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이고, 오늘도 정해진 철길 위를 달린다.
기관사라는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라는 사람 자체를 보았을 때, 어느 곳에 어떤 사람들 속에 가더라도 주체적으로 지내며 분명한 존재감을 가진다.
하지만 지하철 운전실과 객실 사이의 구닥다리 철문에는 어떤 최첨단 스텔스 기술이 숨겨져 있어서, 승객들에게서 나 같은 기관사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그 순간 나는 아주 특별한 ‘객체성’을 부여받는다.
[나름 나쁘지 않은, 재미있는 느낌이다. 고마워 구닥다리 철문아]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본 적 있는가?
마리오네트 인형들을 조종하는 존재가 있으며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마리오네트 인형들에 집중하게 되고, 인간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사람이 조종하는 거였지?”
그렇다. 나는 마리오네트 인형 조종술사이고, 내가 모는 지하철은 수십억짜리 마리오네트 인형에 불과하며, 승객들은 내가 누르는 버튼으로 조종되는 마리오네트 지하철에 정신을 빼앗긴 관객에 불과하다.
그렇게 나는 마리오네트 지하철을 통해 부여받은 객체성으로 내 관객들을 바라본다.
평소라면 절대 가질 수 없었던 철저한 관찰자의 시점이라는 안경을 쓴다. 내 마리오네트에 정신을 빼앗긴 손님들이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며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닫히는 지하철 문에 머리부터 돌진하는 손님들부터, 운전실 출입문에 거울처럼 비치는 유리창에 코털 정리와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 정리를 하는 손님들까지.[나는 다 보이는데..]
그런데 그때 나는 오히려 더 객체가 된다.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코털 정리가 제대로 되겠는가?
마리오네트 인형술사의 보람이 무엇일까?
사람의 존재를 잊고 인형에 집중하게 만든 자신의 손에 대한 감탄과 더불어, 철저한 객체로서 관객들이 자신의 인형을 보며 울고 웃는 모습을 보는 것 아닐까?
내 보람 역시 내 마리오네트 지하철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내게 부여해 준 객체성으로, 승객들이 편리함을 부여받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닐까?
내가 태운 고객들의 하루가 원활했다면, 거기에 나와 내 마리오네트의 지분도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배당신청은 않겠다. 나는 청렴한 공직자니까. [3만원 넘는 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