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해열제
생후 4개월 반 된 로아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로아야, 양성 나왔어.’
로아에게 말을 거는 현아의 목소리에는 걱정보다는 안도의 마음이 묻어난다.
‘로아야 기분이 어때? 코로나 축하해!’
마스크를 벗어버린 수현이도 거든다. 상황을 순화시키는 아들 특유의 위트다.
로아의 코로나 진단 후 병원에서 나오며 찍어 올린 영상이다. 현아는 4일 만에 로아를 마음 편하게 품에 안아봤을 터이고, 수현이는 이미 예상했던 결과로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상 속 로아의 어리둥절하고 지친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나도 속으로 마음을 전한다. ‘로아야, 이 할아버지도 축하해.’ 로아와 엄마 아빠 간 집안에서 거리두기가 코로나 증상보다 더 아프기 때문이다.
‘아버님, 이번 주는 아무래도 안 올라오시는 것이 좋을 듯해요. 올라오시면 저희야 좋지만, 아무래도 아버님 감염이 걱정돼서요.’
지난주 수요일부터 현아가, 금요일에는 로아가, 토요일부터는 수현이가 차례로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수요일 첫차를 예매해 두고 었었다. 로아가 금요일부터 증세가 나타나긴 했지만, 이미 수요일 이전에 현아로부터 전염되었을 것이고, 나 역시 수요일부터 3일간 로아를 전담했기 때문에, 나도 걸렸어야 했다.
하지만 주말에 받은 PCR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3월에 걸렸던 코로나에 아직 면역 효과가 남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2주 전에 받은 4차 접종의 효과인지는 모르겠다. 이번 주에 로아를 돌본다 해도 크게 염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던 내 나름의 이유다. 하지만 수현이와 현아 입장에서는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일주일에 3일이긴 하지만 지난 8주 연속해왔던 장거리 이동과 로아 육아에서 한 주를 쉬는 것은 내겐 분명 ‘반가운’ 소식이어야 당연하다.
그런데,
왜 현아의 전화에 ‘반갑기’보다는 착잡한 생각이 들까? 로아는 지난주 금요일 늦은 오후 내가 집으로 출발하기 직전부터 몸에서 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버스가 막 출발한 뒤, 수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로아의 자가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그리고 그다음 날 병원에서 받은 신속항원검사를 통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현아가 코로나에 걸린 뒤 만일에 대비해 유아용 해열제를 마련해 두려고 했지만, 인천에서는 동이 나서 구할 수 없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는 열 일 제쳐두고 약국에 수소문하여 넉넉하게 구입해 당일 막차 편으로 보냈다. 로아 증세가 시작되던 밤에 로아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여기서도 힘을 발휘한 셈이다.
겨우 생후 4달 반에 불과한 로아에게 해열제로 코로나바이러스를 다스리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이 바이러스는 아기라고 봐줄 리가 없는가 보다. 때때로 열이 39도 가까이 오르고 설사를 하고 기침하고 목이 쉬었단다. 수현 현아가 간간히 찍어 올리는 로아의 힘든 모습의 영상이 자꾸자꾸 마음에 걸렸다.
수현 현아가 어련히 잘 보살피겠지만, 로아가 아플 때 이 할아버지도 로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두고 있었다. 나의 마음 한편에서는 로아를 보다 혹시 내가 코로나에 다시 걸려도 크게 문제 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려두고 있었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육체적 아픔과 불편함보다는, 감염에 수반되는 거리두기가 더 마음이 아프다. 지난주 현아가 감염된 이후 3일 내내 마음 아픈 광경을 지켜보았다. 현아 본인은 코로나로 인해 심한 인후통과 두통을 겪으면서 엄마로서 관심은 오직 로아에게 쏠렸다. ‘가까이하기에는 먼 당신’이 되어 버린 로아를 멀찍이서, 그것도 로아에게 모습을 숨기고 ‘훔쳐보는’ 모습이란. 간혹 모습을 들켜 ‘엄마가 왜 내게 안 오시지?’하는 의아한 얼굴로 하염없이 엄마 쪽만 바라보는 로아의 표정과 모습이란.
