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가 있다.
누군가가 어떠한 꿈을 꾸다가 놀라며 잠에서 깬다.
헌데 비슷한 내용의 꿈이 가끔씩 반복된다.
잊혀질만하면 한 번씩 그 꿈을 다시 꾼다.
신기한 건, 그 꿈을 꾸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특정한 범주 안에 속한 사람들이 그 꿈을 공유하고 있었다.
기관사라는 범주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꾸는 꿈이 있다.
바로 ‘차 놓치는 꿈’, ‘차 안 가는 꿈’, ‘차 박살나는 꿈’ 등 기관사로서 일을 하며 생기는 다양한 비상상황들에 대한 꿈이다.
기관사로서 살아가다 보면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행을 하고 있으며, 그 안전과 책임이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갑작스레 덮쳐오는 순간이 있다.
갑작스레 나를 짓누르는듯한 커다란 책임에, 일을 하기가 겁이 나기도 한다.
기관사들이 꾸는 이런 꿈들이 그런 덮쳐옴의 하나라고 생각을 한다.
무의식중에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덮쳐옴 꿈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차 놓치는 꿈’을 자주 꾸었다.
기관사로서 근무를 하다 보면 교대를 하게 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역의 정해진 위치에서 이전에 운행하던 기관사와 교대를 해 줘야 하는데,
시간을 착각한다거나 위치를 착각하거나 기타 긴급한 이유로 교대해 주지 못했을 때 차를 놓쳤다고 표현한다.
차를 놓치면 아주 피곤한 상황이 벌어진다.
기관사들의 근무는 교대해 주고 교대 받고 하며,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이루어진다.
헌데 그 일부에 속한 내가 차를 놓치면 내려서 다른 열차를 운행해야 할 기관사가 비게 되고, 한마디로 꼬여버린다.
그런 압박이 내가 ‘차 놓치는 꿈’을 꾸게 만들었을 것이다.
또 자주 꾸었던 꿈은 ‘차 안 가는 꿈’이다.
20년도 넘은 고물 열차가 고장이 났다거나 등의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근무를 할 때도 고물똥통열차는 자주 고장이 난다.
별거 아닌 고장의 경우, 고장 상황에 익숙한 우리는 조치를 해서 열차를 정상화시키고 운행을 재개한다.
하지만 가끔 찾아오는 심각한 고장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나 하나의 잘못된 조치로 인해 뒤에 수백 명의 승객이 지장 받을 수 있다는 생각.
관제에서도 난리가 난다.
관제사들의 고성이 무전으로 날아와 운전실을 가득 채운다.
“xx열차 기관사님!! 뭐 해보셨어요? 그래도 안됩니까? 비상운전 하겠습니다!!”
지지리도 운 없는 기관사였기에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나는, 자연스레 이런 꿈을 꾸게 되었다.
이외에도 나는 꿈속에서 지진이 일어나서 우리 지하철 열차 대부분을 파괴하기도 했고,
동료들 중에는 차를 놓쳐서 택시를 타고 열차를 쫓아간다거나 뒤로 굴러가는 열차를 막지 못해 울부짖기도 하며,
화재, 지진, 해일, 운석 등 스펙터클한 재난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단 1원의 제작비도 쓰지 않고 촬영되어진다.
[수요 없는 공급… 그 어떤 기관사도 원치 않는 꿈이기에]
재밌는 건, 차를 내린 기관사는 더 이상 이런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관사로서 근무를 하지 않고 기관사를 지원하는 근무를 하게 되는 것을 ‘차 내린다’고 표현하는데, 차 내린 기관사들의 경우는 신기하게도 이런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지원 근무를 하다가 다시 기관사로서 업무를 하게 되면, 거짓말처럼 그 꿈이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기관사라는 범주에 속하며 기관사라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이런 꿈들이 반복되는 거라면, 거기에는 어떠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의심해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딸 알키오네는 뱃길을 떠난 남편 케익스가 폭풍을 만나 죽은 줄도 모르고 헤라 여신에게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날마다 기도하였다.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던 헤라는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를 통해 잠의 신 히프노스에게 뜻을 전했고,
히프노스는 꿈의 신인 아들 모르페우스에게 헤라의 뜻을 전했으며,
그 뜻을 전해 들은 모르페우스는 남편 케익스의 죽음을 알키오네에게 전해주었다.
소리 없이 펄럭이는 커다란 날개를 가져 순식간에 땅끝까지 날아갈 수 있는 모르페우스는 알키오네의 꿈속으로 날아가 케익스의 모습으로 알키오네와 마주했다.
케익스의 모습을 한 모르페우스는 자신이 이미 죽었으니 힘들어하지 말고 애도해 달라고 말했고, 알키오네는 비로소 남편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알키오네의 꿈에는 수많은 신들의 뜻이 얽혀있었다.
신들의 여왕 헤라,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 잠의 신 히프노스, 꿈의 신 모르페우스.
이처럼 어떠한 꿈들, 특히 반복되는 꿈들에는 누군가의 의도[혹은 세상의]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남자들의 경우 흔히 군대 꿈을 꾸게 된다.
군대꿈을 꾼 남자들은 꿈을 꾸는 중에 필연적으로 불쾌한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이게 아닌데? 나 전역했는데… 점호를 한다고?’
깨고 나선 기분이 아주 나쁘지만, 현실이 아님에 감사하게 된다.
‘와 씨… 다행이다 꿈이네…’
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이 생긴달까?
별다를 거 없었을 하루가 이상하게 감사한 하루가 되어버린다.
기관사로서도 차 놓치는 꿈, 차 안 가는 꿈, 차 박살나는 꿈들을 꾸고 깨어서 생각한다.
‘와 식겁했네… 다행이다 꿈이라서…’
안 좋은 꿈을 꾸게 되면,
그간 그리 소중한지 모르고 지나왔던 것들에 다시 감사하게 된다.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라거나,
별 탈 없이 하루하루 지하철 운행을 해내고 있다거나,
아웅다웅하지만 꽤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거나.
안 좋은 꿈을 꾼 날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혹은 안 좋은 생각, 또는 걱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기 위한, 세상에 숨어있는 법칙은 아닐까?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다행히 아직은 괜찮은 건강 같은 것들.
최소한 안 좋은 꿈을 꿀 때 만이라도 돌아봐야겠다.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안 좋은 꿈’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