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대단하세요. 그런데, 힘들지 않으세요?
우리 어머니 보니까, 손주 본다는 일이 정말 장난이 아녜요.’
내가 손주 육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어느 젊은 엄마의 말이다. 나의 ‘황혼 육아’ 참여에 그분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건강 우려다.
‘어이쿠, 지난번보다 젊어 보이네요. 행복해 보이고요.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내 격대 육아 참여 사실을 모르는 동년배 지인이 건넨 말이다. 드물지 않게 만나는 사이이니 단순한 인사치레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우연히도 내가 격대 육아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받은 상반된 인사다. 황혼 육아에 따르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생각을 담아내고 있는 젊은 엄마의 우려와, 로아 육아와 연결 짓지 않을 수 없는 내 얼굴과 표정에 나타난 긍정적 인상을 읽어내는 동년배 지인의 인사 사이의 틈, 어떻게 볼 것인가?
아내나 수현 현아는 물론 격대 육아 참여를 알고 있는 가까운 몇몇 지인들은 나의 동기를 격려하면서도 육아가 나의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적지 않은 우려를 해왔다. 건강에 대한 우려는 소위 ‘황혼 육아’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공통으로 가장 많이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서울에 사는 60세 이상 연령층에서 가장 원하지 않는 노후가 ‘황혼 육아’로 드러났다. 노후의 취미생활 지장과 더불어 건강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황혼 육아,’ 노땡큐인 셈이다.
나의 경우 객관적으로 따져봐도 로아 육아에 피곤해할 요소들이 있다. 우선은 거리다. 강릉 집에서 인천 로아 집까지 편도로만 4시간이 걸리는 길을 매주 왕복하니 만만치가 않다. 육아 일정도 그렇다. 수요일 오전부터 금요일 늦은 오후까지 낮에는 로아 육아에 전념한다. 실제로 로아가 낮잠 자는 시간을 포함해서 밀착 육아를 한다. 이와 더불어, 로아를 모델로 이따금 사진 작업도 하고, 밤에는 필요한 책이나 자료를 읽거나 글을 쓴다. 적지 않게 빡빡한 일정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육아 활동으로 인해 특별히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금요일 막차를 타고 집에 밤늦게 도착하면 토요일 오전에는 몸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내가 특별히 건강한 체질이 아님에도 좀 쉬고 나면 이내 회복된다.
‘젊음과 행복.’
나이 들면서 누구나 바라는 가장 소중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로아의 격대 육아를 하면서 동년배 지인에게 읽힌 내 표정처럼 로아로 인해 내 삶에 행복이 더해졌음을 분명하게 느낀다. 육아로 인해 특별히 육체적으로 힘들다거나 피곤함, 혹은 나이 듦을 경험하지는 않고 있으니, ‘젊음’을 알게 모르게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에서는 격대 육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시 젊음을 느낀다거나 실제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믿어져 왔다. 손주 육아에 참여하는 60대의 조부모들은 대체로 실제 나이보다 2~3살 젊게 느낀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올해 초 영국의 가디언지에 소개된 연구에서는 그런 효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 연구와는 달리 이번 연구는 60대 이후의 실험대상자들의 격대 육아 참여 전후의 생각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참여하기 전에는 대부분 격대 육아 참여로 자신들이 젊음을 느낄 것이라고 믿었지만, 참여 후 일정 기간이 흐른 다음 조사에서는 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손주로 인해 자신이 나이가 들었음을 더 크게 자각한다는 대답이 주를 이뤘다.
이 연구의 가치는 격대 육아에 참여하면 자신이 젊음을 느낄 것이라는 일반의 믿음은 그저 요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격대 육아를 통해 젊음이나 행복감을 느끼는 여부는 각자의 주관적인 태도와 생각에 달려있다고 본다.
나의 경우가 그렇다. 로아와 온전히 시간을 함께 보내는 매주 3일간의 낮 시간대다. 그 시간이 더없이 행복하고 나도 자주 아이가 된다. 수유 시간에 눈을 마주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걸어주고 스토리를 들려주다 보면 어느 사이에 로아의 맑은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를 본다. 나의 재잘거림 속에 로아는 중간에 잠들지 않아서 목표량을 다 먹는 것은 덤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되는 잠투정이 시작되면 즉석에서 나의 자장가가 시작되고 내 품에 안겨 뒤척이다 잠든 로아의 숨소리와 때로는 내 배 위에 깊은 잠에 빠진 로아의 호흡 리듬에 장단을 맞추다 보면 나도 함께 순수한 잠에 빠진다.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책을 읽어주거나 동화를 들려주면서, 목욕을 시켜주며 내 두 손으로 로아 뒷머리를 받친 채 로아와 나는 얼굴을 맞대고 길고도 진지한 옹알이 대화를 나눈다.
로아와 함께하는 육아 활동에서 ‘나도 어느새 나이 들어 할아버지가 되었네’라는 부정적 의미의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육아 활동에서 나는 손녀의 마음과 눈높이에 맞춰 자주 동심으로 돌아가게 되고, 손녀 육아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되어 참 행복하다고 믿는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결국, 격대 육아에서 행복과 젊음을 느끼느냐의 여부는 당연한 말이지만 참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주 양육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태도에 달렸다고 본다.
황혼 육아에서 나의 상황과 생각, 느낌을 일반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격대 육아에 참여하는 사람 중 육아에 투입하는 시간과 일, 책임, 부담이 각자 다를 것이고, 마음은 있어도 육아를 감당하기에 건강상으로도 열악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격대 육아에 참여했든, 아니면 나처럼 자청한 경우도 후회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후회의 횟수나 빈도는 참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태도와 생각과 더불어 건강 상태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생각과 배려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부모니까 ‘당연히’ 라거나 부모를 육아도우미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어린 자식을 키울 때는 그렇게도 ‘NO’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다 큰 자식들한테는 ‘NO’란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는 것이 부모다. 이런 부모의 마음과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자식으로서 그분들의 생각과 건강을 고려하는 격대 육아를 위한 선제적 배려와 지혜가 필요하다.
이렇게 될 때, 격대 육아에 참여하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육아 활동으로 인해 특별히 나이 듦을 자각하지 않고 오히려 활기와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황혼 육아라는 용어에 담긴 ‘황혼’의 노인 됨을 거부할 것이다.
'황혼 육아,' 땡큐! ‘황혼’ 육아, 노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