다.

사실 나로서도 실제로 효과가 있었던 건지 플라시보 효과에 불과했던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무엇이면 어떻겠는가?

급똥을 가라앉게 해주는, 내 믿음에 응답을 주는 메시아적 존재인 건 분명하니까. 믿습니다 응가혈님!


자 그럼 비과학의 영역에도 들렀으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

열차에 탑승해서 일을 시작한 나는 얼마 안 가 깨달을 수 있었다. 무언가가, 특히 내 대장이 잘못되어있음을.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눈앞으로 지나는 어두운 터널은 느리게만 흘러갔다. 괄약근을 죄어오는 불쾌한 느낌에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응가혈을 미친 듯이 눌러댔지만, 이번엔 그가 감당해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변기 하나를 통째로 박살 낼 수 있는 핵폭탄 급이었다.

내리려면 한 시간이 넘게 남아있었고, 좌절했고, 결단했다.


지하철 운전실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간이 변기와 비닐을 씌운 쓰레기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일이다.

생각해 보라. 전방을 주시한 상태에서[물론 자동운전 상태이다] 한 손에 핸들을 쥐고 어두운 운전실 바닥에 간이 변기 혹은 쓰레기통을 두고 그 위에 앉아 급똥을 해결한다.

이후 뒤처리도 문제다. 사용했던? 검은 비닐봉투를 조심스레 분리해 내어 단단히 묶은 후 가방에 넣는다… 예전에는 이 봉투를 열차 밖 선로에 투척했고, 선로를 순회 점검하는 직원들이 검은 봉투를 치워주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었다. 해서 그들에게는 칠흑같이 어두운 선로에서 마주친 귀신에게는 말을 걸더라도 선로에 떨어진 검은 비닐봉투만은 절대 열어선 안된다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간혹 이를 모르는 신참들이 호기심에 검은 비닐을 열었다가[귀신보다 더 어두운 존재를 마주했기에.] 평생에 걸친 끔찍한 트라우마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여튼 그렇게 결단했던 나는, 바닥에 쓰레기통을 놓고 거기에 검은 비닐을 씌웠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았다.

순간 말로 형언하기 힘든 커다란 자괴감이 몰려와서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눈가가 촉촉해졌고,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뭐지? 하아… 빌어먹을…”

그 강력한 자괴감이 내겐 약간의 지사제 역할을 해줬고, 덕택에 미사용 상태의 중고 비닐은 내 가방에 넣을 수 있었다.[언박싱했기에 중고이므로 재사용 불가이다]

수치심이 괄약근을 지배했다.

어디 감히 나오려 했냐는 엄한 호통 같았다.

순간 내 괄약근이 안됐다는 생각을 했지만, 잠시에 불과했다.

수치심도 막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어떤 강인한 생명이 있어서, 비집고 나오려 하는 그것을 나로서는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관제에 연락해서 우리 말로 ‘똥대기’를 불렀다.

거점 승강장에 대기하고 있던 대기 기관사가 나와줬고, 내 남은 40분의 일을 마무리해줬다.

부리나케 달려간 화장실에서 나는 변기 하나를 파괴했고, 가벼운 걸음으로 고마움을 담은 음료를 사서 내 ‘똥대기’를 맡아준 세상에 둘도 없을 은인에게 향했다.

나 대신 내리는 그를 마주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에이 아니야, 그러라고 대기 있는 거지. 잘 해결했지?”

그는 그날 내게 빛이었다.

그가 있는 한 이 삭막한 회색의 지하철도 어두운 곳이 될 수 없었다.




살아가다 보면 위기가 찾아온다.

인생이란 게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내게도 위기가 있었다.

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협받던 똥대기 사건에도,

UDT 훈련 지옥주 중에 혈변과 혈뇨로 인해 메디컬팀에게 퇴교를 설득당하던 시간에도,

왕따 당하던 어린 시절 폭력에 굴복하고 좌절해있던 내 어렸던 시간에도 위기는 있었다.

하지만 신이란 존재가 있어서 위기란 것이 인생에 수반되도록 설계했다면, 이 위기를 설계할 때 기회라는 것도 함께 설계했을 것이다.


위기를 겪은 뒤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똥대기 사건 이후 대장관리능력이 강화되었고, 똥대기 선배와의 관계가 특별해졌다.

UDT 지옥주 훈련 중 메디컬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를 선택했기에, 그때부터의 내 삶이 바뀔 수 있었다. 삶에 대한 내 태도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왕따를 당하며 폭력에 굴복했었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해낸 지금. 좌절이나 굴복 따위의 단어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되었다.


숱한 위기를 겪으며 생각했고, 깨달았다.

위기는 기회를 선물해 주기 위한 어떤 누군가의 장치가 아닐까.

“삶에는 위기가 수반되고, 위기에는 기회도 함께 수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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