‘차라리 로아가 코로나에 걸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로아와 현아의 표정을 번갈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진심이었다. 현아와 로아의 거리두기는 앞으로도 일주일 이상 지속해야 한다는데, 현아와 로아 둘 다 이 안타까움을 어떻게 견뎌낼까 생각하니 더더욱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아로서는 고의로 이런 선택이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본인이 코로나 감염으로 열과 인후통을 심하게 앓고 있는 상황에서 엄마로서 어린 로아가 그 육체적 아픔과 불편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감정보다는 의학적으로 규명된 의학지식에 근거하여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라는 직업의식이 로아 육아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현아에게서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요즈음 엄마 아빠들은 육아에 있어서 우리 세대보다 지식과 정보를 잘 활용한다. 어느 조사에서 아기를 둔 엄마 10명 중 6명 이상이 인터넷에서 육아 정보를 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요즈음 대부분의 엄마 아빠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싶다. 육아도서 참고와 인터넷 정보 활용이 육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도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현아가 제때 올려주는 의학정보에 접속하여 참고하기도 한다.
다만, 나로서는 육아 지식만큼이나 로아와의 친밀한 정서적 교감 역시도 잊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육아 지식과 정보를 실제로 로아에게 적용하는데 적지 않은 한계를 자주 느껴왔고, 육아에서 정보와 지식을 참고하고 의존하다 보면, 단순히 기우일 수도 있지만, 로아와의 특별하고 개인적인 정서적 교감의 기회와 관심은 소홀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거나, 정반대 주장이 펼쳐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기 양육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부모나 조부모라면 적어도 한두 번(보통 이보다 훨씬 많지만) 이로 인해 혼돈을 겪거나 양육자 간에 육아를 둘러싸고 갈등이 초래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정서적 교감에 관심을 갖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로아에게 일어나는 신체적이거나 인지적, 정서적 현상 중 이들 지식과 정보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내 경험상 생각보다 많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로아 양육에서 지식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이유다. 양육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기준이나 표준으로 삼고 그 틀 속에서만 로아의 발달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을 만능으로 삼는 태도는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그럴 경우, 안심과 불안 사이에 초조한 시소 타기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아기 양육에서 지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아기와의 정서적 교감이 클수록 더욱 분명하게 자주 드러날 것이다. 로아 육아를 시작한 지 채 두 달이 되지 않고 육아에 대한 지식이 미천했지만, 할아버지로서 무엇보다도 로아와의 정서적 교감을 가장 우선시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장 놀랍고 흥미롭게 깨달은 점이 있다. 아기들의 머리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세계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크고 깊다는 점과 육아지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많은 일이 아기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믿음이다.
잠투정하는 아기를 배 위에 올려두고 호흡을 맞추며 토닥여 재운 뒤 잠든 아기를 5분만 잘 관찰해보자. 무슨 꿈을 꾸는지 눈꺼풀 속 눈동자는 계속 움직이고 얼굴 표정은 자주 바뀌고 때로는 입으로 웃음소리나 신음소리를 내고 이에 따라 가슴과 배의 호흡 리듬은 계속해서 바뀐다.
기저귀를 갈면서 아기 머리를 두 손으로 바치고 자신의 얼굴에 바짝 당겨 눈을 마주 보며 잠시라도 소곤소곤 이야기를 걸어보자. 아기가 알아듣는 것처럼 말이다. 아기는 분명 깊고 맑은 눈동자로 응대하면서 기꺼운 표정과 옹알이로 ‘대화’에 응할 것이다.
우유를 먹이면서 아기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젖병 쥔 나머지 손가락으로 볼을 쓰다듬으며 스토리를 들려주거나 이야기를 걸어보자. 아기는 자주 우유 빨기를 중단하고 스토리를 알아듣는 양 빤히 올려다보며 여러 표정과 옹알이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우유 먹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교감 속에 외롭지 않게 지치지 않고 자신의 양을 즐기며 먹을 것이다.
우리 아기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양육자들은 최선의 노력과 방법을 강구하지만, 안타깝게도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기와의 정서적 교감은 양육자의 의지와 뜻, 관심이면 충분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잘만 관리하면 잠시만 아프면 되지만, 정서적 교감 결핍이란 증세는 우리 아기들을 오래오래 힘들고 아프게 할 것이다.